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 근거 없는 용어, 경제 문제에 지극히 반민주적 방식 사용
   
▲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경제민주화’는 실체 없는 허상

김종인, ‘경제민주화’는 재벌 개혁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김종인 전 의원을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영입하는 자리에서 ‘경제민주화’ 실천을 간곡히 부탁하는 장면이 한 TV 화면에 떴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17대 대선의 화두로 떠올랐던 ‘경제민주화’가 다시 살아날까 섬뜩했다. 김종인 위원장은 2012년 17대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새누리당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한 몫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한 김종인 위원장이 이번에는 야당 편에 서서 ‘경제민주화’ 깃발을 치켜세우려고 하는데 그 기세는 어느 정도일까? 김종인 위원장이 2012년 11월에 출간한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를 읽었다.

김종인 위원장은 이 책에서 경제민주화가 무엇인가를 스스로 밝혔다. “경제민주화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거대경제세력(주: 김 위원장은 책 6쪽에서 ‘재벌’을 자신은 ‘대규모경제세력’이라고 부른다고 밝혔다)이 나라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독재자가 나라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민주헌법이 있듯 거대경제세력이 나라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경제민주화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하루아침에 어떻게 하기 어려울 것이다. 꾸준히 노력하면서 국민이 인식하도록 해야 한다.”(책 59쪽.)

김종인 위원장은 책에서 경제민주화를 향한 여섯 가지 정책과제를 제시했다. 핵심 내용만 언급한다.

1. 양극화 해소
2. 재벌 개혁
3. 정규직 과보호 완화와 비정규직 처우 개선, ‘기업 안 노조활동’ 대신 ‘기업 밖 노조활동’ 쪽으로 노동법 개정
4. 최빈곤층과 차상위계층에 우선순위를 두는 복지정책
5. 소득재분배에 중점을 두는 조세·재정 개혁
6. 중앙은행 독립과 금산분리 금융정책

   
▲ 유령 같은 경제민주화. 정치권을 비롯하여 한국 사회 전체가 김종인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나라 경제를 망치는 그런 개념은 내버리는 것이 좋다. 사진은 김종인 비대위원장과 김상곤 인재영입위원장, 문재인 전 대표.(왼쪽부터)./사진=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논의를 위해 헌법 제119조 제①항과 제②항을 소개한다

①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
②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경제민주화 허상 붙잡느라 일 년을 허송해

박근혜 대통령은 2013년 2월 정권을 잡자마자 경제민주화를 추진하느라 거의 일 년을 보냈지만 소득 없이 시간만 낭비한 것으로 이야기된다. 그 이유는 경제민주화란 ‘실체 없는 허상’, ‘속빈 강정’이기 때문이라고 평가된다.

한국경제원, 『경제민주화의 함정』 발간하여 경제민주화를 비판해

한국경제원은 17대 대선을 앞두고 23명의 자유주의 논객들이 ‘경제민주화’를 비판한 글들을 모아 2012년 12월 『경제민주화의 함정』이라는 소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에 나타난 일부 필진들의 언급을 통해 보면 경제민주화는 ‘실체 없는 허상’, ‘속빈 강정’임을 알 수 있다. 다음 글은 필진들의 주장을 거의 수정 없이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박동운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현진권(자유경제원장): 경제민주화는 경제학자도 모르는 말이다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는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를 통해 검색해보면 경제민주화 ‘Economic Democratization’은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경제학회에서 1969년부터 현재까지(주: 2012년) 발행된 총 73만여 건의 경제 관련 학술 논문 데이터베이스인 이콘리트(Econlit)를 검색해 봐도, ‘Economic Democratization’ 주제를 가진 논문은 한 건도 없다. 세계 최대 규모의 초록 데이터베이스인 스코퍼스(Scopus)에서도 마찬가지다. 100여 년의 전통을 가진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학 사전인 팔그레이브 경제학 사전에서도 이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정도라면 경제민주화란 말은 경제학에서 학문적 근거가 없는 용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황수연(경성대 교수): 경제민주화란 경제문제에 극히 반민주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것

“민주주의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사상이니 경제민주화는 경제문제를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하자는 의미일 것이다. 국민의 뜻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은 소위 소비자주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 그러나 경제민주화를 옹호하는 정치인들과 정당들은 소비자주권을 염두에 두고 경제민주화를 주장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경제문제에 극히 반민주적인 방식을 사용하는 것을 경제민주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한다. 경제민주화가 아닌 것을 경제민주화라고 우기는 것이다.”

신중섭(강원대 교수): 경제민주화는 성공한 기업에 대한 적대감, 시기심에서 발원

“어지러운 세상에선 좋은 말이 난무하지만, 도대체 그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종잡을 수 없다.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조차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 이런 말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경제민주화’이다. …. 경제민주화에 대한 최근의 정치적 담론이 걱정스러운 것은 그것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기업에 대한 적대감이나 시기심에서 발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광동(나라정책연구원장): 경제민주화란 세계로 뻗어가는 기업을 겨누는 칼날

“자유 선택에 따라 이익을 함께 나누고 증진시키기 위한 자유 거래와 계약을 규제할 목적에 따른 ‘경제민주화’란 곧 경제에 대한 경제외적통제이며 사적 영역에 대한 불필요한 공적통제이다. 시장 개척과 기술 개발로 경쟁력을 갖춰 세계로 나가며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대기업에게 ‘경제민주화’란 칼날을 겨눠 규제하고 떠나게 만든다면 그것만큼 사회 전체의 희생을 초래하는 일은 없다.”

