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은 다양한 취향의 ‘보전’과 ‘확대’ 불러 일으키는 동력
예술과 돈을 연관 짓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우리 사회에서 어색한 풍경이다. 예술도 경제가 될 수 있고, 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저급한 생각’으로 취급되기도 한다. 이런 환경에선 예술 산업이 발전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자유경제원은 자유주의 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인들을 모아 ‘시장경제로 본 예술’ 워크숍을 개최했다.

예술을 보는 사회적 인식이 보다 높아졌으면 하는 취지로 개최된 25일 워크숍에서 참석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나눴다. 세션 3 ‘예술, 다양성으로 보자’ 발표자로 참석한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은 “문화소비 의욕이 상실되면 소비계층 자체가 협소해지고, 그 협소한 계층의 중심 취향으로 안전히 투자하는 흐름이 만들어져 늘 비슷비슷한 콘텐츠만 등장하게 된다”며 “문화는 결국 다양성 확보를 위해 나아가야 하고, 그 열쇠는 경제 성장이 쥐고 있음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라고 지적했다. 아래 글은 이문원 편집장의 발제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

경제성장과 문화발전의 관계, ‘다양성’에서 찾아야

경제가 성장할수록 문화예술 역시 발전한다는 점은 의외로 직관으로나마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정반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극히 열악한 상황에서 진정한 예술의 꽃이 피어나고, 부유하고 윤택해지면 오히려 문화는 퇴폐화 되거나 지극히 보수적이며 실용적인 수준으로 내려앉는다는 신화가 대중적으론 더 널리 인식되고 있다. 캐롤 리드 감독이 만든 1948년작 걸작영화 ‘제3의 사나이’에서도 이런 신화를 뒷받침해주는 대사가 나오기도 한다.

“러시아는 폭정 속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를 낳았지만, 언제나 평화로웠던 스위스에선 뭐가 나왔는지 아나? 뻐꾸기시계밖에 없다네.”

‘문화예술 발전’의 정의부터 다시 내릴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신화는 근본적으로 ‘위대한 예술가=배고픈 예술가’란 고질적 프레임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 위대한 예술이란 세속적 욕망과는 거리가 먼, 아니 아예 차원이 다른 영역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재물이 넘쳐흐르는 풍부한 예술시장은 오히려 예술가들을 나태하고 저속화시켜 문화 발전을 막아 세운다는 식 프레임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애초 저런 프레임의 화두가 되는 ‘문화예술 발전’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냐는 점이다. 시간의 세례를 거쳐 지금까지도 그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위대한 예술작품의 탄생?

그렇게 여겨지는 게 아마 가장 일반적인 인식이겠지만, 문제는 과연 어떤 예술작품이 저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남게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생전에 단 한 작품밖에 팔지 못했다는 빈센트 반 고흐 얘기까진 갈 것도 없다. 당장 영국 사이트앤사운드 지가 매 10년마다 발표하는 ‘역대 세계영화 베스트 10’ 선정에서 2012년 최근판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으로 꼽힌 것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이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1958년 개봉 당시엔 ‘실패한 상업영화’ 정도 취급을 받으며 대중적으로는 물론 비평적으로도 망신을 당한 작품이었다.

20세기 세계 대중음악계 최고의 뮤지션으로 꼽히고 있는 비틀즈를 보자. 동아일보 1964년 2월13일자 기사 ‘소음인가 노래인가 “비틀즈”라는 이름의 “재즈”’는 이들을 이렇게 다뤘다.

“잘생기지도 않은 용모에 눈썹까지 머리를 덮어내린 「비틀즈」는 소음인지 노래인지 분간키 어려운 기성으로 노래를 부르며 몸을 비꼬고 하여 이른바 「비틀즈·스타일」을 창시하고 있는데 그들이 바로 지난 7일 미국에 상륙하여 가는 곳 마다 「틴·에이져」들의 환영을 받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상륙반대의 「데모」를 만난 장본인인 것이다.”

여기에 문화사적/민속학적 가치까지 더해지면 더더욱 저 ‘위대한 예술작품’이란 걸 당대에 평가하기도 어렵고, 그런 프레임을 생성해낸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에 가까운 일이란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예컨대 조선시대 송강 정철의 가사 ‘속미인곡’은, 지금이야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지만, 발표된 시점에는 실질적으로 포르노에 가까운 입장에서 평가되고 비판받았다.

   
▲ 사진은 비틀즈의 ‘Rubber Soul’ 앨범 표지. 20세기 세계 대중음악계 최고의 뮤지션으로 꼽히고 있는 비틀즈. 어떤 예술작품이 ‘위대한 예술작품’으로 남게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전형적인 사례다.

