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요즘 "해외여행 하면서 호텔 이용하면 바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에어비앤비'라는 신개념 숙박공유 서비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민박의 세계화 버전'이라고 볼 수 있는 에어비앤비는 현지인이 살고 있는 집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숙박료를 내는 시스템이다. 당연히 호텔보다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 여행비 절감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나금융지주가 국토교통부와 손잡고 추진 중인 뉴스테이 사업은 '금융권의 에어비앤비'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본래 은행지점이던 곳을 중산층 주거혁신을 위한 기업형 임대주택 '뉴스테이' 공간으로 재활용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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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오른쪽) 과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왼쪽)이 지난 11일 뉴스테이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하나금융그룹 |
강호인 국토교통부 장관과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지난 11일 서울 하나은행 舊신설동 지점 부지에서 하나금융이 보유중인 유휴지점을 부동산투자회사 리츠(REITs)에 매각하고, 리츠가 이를 주거용 오피스텔로 재건축해 내년까지 6000호 규모의 임대주택을 공급한다는 내용의 뉴스테이 추진 MOU를 체결했다. 이번 사업은 향후 최대 1만호까지 그 규모가 확대될 예정이다.
MOU 협약식이 개최된 하나은행 신설동 지점은 2년 전 문을 닫았지만 새로운 매입자를 찾지 못해 난항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에 하나금융은 과거 은행 지점이던 이곳에 주거용 오피스텔 170가구를 지은 뒤 입주자를 모집하고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90% 수준에서 정하기로 했다. 유휴공간을 활용하면서 정부 시책에도 부응하는 묘수(妙手)를 둔 것.
하나금융이 유휴공간 재활용 문제에 특별히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작년 9월 하나은행-외환은행이 KEB하나은행으로 통합되면서 '남는 지점'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KEB하나은행 지점과 舊외환은행 지점이 마주보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은 상황이다.
두 지점은 이제 '하나의 은행'이 되었기 때문에 통합이 필연적이다. 그렇다고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매입자를 기다리고만 있을 수도 없다. 이에 '뉴스테이'라는 대안이 부상한 것이다.
신설동 지점은 시작일 뿐이다. 하나금융은 올해에만 서울 청파동 지점, 인천 논현동 지점을 포함한 8개 공간을 뉴스테이 3208가구로 전환하는 작업에 돌입한다. 내년에도 전국 11개 지점을 없애고 2516가구를 지을 예정이며, 2018년에도 41개 지점을 뉴스테이 전환대상으로 선정한다.
사업은 리츠와의 공조로 진행된다. 하나금융은 뉴스테이 전환에 들어가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감정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리츠에 지점을 매각한다. 리츠는 건물을 짓고 주변 시세의 90% 선에서 입주자를 모집한다. 은행 지점은 상업용지로 허가가 나 있어 아파트보다는 오피스텔 개발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건물이 완성되면 하나금융은 리츠에 투자자로 참여, 10년 동안 임대수익을 배당 받으며 뉴스테이 건축 과정에 필요한 돈을 리츠에 대출해준 뒤 이자수익도 받는다. 하나금융으로써는 안정적인 투자처가 확보된 셈이고 국토교통부로써도 입지 좋은 땅을 확보하는 동시에 사업의 실효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하나금융지주 자원관리팀 김남호 차장은 "금융기관으로서 본업에 충실하면서 임대업이라는 투자 수익모델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의 화제를 모은 이번 결정은 타 금융회사에도 검토 대상이 되고 있다. 금융지주사 한 관계자는 "아직 국토교통부와 접촉한 단계까지 진행된 건 아니지만 당사 부동산 매각 과정에서 리츠 등 간접투자기구 활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의 이번 결정은 '로봇 시대'로 넘어가는 금융업의 패러다임 전환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기도 하다. 이세돌 9단과 로봇 알파고의 바둑 대국으로 '로봇 시대'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 요즘이지만,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리라는 예측은 금융권에서도 이미 팽배해 있다. 인터넷‧모바일뱅킹이 창구직원의 역할을 훌륭하게 대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지점의 역할은 점점 축소 추세다.
현재 금융권에 종사 중인 한 실무 관계자는 "한때 무인(無人) 지점이 유행처럼 추진되기도 했지만 무인 지점에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는 모바일로도 얼마든지 가능한 게 사실이라 그마저도 최근엔 주춤해졌다"고 말했다. 무인 지점 단계가 필요 없을 정도로 업계의 분위기가 빠르게 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겼다고 해서 그것이 무조건 로봇의 승리는 아닌 것처럼, 로봇이 은행 업무를 대체한다고 해서 금융권이 온통 '로봇 천지'가 돼버린 건 아닌 것 같다. 로봇의 공간으로 귀결될 뻔했던 유휴 은행지점 부지가 다시 한 번 '사람'의 몫으로 돌아오게 됐기 때문이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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