[미디어펜=이상일기자]"유치원 추첨이 로또보다 더 긴장되고 떨리네요"
10일 오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 있는 비봉유치원의 신입원아 추첨 현장의 한 학부모가 한 이야기다. 추첨이 이뤄진 놀이방 안을 가득 메운 학부모들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본격적인 추첨이 시작되자 놀이방 안은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첫 번째로 나선 학부모가 '대기'를 뽑자 곳곳에서 아쉬움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11번째에 이르러 첫 '당첨자'가 나오자 곧 '와'하는 환호성으로 바뀌었다. 총 118명이 지원한 이 유치원 5세 반의 당첨자는 총 25명이었다.
1시간가량 접수증을 손에 꼭 쥔 채 가슴을 졸였던 나머지 93명의 학부모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대기번호 30번 이상을 뽑은 학부모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려고 또다시 길게 줄을 섰다.
단설유치원인 비봉유치원은 올해 83명의 신입원아를 뽑는데 649명의 신청자가 몰렸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200명 정도나 늘어난 수치다.
공립유치원 가운데 초등학교장이 원장을 겸직하는 병설유치원과 달리 단설유치원은 유아교육을 전공한 유치원장을 별도로 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인기가 높다.
이렇다 보니 충북 도내 21개 단설유치원 중 단양유치원을 제외한 모든 유치원에서 로또 뽑기와도 같은 '긴장의 추첨식'이 반복되고 있다.
병설유치원이라고 상황이 여유로운 것은 아니다.
단설유치원보다는 덜하지만 학급 수가 적은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병설유치원 역시 지원율이 높아 추첨을 통해 신입원아를 뽑고 있다.
올해 27명을 선발한 청주 원평초 병설유치원은 탈락자만 100여명에 달했고, 청주 서현초 병설유치원도 48명 모집에 81명이 지원했다.
특히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내년도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편성을 두고 줄다리기를 하는 탓에 유치원으로 눈을 돌리는 학부모가 생겨나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는 게 유치원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런 유치원 '입학 전쟁'은 갈수록 심화할 것이라는 게 보육업계 안팎의 공통된 관측이다.
정부가 교육재정 악화 등을 이유로 단설유치원 증설을 까다롭게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최근 인구 유입에 의한 초등학교 신설 시 공립유치원의 유아 수용 기준을 초등학교 정원의 4분의 1에서 8분의 1로 완화하는 내용의 '유아교육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 경우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병설유치원은 앞으로 많이 늘어나는 대신 단설유치원 개설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교육계 내에서도 이런 정부 방침이 일선 교육현장의 요구와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충북도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단설유치원 등 특정 공립유치원에 쏠림현상이 빚어나는 상황에서 단순히 전체 수용 인원만 따지는 것은 현실을 전혀 읽지 못한 탁상행정"이라며 "모든 학부모에게 선택의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이날 비봉유치원 추첨에서 대기번호를 뽑은 한 학부모는 "검증된 교사가 운영하는 유치원이 좀 더 많이 생겨 걱정 없이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낼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