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돈을 연관 짓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서 어색한 풍경이다. 예술도 경제가 될 수 있고,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저급한 생각’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선 예술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자유경제원은 자유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인들을 모아 ‘시장경제로 본 예술’ 워크숍을 개최했다. 예술을 보는 사회적 인식이 보다 높아졌으면 하는 취지로 개최된 25일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은 다양한 고견을 나누었다. 세션 3 ‘예술, 다양성으로 보자’ 발표자로 참석한 최공재 영화감독은 “한국의 문화는 우크라이나처럼 문화에 대해 개방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민족주의에 물든 한국문화를 버리고 세계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선진문화를 이룰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아래 글은 최공재 영화감독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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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공재 영화감독 |
우크라이나 문화산업으로 보는 문화다양성
우즈베키스탄에는 김태희가 밭을 갈고, 한가인이 우유를 배달한다며 그녀들의 미모에 난리다. 하지만, 그녀들이 몸빼 입고 삽질할 때 패션을 주도하는 바비인형들이 살아 숨 쉬는 나라도 있다. 바로 ‘우크라이나’란 나라다. 여기가 어딘지 모르겠다는 분들은 쉽게 체르노빌을 떠올리시면 된다. 그곳을 러시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러시아 국경과 맞닿은 우크라이나 지역이다.
1991년 舊 소련에서 독립한 우크라이나는 짧은 독립 기간으로 인해 발생되는 불안한 정치와 사회 분위기와 달리 경제는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나라다. 그리고 경제성장과 함께 새로운 글로벌 산업이 성장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문화산업’이다.
비록 아직까지 산업적 측면에서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들이 만든 문화산업의 힘이 전 세계 패션계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그 힘이 어떠한지, 그리고 우크라이나 문화산업의 성장원인은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패션의 도시 파리의 아성이 흔들리고 있다
패션의 도시 하면 모두들 프랑스 파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이 패션 도시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도 모자라 파리의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찾아오게 만드는 도시가 있으니 그곳이 바로 우크라이나의 ‘키예프’다.
자존심 강하기로 소문난 파리의 디자이너들을 오게 만든 힘은 무엇이었을까?
세련되면서도 우아한 스타일을 가진 그들의 독특한 패션 감각은 고급을 추구하던 파리 디자이너들의 시선을 끌었고, 그들의 진입은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김태희가 밭 갈고 있을 때 수많은 바비 인형들을 유명 패션모델로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모델로는 ‘올가 쿠릴렌코(Olga Kurylenko)’가 있다.
그녀는 마리끌레르와 엘르, 피가로 등 최고 패션잡지를 정복하고 할리우드로 진출해 ‘007 퀀텀 오브 솔러스’, ‘맥스 페인’등에 출연했으며, ‘오블리비언’을 통해 같이 출연한 톰 크루즈와 열애에 빠지기도 한 대표적인 우크라이나 모델 겸 이제는 배우이다.
이 외에도 ‘마샤 타이엘나’ 같이 ‘VOGUE’ 전문모델로 활동하는 등 수많은 우크라이나 패션모델들이 세계 패션계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그들의 우월한 유전자(?)도 이유가 되겠지만 패션계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그들의 패션에 대한 남다른 애정은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패션 걸인 ‘슬라빅’이란 노숙자도 우크라이나 사람이다.
이곳 패션의 시작은 2006년 시장을 개방한 이후 지속된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삶의 여유를 누리는 수단으로 그들만의 패션을 즐기는 데서 출발한다. 패션은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극단의 화려함을 보여주는 문화산업의 정점에 서 있다. 경제성장이 없이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산업이 바로 패션산업인 것이다. 패션을 선도하기 시작한 이들은 이제 그 여세를 몰아 다른 문화산업에 도전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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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김태희가 밭을 갈고 있을 때 수많은 바비 인형들을 유명 패션모델로 만드는 결과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로는 ‘올가 쿠릴렌코(Olga Kurylenko)’가 있다. 그녀는 마리끌레르, 엘르, 피가로 등 최고 패션잡지를 정복하고 ‘007 퀀텀 오브 솔러스’, ‘맥스 페인’, ‘오블리비언’ 등 할리우드로 진출해 성공한 우크라이나 모델 겸 배우다./사진=007 퀀텀 오브 솔러스(2008) 포스터 |
Potap & Nastya Kamenskih, 포른 힙합으로 세계로 나아가다
러시아 출신 가수 나스타샤 카민스키(Настя Каменских)와 우크라이나 출신의 래퍼, 포탑(Потап). 이 두 사람이 듀오가 되어 러시아에서 음반을 내기 시작한 것은 2004년도다. 그러나 경제성장이 시작되던 2007년도에는 VNATURE<Империя> 앨범을 발표하면서 우크라이나에서 더욱 많은 활동을 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심할 정도로 개방적인 '포른 힙합(Porn-Hiphop)'이란 장르인데, VNATURE<Империя>에 수록된 ne para <Не пара>와 VNATURE<Империя>의 M/V에서 출연진이 전라로 등장하는 등 파격적인 행보로 인해 러시아보다는 동유럽에서 최고로 자본주의와 개방주의가 활성화된 우크라이나가 훨씬 활동하기 쉬웠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성 의식이 서유럽에서도 쫓아오지 못할 정도로 열려있는 곳이기에 가능했던 시도였다.