조동근(명지대 교수): 경제민주화는 공진화(共進化)라는 수레바퀴에 모래를 뿌리는 격

“경제민주화는 크게 보아 헌법 조항, 작게 보아 헌법의 ‘어귀’에 지나지 않는다. 논증 없이 헌법 정신이라는 당위로 제시되는 경제민주화만큼 불편한 진실은 없다. 경제민주화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요술지팡일 수는 없다. 오히려 시장의 활력을 해치고 갈등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이룬 경제적 번영은 ‘경제의 자유주의와 정치의 민주주의가 간섭 없이 공진화하면서 서로서로 발전의 토대가 됐기 때문이다. 정치와 경제를 섞는 경제민주화는 공진화라는 수레바퀴에 노래를 뿌리는 격이다.”

정규석(강원대 교수): 경제민주화는 글로벌 기업 쫓아내 일자리 사라지게 해

“경제민주화 논쟁이 ‘잘 나가는 대기업 때리기’에 들어가면 말이 달라진다. …. 경제민주화 외침으로 글로벌 기업들이 사라지면 좋은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사라져 대기업에 가기 위한 대학생들의 치열한 취업 경쟁도 완화되고, 더불어 초중고의 교육열도 완화되어 경쟁 없는, 사람 중심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 그러면 경제민주화 주장자들이 희망하는 것처럼 글로벌 기업들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운 중소기업이 자라나고 독과점이나 경제적 집중도도 완화되며 경쟁보다는 협력이 강물처럼 넘치는 사람 중심의 세상이 열릴 것인가?”

   
▲ 경제민주화에 대한 최근의 정치적 담론이 걱정스러운 것은 그것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기업에 대한 적대감이나 시기심에서 발원하고 있다는 점이다./사진=연합뉴스

민경국(강원대 교수): 경제민주화는 1980년대 이후 독일에서도 사라져

“독일은 ‘68문화혁명’으로 사회주의를 선택한 1970년대에 다시 경제민주화 목소리가 커졌고 그것이 마치 시대정신인 것처럼 정치의 화두가 되었다. 1980년대 이후부터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 1987년 9차 개정된 현행 헌법 제119조 제2항에 ‘경제민주화’가 도입되었다. 이 조항을 ‘김종인 조항’이라고도 말한다. 그가 경제민주화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라는 말은 그가 만든 말이 아니라 그가 1970년대에 독일에서 배웠던 것을 전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 유령 같은 경제민주화! 정치권을 비롯하여 한국 사회 전체가 김종인 씨에게 놀아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나라 경제를 망치는 그런 개념은 내버리는 것이 좋다.”

배진영(인제대 교수): 경제민주화는 소유권의 사회화

“경제민주화라는 용어 속에는 ‘투쟁’과 ‘쟁취’의 섬뜩한 기운이 배어 있다. 경제민주화를 용어 그대로 해석하면 그것은 경제에 민주주의적인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 중심으로 1인1표제의 평등한 참여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 않은가? 경제에 이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바로 기업의 지배구조를 민주주의 방식으로 바꾸겠다는 것으로 기업의 소유권을 사회화하겠다는 뜻이다.”

김인영(한림대 교수): 경제민주화는 재산권까지 침해

“경제민주화의 내용은 문제가 많고 모순적이다. 첫째, 내용적으로 정체불명의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민주화이다. …. 둘째, 커다란 범주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 셋째, 대선 주자들의 경제민주화 공약은(주: 17대 대선) 정부 규제로는 모자라 입법으로 강제하고, 나아가 기본권인 재산권까지 침해하는 수준이다.”

좌승희(영남대 석좌교수): 경제민주화는 기업의 존재 이유와 효율성을 훼손

“경제민주화 주창자들은 하나같이 기업경영의 민주화를 그 전제라고 한다. 기업경영을 민주화하여 모든 구성원들이 동등하게 경영에 참여하게 되면 각자의 성과에 관계없이 소득을 평등하게 나누거나, 아니면 적어도 성과만큼 충분한 보상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될 소지가 크기 때문에, 기업 내부 활동에 있어 태업 가능성이 커지고 기업의 효율성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김행범(부산대 교수): 경제민주화는 사회주의로 가는 길

“자유시장 질서를 원칙으로 정한 것이 제119조 제1항이고 그 예외적 제한을 정한 것이 제2항이었겠지만, 여야가 한 목소리로 떠들어대는 정책 공약들을 보면 이제 제2항만이 원칙이 되고 제1항은 실종되어버린 것 같다. 근본과 지엽이 전도된 느낌이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내세우는 소위 경제민주화 프로그램은 시장에 대한 불신과 기업에 대한 증오로 가득 차 있다. 그 핵심은 정치인이 임의로 정하는 기준으로 경제성과를 결과적 평등주의로 왜곡하는 것이다.”

김정호(연세대 특임교수): 초강력 경제민주화 정책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어

“한국의 직접세는 이미 지나치게 ‘민주화’되었다. 대기업의 상위 1%가 전체 법인세의 80%를 부담한다. 개인소득세의 경우 상위 1%가 전체의 45%를 부담한다. 자영업자의 상위 7%가 종합소득세의 85%를, 근로 소득자 상위 12%가 전체 근로소득세의 85%를 각각 낸다. 반면 전체 근로 소득자와 자영업자의 40% 가량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고 있다.”

송원근(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민주화란 이름의 또 다른 전체주의를 경계해야

“경제민주화를 명분으로 대기업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지만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 커질수록 대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기업에 대한 전반적인 규제 강화가 나타날 것이다. 더 나아가 정부의 개입과 관료적 관리가 특정 집단이 아닌 개인의 일상생활까지 옥죌 수 있고, 민주화라는 이름의 또 다른 전체주의가 우리 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 이것이 경제민주화의 본질이고 앞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