그럼 대체 ‘문화예술 발전’의 정도를 가늠할 수 있는 기준은 어디로 잡아야 한다는 걸까? 의외로 단순하다. 문화예술 콘텐츠의 ‘다양성’이 확보돼있느냐의 여부로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문화예술계에선 이미 상당부분 동의가 이뤄져있는 인식으로서, 생명 다양성이 지구라는 별의 진화와 번영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되듯, 문화 역시 그 다양성이 어느 정도까지 확보돼있느냐가 해당 문화권의 문화 발전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얼마나 많은 문화예술 콘텐츠 소비자들이 자신들이 각자 찾던 콘텐츠를 만나 예술적 감흥을 즐길 수 있을지, 바로 ‘소비자’의 입장에서 만족도를 고려하는 것이 곧 ‘문화예술 발전’의 진행방향이라는 얘기다.

경제 성장은 다양한 취향의 ‘보전’과 ‘확대’를 부른다

이제 실제 예를 통해 이 같은 개념을 다시 짚어보자.

트로트라는 음악장르를 모르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없을 것이다. 일본 엔카(戀歌)에 바탕을 둔 트로트는 흔히 일제강점기 일본문화 친화적 분위기 속 자연스럽게 성장한 장르로 여겨지고 있다. 물론 전반적 의미에선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엄밀히 진단하자면 ‘돈이 되는 방향’의 문제가 더 컸다.(이영미 '한국 대중 가요사')

1930년대 중반, 즉 한일합방으로부터 사반세기가 지난 시점까지도 한국대중음악계 중심은 3박자리듬의 신(新)민요가 차지하고 있었다. 월간지 삼천리가 1935년 10월호에서 집계한 ‘레코드 가수 인기투표 결선 발표’에서도 중심은 신(新)민요 가수들 몫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요나누키 단음계를 사용한 트로트 전성시대로 접어든 게 1930년대 후반부터다. 월간지 신세기의 1939년 10월호 ‘레코드 가수 인물론’을 보면 중심이 트로트 가수로 급격히 이동됐음을 알 수 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단순하다. 일본식 교육을 받은 개화기 지식인층, 즉 한국사회 젊은 엘리트층이 트로트에 더 매력을 느낀 탓이다. 당시 트로트는 신(新)문화였고, 젊은 도시풍(風) 트렌드였으며, 선진적인 장르로 여겨졌다. 이른바 트렌드 세터들이 선택한 장르가 트로트였단 얘기다.

물론 어느 사회나 엘리트층은 그 수가 적다. 절대다수 민중과 비할 바 못 된다. 그러니 현대적 입장에선 딱히 주류 수요층이 될 리 없다. 지금으로 치면 클래식이나 인디 펑크밴드 수요층 정도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당시 문화소비를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계층이 바로 사회엘리트층이었단 점이다. 음반을 구매하거나 공연 입장료를 지불할 경제적 능력은 일본식 교육을 받은 엘리트층만이 쥐고 있었다. 절대다수 민중은 라디오나 광장행사 등에서 ‘공짜로’ 노래를 듣고, 나중에 따라 부르며 즐기는 정도였다. 비록 애호층 액면 숫자는 적었지만, 실질적으로 돈이 되는 건 트로트로 집중돼있었단 얘기다.

그러다보니 자연 한국대중음악시장은 신(新)민요를 버리고 트로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소수층이어도 돈이 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신(新)민요 가수들은 막간가수 정도로만 활동하다, 1940년대 이르러 대부분 트로트로 전향하게 됐다. 그러다보니 기존 신(新)민요를 즐기던 절대다수 민중도 어쩔 수 없이 트로트를 들어야했고, 그렇게 시장이 흘러가면서 한국대중음악시장 중심은 자연스럽게 트로트가 차지하게 됐다.

그렇게 트로트를 즐기던 계층이 해방과 6.25를 거쳐 그대로 음악소비가 가능한 사회엘리트층으로 살아남아 꾸준히 같은 장르를 소비하게 됐고, 그래서 1960년대까지만 해도 이 트로트 중심 대중음악판엔 딱히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고도성장기인 1970년대 즈음 돼서 어느 정도 먹고 살만해지니, 대학생들이 각종 과외 알바 수입 등으로 음반을 소비, 이른바 ‘포크 붐’이 일게 됐고, 88올림픽을 거쳐 중산층이 형성되면서 이제 10대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풍족한 용돈을 받아 대중문화상품을 소비하는 ‘용돈시장’이 열려버리니 그때부터 서태지니 뭐니 하는 뮤지션들이 대세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당연히 대중문화상품 소비욕은 40대 이상 중장년층보다 청년층, 유소년층이 훨씬 왕성할 수밖에 없으니. 그렇게 대한민국의 대중음악시장 역사는 노골적으로 ‘돈이 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완성됐단 얘기다.

