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산권 침해하는 비자발적 기부금, 등골 휘게 만드는 법정 부담금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기업바로알기: 준조세의 실태와 문제점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면 정상(正常)이 아니다. 준조세가 그렇다. 준(準)조세란 ‘조세 이외에 기업들이 내는 각종 부담금’을 말하는데 이 총액이 법인세보다 많고, 연구개발(R&D) 투자지출을 능가한다. 그러고도 준조세는 계속 빠르게 증가하는 중이다. 

지난 연말, 정치권은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을 국회에서 비준하는 대가로 ‘농어촌 상생협력기금’을 조성하겠다며 민간기업 등으로부터 매년 1천억 원씩 10년 동안 1조 원을 걷기로 한 바 있다. 그리고 최근에 정부는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에 별도의 부담금을 부과하는 ‘외국인 고용부담제’를 신설하겠다고 발표하여 중소기업들의 볼멘 원성을 사고 있다. 

다 알다시피 지금 우리 기업들은 세계경제 위축에 중국 경쟁기업의 턱밑 추격까지 가세해서 가뜩이나 힘든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와 정치권은 각종 명목으로 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을 벌이며 기업의 등골을 더욱 휘게 만들고 있다.  

   
▲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조세법률주의를 헌법에 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즉 법률에 근거 없이 국가는 조세를 부과·징수할 수 없고 국민은 조세 납부를 강요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국가의 최상위 규범에 못 박음으로써 정부의 재량적 판단이나 임의적 정책에 의해 국민의 재산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사진=미디어펜


준조세 부담이 법인세 총액이나 민간 R&D 투자총액보다 많아
 
엄밀하게 따지면 준조세는 학문적으로 또는 법적으로 개념이 정립된 용어는 아니다. 준조세가 무엇을 어디까지 포괄하는지는 말하는 이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①기업 부담 사회보험료, ②부담금관리기본법에 열거된 각종 부담금, ③비자발적인 기부금 및 성금의 세 가지를 합해서 준조세로 본다. 
이 중 기업 부담 사회보험료는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중 고용주 부담분이며, 2001년도 10조원에서 2014년에는 38.7조원으로 급증했다. 법정 부담금은 폐기물 부담금, 개발부담금, 전력산업기반기금부담금, 국민건강증진부담금, 석유 수입·판매 부과금 등으로 2014년도 기준으로 총 95가지에 이른다. 이 역시 2001년 6.7조원에서 2014년에는 17.2조원으로 징수액이 급증했다. 세 번째의 기부금 및 성금은 법적 근거는 없이 정부의 정치성 사업 또는 체육, 문화, 외교 행사에 기업의 돈이 정부 쌈짓돈처럼 동원되는 경우이다. 상생협력기금을 비롯해서 평창올림픽 후원금, 동반성장기금, 미소금융기금 등 가짓수도 많고 금액도 만만치 않을 테지만 역설적으로 법적 근거가 없어서 정확한 실태 파악이 어렵다.   

비자발적 기부금 및 성금을 제외하고, ①과 ②만 가지고 준조세 부담이 얼마나 늘었고 과중한지 살펴보자. 하나의 방법은 법인세 또는 R&D 투자액과 준조세 부담을 견주어 보는 것이다(그림 참조). 2001년에는 우연히도 법인세와 준조세가 각각 17조원 가량으로 엇비슷했다. 그러나 2014년에 이르면 준조세는 55.9조원으로 급증하여 법인세 총액 42.6조원을 훌쩍 넘는다. 지난 14년 동안 준조세 부담이 법인세 부담보다 비율로는 30% 이상, 금액으로는 13조원 이상 늘어난 것이다. 

   
▲ 그림. 준조세(사회보험료 + 법정 부담금)와 법인세, R&D 투자액 비교.


경제활동이 늘면 준조세 총액도 증가하기 때문에 절대금액이 늘었다고 해서 부담이 과중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이 점을 감안해서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따로 살펴보면, GDP 대비 법인세는 지난 14년 동안 2.5%에서 2.9%로 약간 증가한 반면, 준조세는 2.5%에서 3.8%로 급증하였다. 기업이 내는 법인세와 준조세 모두 경제성장 속도보다 빠르게 증가하였고, 특히 준조세 부담이 늘어나는 속도가 가장 더 빠른 속도로 늘었던 것이다. 

이렇게 준조세 부담이 크게 늘어나는 와중에도 우리 기업들이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살아남고 미래의 먹거리를 찾기 위해 R&D 투자를 크게 늘린 것은 고무적이다. GDP 대비 민간 R&D는 2001년 1.7%에서 2014년 3.2%로 증가했고, 특히 2013년부터는 R&D 투자액이 법인세 총액을 추월했지만 준조세보다는 낮은 수준이다.