러시아에서는 언더그라운드일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음악은 그렇게 자본과 개방이 이루어진 우크라이나에서 빛을 발할 수 있었고,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며 미국에도 진출하게 되었다. 물론 문화로는 극단적 폐쇄성을 띄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이들의 음악은 정식 발매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대한민국 만세다.
우크라이나 산업의 원동력은 문화의 개방성
그리 높지 않은 경제수치와 정치적으로도 아직 불안정한 상태인 우크라이나가 이렇게 갑자기 글로벌 문화산업시장에 등장하게 된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의 1차적인 원동력은 그들만의 오래된 자유로운 예술적 감성과 문화예술에 대한 전통이 뿌리 깊고도 넓게 퍼져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의 문화적 전통은 지리적 위치로 인해 파생된 문화적 개방성으로 형성된다. 흑해의 북쪽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여러 민족의 이동통로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여러 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다원주의 문화가 발달되어 있어 문화적 다양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서유럽과 러시아를 사이에 두고 밑으로는 터키를 비롯한 이슬람 문화국가들이 존재하면서 이들의 문화들이 섞이면서 우크라이나의 문화와 예술을 발전시킨 것이다.
그런 문화적 수준은 향후 소비에트 연방의 모든 문화에 영향을 끼치며 우크라이나가 없이는 소비에트의 문화와 예술이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수식어가 달릴 정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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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1690년 V. Coronelli가 제작한 동유럽 지도. |
우크라이나는‘동유럽의 프랑스’라는 명성을 들을 만큼 문화와 예술이 소비에트 이전부터 이미 발달되어 있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 비판적 사실주의 미술의 확립자이며, 농민들을 위한 詩를 쓰던 시인으로써 지금도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 받고 있는 ‘타라스 세프첸코(Taras Grigor'evich Shevchenko)’에게 러시아의 대문호 ‘막심 고리키’는 그를 가리켜 ‘진정한 러시아 최초의 민주적이고 인민적인 작가’라며 추앙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들의 위대한 문화가 사회주의 세력인 소비에트 연방 안에서는 빛을 발할 수 없었다. 뿌리 깊은 문화적 전통을 DNA에 담고 있던 그들은 자본과 만나 짧은 시간에 패션산업계를 흔들고, 음악과 문학 등 다방면으로 세계에 진출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문화산업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들만의 자유롭고 개방적인 문화의식을 바탕으로 다른 산업에도 그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의 자료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성공 요인으로 다른 나라의 문화들을 쉽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문화의식을 첫 번째로 꼽았다.
우크라이나 문화산업의 힘은 문화다양성에 있다
자유시장경제는 새로운 기회를 부여하는 기능을 통해 대중을 벗어난 새로운 시도적 작품활동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예를 봐도 러시아에서 독립해 시장을 개방하는 순간 인지하고 있지 못했던 그들만의 문화가 문화산업으로 성장하며 패션계를 흔드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러시아에서는 하지 못하던 음악적 장르를 시도해 세계적으로 성공하기도 했다. 시장이 개방되지 않았다면 9세기부터 형상화된 동 슬라브족 우크라이나의 문화는 소비에트 연방의 한 구석에 처박혀 그렇게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장개방만이 문화산업 성공의 전부라고는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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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크라이나의 문화적 전통은 지리적 위치로 인해 파생된 문화적 개방성으로 형성된다. 흑해의 북쪽에 위치한 우크라이나는 여러 민족의 이동통로가 되었으며, 그로 인해 여러 민족의 지배를 받으면서 다원주의 문화가 발달되어 있어 문화적 다양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사진=위키백과 제공지도 |
러시아로부터 독립된 국가는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즈베키스탄은 김태희가 밭을 갈고, 우크라이나는 살아있는 바비인형이 돌아다닌다. 왜? 우크라이나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개방성을 가지고 있었고, 우즈베키스탄은 폐쇄성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다원주의에 바탕을 둔 우크라이나는 세계의 어느 문화도 쉽게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문화로 녹여내며 다양한 문화를 만들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시장 개방과 자유주의를 만나는 순간 빅뱅을 일으키게 된 원동력이다. 그렇게 문화산업은 자본과 다양한 문화의 적절한 만남으로 인해 형성되는 특별한 산업이다.
