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한미관계 최상 수준…중국 대북관계 딜레마

   
▲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
마이클 그린. CSIS 선임부소장, 부시의 백악관 NSC에서 아시아선임국장을 역임한 대표적 일본통.

그가 한국신문에 보내는 독점 칼럼을 유의미하게 챙겨보는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전형적인 미국식 안보논리에 매몰됐다는 인상을 주곤 했지만 가끔 놀라운 정보와 통찰을 보여주는 아주 영리한 인사다.

12일자(금) 중앙일보에 보낸 그의 글은 동북아 정세를 가늠하는데 몇 가지 대단히 중요한 단서를 담고 있다. 박대통령이 제안한 ‘5자회담’이 실은 청와대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폭로’(?)가 그것이다.

그러니까 한때 북핵 해법의 틀로 4년을 유지하며 제법 큰 합의를 몇 개 도출해 왔던 6자회담이, 원래는 미국의 제안으로 5자회담으로 출발하려는 것을 중국의 결사반대로 북한이 동등하게 참여하는 6자회담으로 탄생하게 됐다는 몰랐던 증언이다.

이는 실로 대단히 흥미롭고 놀라운 사실이며 깊은 함의를 품고 있다.

   
▲ 박근혜 정부는 한미관계를 실질적으로 최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과 같다. 한국의 대북 강수에 기다렸다는 듯 호응하는 미국의 화답 조치가 우연은 아닌 것이다. 사진은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네 번째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간 포괄적 전략동맹 관계를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첫째, 오늘날 북한 핵 문제가 이렇게까지 흘러온 것에 대해 적어도 중국의 책임이 절반은 된다고 말할 수 있겠다. 한마디로 북한이 ‘탈선 비행 청소년’(spoil)이 되어가는데 중국은 방임으로 일조했다. 그것이 북한을 위한 길이 아님을 알았을 텐데도 충직한 우정보다는 현실적 자국의 이익을 택한 거다.

둘째, 현실성은 없는 ‘신의 한 수’인 ‘5자회담’ 제안을 굳이 왜 대통령이 나서서 했는지 의아했는데 그 의문이 어느 정도 해소됐다. 미국과 충분한 사전조율과 각본 속에 북핵 문제 해결에 한국의 주도적인 모습을 대내외에 공표하겠다는 ‘상징’으로 연출된 것이다.

적어도 그 ‘무게감’과 진정성을 증명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는 모험을 감수하며 동북아 외교의 방향을 선언한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중국과 러시아야 뻔히 시큰둥할 것을 짐작하면서도 한-미-일의 결속에 ‘올인’한 것과 같다.

셋째, 앞으로 북핵 대화국면이 조성된다면 그 땐 5자회담의 ‘틀’ 외에는 없다. 퇴로를 닫은 효과가 생긴 것이다. 이는 중국에 대해서는 간접적이나 강한 압박요인으로 작용한다. 언제나 북한편에서 북한의 숨통을 틔워주었던 중국으로선 한-미-일 공조를 과거만큼은 깨기 어려운 포석이다.

넷째, 지금이야말로 한미관계가 그 어느 때 정권보다 실질적으로 강력하다는 것이 증명됐다. 과거 언론보도 이미지로는 MB정부가 들어서며 한미관계가 아주 각별해진 것처럼 비쳤다. 그런데 정작 이렇다 할 실속이나 구체적인 진전은 눈에 띄지 않았다.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격이었다.

그에 비하면 박근혜 정부는 한미관계를 실질적으로 최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과 같다. 한국의 대북 강수에 기다렸다는 듯 호응하는 미국의 화답 조치가 우연은 아닌 것이다. 미국은 지금 외교적 ‘수사(修辭)’보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한국을 뒷받침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엔 어떤 시사점이 있을까? 이는 곧 對중국 메시지의 단서가 된다.

다섯째, ‘사드’도입 결정으로 촉발된, 한국을 향한 중국의 무례한 신경질과 다방면의 압박이 예상보다 커지지 못할 것임을 시사한다. 이는 대단히 민감하고 조심스런 대목이나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다. 과거 대외관계의 여러 정책 옵션 중에서 미국의 강한 후원이 결여된 한국의 독자적인 선택은 언제나 주변국의 무시를 받아왔다.

그러나 미국의 주도면밀한 지원이 뒷받침됐다는 신호가 있을 때에는 중국은 신중하게 접근한다. 이제는 한미관계의 상황을 중국이 “알아차렸다”고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더 이상 ‘환구시보’의 무례한 언어도발은 중국 공산당의 기만전술 이상의 의미는 갖지 못한다. 현실에선 구현되지 못하는 찻잔 속 소용돌이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제 한국은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고 말았다’는 거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못한다. 단순히 북한 ‘벌주기(제재)’의 문제가 아니다. 북한정권을 어떻게 이해하며 어떤 대상으로 바라보냐는 인식론적이고 실존적인 질문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모순적인 현실의 맨 꼭대기에 자리한 관념의 문제는 추상의 사다리만 높인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고민을 정공법으로 헤쳐가기 위해선 물질에 매이지 않는 고도의 철학적 사고와 결단이 필요한 법이다. 그곳은 땀과 눈물로 채워진 희생을 값으로 요구하는 세계다.

때론 진실 자체가 두려울 때가 있다. 지금 당신은 두려운가?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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