법정 부담금의 문제와 개선과제 
준조세라고 해서 모두 사회적으로 비효율적이거나 부적절한 것은 아니다. 준조세 중에서 비중이 가장 높은 첫 번째 항목-사회보험료-은 종업원에게 지급되는 임금의 일부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두 번째 항목인 법정 부담금은 모든 이에게 부과되는 조세와 달리 ‘특정 공익사업과 특별한 관계에 있는 자에게 그 사업에 필요한 경비를 부담시키기 위해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담시키는 공법상의 금전지급 의무(이상우·임혁진, 1995)’이다. 따라서 수익자 부담원칙 또는 원인자 부담원칙에 충실한 부담금은 일반 조세보다 외부효과(externality) 교정에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문제는, 법정 부담금 중에 수익자 또는 원인자 부담원칙에 부합되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고, 일반 조세로 재원을 조달해야 할 사업을 부담금에 전가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조세와 달리 부담금은 조세 저항을 피할 수 있는데다 예산 통제 밖에서 재량적 지출이 가능한 구조이기 때문에 정부 각 부처는 본능적으로 부담금 신증설 및 요율 인상을 선호한다. 이 때문에 부담금이 오·남용되지 않도록 부담금관리기본법에서 관리하도록 하고 있지만, 부담금을 늘리고 싶은 것도 정부, 관리·통제하는 주체도 정부이다 보니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림>을 다시 보면, 특히 2011년 이후 법인세수는 감소한 반면 부담금은 가파르게 늘어났다. 법인세는 기업이 번 이익에서 내는 세금이라 법인세수가 감소했다는 것은 그만큼 경영환경의 어려움을 의미한다. 그러나 2011~2014년 기간 중 법인세는 44.9조원에서 42.7조원으로 감소했지만 법정 부담금은 14.8조원에서 17.2조원으로 거꾸로 크게 늘었다. 기업들이 불만인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경제가 어려워서 가뜩이나 힘들 때에는 정부가 앞장서 부담을 덜어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어떻게 거꾸로 부담을 더 늘리느냐 하는 불만이다. 

정부가 조세 기반 예산으로 해야 할 일들을 부담금에 전가시키거나 또는 행정 편의주의로 인해 부담금 제도를 당초의 취지와 달리 운용하고 있는 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정부가 새로 만들겠다고 만지작거리는 ‘외국인 고용부담제’도 이런 경우이다. 이대로 가면 부담금은 계속 늘어나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기업과 산업을 짓누르는 요인으로 작용할 게 뻔하다. 이제라도 정부는 더 늦기 전에 수익자 부담원칙과 원인자 부담원칙에 맞지 않는 부담금을 과감히 폐지하거나 합리화하는 조치를 단행해야 한다. 

   
▲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면 정상(正常)이 아니다. 준조세가 그렇다. 준(準)조세란 ‘조세 이외에 기업들이 내는 각종 부담금’을 말하는데 이 총액이 법인세보다 많고, 연구개발(R&D) 투자지출을 능가한다. 그러고도 준조세는 계속 빠르게 증가하는 중이다./사진=미디어펜


최악의 준조세는 재산권을 침해하는 비자발적 기부금 및 성금 
 
법적 근거가 없어 종합적인 실태 파악은 어렵지만 비자발적 기부금 및 성금은 준조세 중에서 최악의 경우에 해당한다. 산발적으로 알려진 바에 의하면 앞에서 말한 ‘농어촌 상생협력기금’ 1조원(10년) 외에 청년에게 일자리 희망을 주겠다고 조성한 ‘청년희망펀드’에 대기업들이 벌써 1200억원을 출연했고, ‘재단법인 미르’에 16개 기업이 486억원을 냈다고 한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 만든 ‘미소금융’은 총 2조원 중에 기업에게 할당된 몫(?)이 1조원이고, 동반성장기금에는 87개 대기업이 7184억원을 내기로 약정했다고 한다. 이 뿐만 아니라 평창올림픽 유치나 준비를 비롯해서 국제 외교, 문화 행사에 기업의 자원이 사실상 동원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이들 모두가 생색은 정부가 내고 돈은 기업이 부담하는 형식이다. 정부는 공익적 성격의 사업에 해당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돈을 냈다고 하겠지만 ‘등 떼밀려’ 또는 ‘울며 겨자 먹기’로 동원된 것임을 가늠 못할 이는 없을 것이다. 이런 사업 및 기금 조성이 꼭 필요한 일이고, 또 그렇게 해서 소기의 성과가 기대된다면 합당한 절차를 거쳐 정부의 예산 기반 재정사업으로 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정부가 사실상 강요한 자발적 참여 형식으로 이런 사업을 예산통제 밖에서 하는 것은 사업의 합목적성과 효과성 면에서 자신이 없기 때문이고, 또 그 바깥 영역에서 기업의 돈으로 정부 관료의 영역을 확장하는데 이만한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문제를 따지자면 정부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구실로 법적 근거도 없이 기업의 돈을 쌈짓돈 마냥 쓰는 것은 단순히 행정 편의, 편법적 발상이나 정치 포퓰리즘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 주도의 이런 일들은 시장경제질서의 근간인 사유 재산권을 위협하는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국민이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은 나의 안전과 재산을 보호해줄 것을 기대하기 때문인데 이런 일들은 거꾸로 정부가 국민의 재산권 침해에 앞장서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본래 이 돈은 회사의 주주, 종업원, 소비자, 협력업체 등에 돌아가야 할 몫이었다. 
나라가 발전 하려면 재산권 보호부터 확실히 해야 한다. 이 점은 일찍이 국부론(1776)에서 아담 스미스도 강조한 내용이다. 스미스는 상업과 공업이 번성하고 나라가 부강하려면 재산권과 계약의 보호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 국민의 재산권 및 계약을 보호하는 일이 곧 ‘정부의 정의(justice of government)’이며, 정부의 정의에 대한 신뢰가 약한 나라는 발전할 수 없다고 단언하였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조세법률주의를 헌법에 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즉 법률에 근거 없이 국가는 조세를 부과·징수할 수 없고 국민은 조세 납부를 강요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국가의 최상위 규범에 못 박음으로써 정부의 재량적 판단이나 임의적 정책에 의해 국민의 재산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법적 근거 없이, 생색은 정부가 내고 돈은 기업이 부담하는 준조세는 최악이다.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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