한국의 문화산업은 미개하고 폐쇄적이다
그럼 한국의 문화는 어떠한가? 이 나라가 우크라이나처럼 문화에 대해 개방성을 가지고 있을까? 슬프게도 대한민국은 우즈베키스탄의 폐쇄성에 더 가까운 문화를 가지고 있다. 홍익인간의 정신을 가진 세계유일의 단일민족이자, 백의민족으로 구성된 한민족 국가라고? 과연? 미안하지만 필자의 선조는 중국인으로 단일민족과는 거리가 멀지만 난 분명한 한국인이다.
폐쇄성의 극치는 ‘민족주의’로 치장되며, 거기서 파생한 문화는 ‘우리 것이’ 아닌 ‘우리 것만’ 소중한 것이 돼버렸다. 신토불이(身土不二). 그런데, 우리 것만 좋은 것이여~를 외치면서 우물안 개구리로 살 동안 김치가 ‘기무치’로, 한복이 ‘코리안 기모노’로 세계인들에게 불려질 때 오히려 화를 내는 한국을 보며 이게 미개한 건지, 미련한 건지 도통 감이 안 선다.
아카데미 외국어 부문 영화상 후보에 이름 한번 올린 적 없음에도 자기들끼리 후보가 되겠다고 난리 피우다가 후보가 정해지면(아카데미는 신경도 안 쓰는데) 그게 국내 기사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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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우크라이나 비판적 사실주의 미술의 확립자이며, 농민들을 위한 詩를 쓰던 시인으로써 지금도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 받는 ‘타라스 세프첸코(Taras Grigor'evich Shevchenko)’. 타라스 세프첸코(1814~1861)에게 러시아 대문호 ‘막심 고리키’는 그를 가리켜 ‘진정한 러시아 최초의 민주적이고 인민적인 작가’라며 추앙했다. |
프랑스와 국내에서 그렇게 키워보려고 밀었던 홍상수 감독은 기껏해야 칸 영화제에서 신인상(주목할만한 시선)을 12년이 지나서야 받았음에도 국내에서는 거장 대접이지만, 전 세계 영화제를 휩쓴 김기덕 감독에게는 족보도 없는 놈 치부를 하며 한국을 떠날 테면 떠나라 한다.
해외에서 인정받건 말건 지들이 인정하지 않으면 아웃사이더가 되는 폐쇄적인 문화. 그러면서도 해외에서 상이라도 하나 탔다고 하면 서로 모시려고 발버둥을 치는 문화. 뭔 내용인지 몰라도 남들이 다 보면 그게 좋던 싫던 무조건 일단 봐야만 하는 문화. 그래, 이 정도 줏대가 없는 문화라면 확실히 미련한 것이 아니라 미개한 것이 맞다.
말로는 반만년 문화유산을 찬란하다고 자기들끼리는 칭송하지만 김치마저도 일본이 세계에 알려줘야 하는 이 미개한 문화 수준은 과연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제발, 우리 문화의 우수성이니 반만년 문화유산이니 하는 착각을 버리자! ‘한류’ 역시 그토록 칭송하던 반만년 문화유산과는 전혀 상관없었기에 성공했다.
한국에서만 인정받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해외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다. 또한, 민족주의에 물든 한국문화를 버리고 세계의 문화를 받아들여야 선진문화를 이룰 수 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에서 무슨 반만년 문화유산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또한, 분명한 것은 자본은 다양한 문화가 성공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문화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자본이 다양한 문화를 형성해 주지는 않는다. 개방을 통한 다양성 확보만이 한국의 문화산업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이고,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출구가 될 것이다.
김태희를 밭일하는 아줌마로 만들지, 바비인형으로 만들지 이제 한국의 문화계는 선택을 해야 할 때다. /최공재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