   
▲ 사진은 2015 멜론 뮤직 어워드. 힙합부터 댄스, 발라드, 록에 이르기까지 대중가요의 다양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사진=멜론 제공

그런데 여기서 이 대중음악사의 흐름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민요=>트로트로 장르가 이동하며 완전히 신민요의 명맥이 끊겨버린 것은 맞지만, 이후 1960년대 즈음부턴 트로트=>포크=>힙합 및 댄스뮤직 기반 장르들로 젊은 층 유행이 이동되더라도, 장르들 자체는 사멸하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트로트는 음반-음원 구입이 저조할 수밖에 없는 장년층의 전유물이 됐지만, 여전히 장년층 중심의 행사 시장에선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장윤정 등과 같은 대중적 아이콘도 탄생되고 있다. 포크 역시 인디 씬으로 흡수되며 작지만 견실한 틈새시장에서 활약하고 있고, 힙합과 댄스뮤직의 그 변종의 가짓수가 절대 줄어들지 않고 있다. 그리고 언급했듯, 그 저변에는 대학생의 ‘알바 시장’, 미성년 자녀들의 ‘용돈 시장’ 등이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엘리트층밖에는 문화 소비에 여력이 없어 신민요와 같은 장르가 완전히 사멸돼버렸던 일제시대와 달리, 고도성장기 들어서부터는 경제가 융성하고 그 혜택을 보는 중산층의 존재가 두터워지면서 각 음악 장르들 역시 풍부하게 펼쳐지고 각자 나름의 시장을 구축해 ‘다양성’ 확보 측면에서 지극히 긍정적인 형태로 옮아가고 있었다는 것.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 문화 다양성은 붕괴된다

물론 이 같은 논리는 비단 대중음악뿐 아니라 모든 문화 장르에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경제 성장이 둔화된 사회에선 문화 다양성의 범주도 극히 협소해진다. 문화소비 의욕이 상실되면 소비계층 자체가 협소해지고, 그 협소한 계층의 중심 취향으로 안전하게 투자하는 흐름이 만들어져 늘 비슷비슷한 콘텐츠만 등장하게 된다.

반대로 경제 성장이 이뤄지는 시점엔 소비자 개개인 각자의 취향이 부각되며 다양한 취향을 만족시키는 다양한 콘텐츠, 보다 열려있고, 보다 접근성이 좋으며, 보다 저렴한 콘텐츠의 향연이 이뤄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경제 성장과 문화예술 발전이 같은 궤를 그릴 수밖에 없다는 더없는 근거다. 어디 영화제에서 상을 타고, 어디 외국 평론가가 노래를 칭찬하고, 무슨 무슨 문학상을 받고, 이런 부분들은 오히려 문화적 엘리트주의와 문화적 사대주의가 만난 철지난 기준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위에서부터 아래로’ 층계식 문화 전파가 이뤄지던 권위주의 시대에나 가능했던 얘기다.

2015년 현 시점, 문화는 결국 다양성 확보를 위해 나아가야 하고, 그 열쇠는 경제 성장이 쥐고 있음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물론 그럼에도 반론은 있을 수 있다. 위 언급한 문화 엘리트주의적 시각에서의 ‘문화예술계 수준론’의 대두가 바로 그것이다. 그럼 그 ‘수준’은 대체 누가 결정하는 것일까. 냉전시대 철학자 아이자야 벌린은 자유주의의 우월함을 설명할 때 칸트를 자주 인용하며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인간이라는 굽은 나무에서 꼿꼿한 것이 만들어진 적은 없다.”

이를 인디 뮤지션이자 칼럼니스트인 전범선은 디스라이크 3권에서 이렇게 해석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바르지 못한 동물이다. 인간을 바르게 만들려는 시도는 항상 실패했다. 그 ‘바름’을 정의하는 자들 자체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 ‘문화의 수준’은 그저 특정시대 특정인들의 도그마에 의해 계속 흘러가는 것일 뿐, 그 어떤 명료한 기준도 돼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 발전’은 철저히 애초 다양할 수밖에 없는 ‘의견’과 ‘관점’ ‘취향’ ‘사고’ ‘정서’를 폭넓게 담아내는 그릇의 확보에 놓여있을 수밖에 없다.

마침 ‘문화 발전’과 정반대되는 상황에 대해 피터 셰퍼가 자신의 희곡 ‘아마데우스’에 대사로 담아낸 적도 있다. 이런 대사다.

“‘피가로의 결혼’을 보다 황제가 한 번밖에 하품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지. 황제가 3번 하품하면 그 오페라는 그날 바로 문을 닫아. 두 번 하품하면 일주일 정도 상연되는데, 한 번 하품하면 그래도 9번은 상연할 수 있거든.”

‘문화 발전’을 이 시절 기준으로 돌려놓고 싶지 않다면, 경제 성장이 가져다주는 문화예술 성장의 논리에 반론 걸 일도 없을 것이다. /이문원 미디어워치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