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기자]대한불교조계종 화쟁위원회가 19일 조계사로 피신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중재 요청에 대해 "요청 내용이 무엇인지, 각계각층의 의견이 어떠한지 등을 자세히 살펴가면서 당사자, 정부 등과 함께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지혜로운 길을 모색하겠다"며 중재 요청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화쟁위는 한 위원장을 만나 요청 내용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 관계된 사람들을 모두 만나면서 중재 방안을 모색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화쟁위의 이번 결정은 사회적 현안과 갈등을 중재한다는 위원회 설립 취지와 불법 폭력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검경의 수배를 받고 있는 한 위원장을 비호한다는 비판 여론 사이에서 고심 끝에 내린 결정으로 보인다.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 스님은 회견에서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 들어온 것과 관련해 사회적으로 찬반 논란이 있다.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 들어온 것과 관련해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는 의견, 종교단체로서 자비행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 모두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것들"이라며 "오늘 회의는 다양한 사회적 의견을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에 대한 고민과 숙의의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화쟁위는 사회 현안과 갈등을 중재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문제를 풀고자 조계종이 2010년 구성한 기구다. 위원장인 도법 스님 등 7명의 스님과 재가자인 각계인사 8명, 기획위원 등 총 28명으로 구성돼 있다.

그동안 4대 강 사업, 한진중공업 사태, 쌍용자동차 사태, 강정마을 문제, 철도 노사 문제 등 사회 현안에 개입, 갈등을 중재하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2013년 철도 민영화 문제로 사측과 갈등을 빚던 철도노조의 박태만 부위원장 등이 조계사로 피신해 왔을 때에는 '철도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 철도파업 사태 중재에 본격적으로 나선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상황은 철도노조 파업 사태 등 과거 개입 사례들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점에서 화쟁위가 중재에 나설 수 있는 사안인지에 대한 의문부터 제기되고 있다.

철도 파업 당시에는 민영화 문제를 놓고 노측과 사측이 대립한 가운데 사측의 대화 거부로 양측의 교섭이 중단됐던 상황이었지만, 이번에는 중재를 해야 할 당사자가 누구인지, 어떤 문제를 다뤄야 하는지 등이 불분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인식한 듯 화쟁위 측도 이번에는 "한 위원장을 만나 민노총의 중재 요청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해 우리가 중재할 수 있는 사안인지, 또 중재하게 된다면 어떤 문제를 다뤄야 할지를 검토하겠다"며 즉각 중재에 나선 과거와 달리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화쟁위가 검토를 통해 중재에 나선다 해도 실질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철도파업 때에도 노측과 사측 간 대화 자리를 마련해 사측의 거부로 중단됐던 양측의 교섭을 재개시키는 데에는 일단 성공했지만, 중재 과정에서 사측과 정부 측의 소극적인 대화 의지를 바꿀 강제력이 부족해 실질적인 중재는 미흡했다는 것이 화쟁위 측의 자체 평가다.

어쨌든 화쟁위가 중재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나섬에 따라 한 위원장의 조계사 체류는 길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도법 스님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번 일로 여러 가지 불편을 감내하고 있는 조계사 신도분들에도 감사와 존경의 마음 전해드린다"며 당분간 한 위원장의 신변보호도 계속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3년 철도파업 당시 박태만 부위원장은 조계사에 들어온 지 20여 일 만에 경찰에 자진 출두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