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을 것 없는 '양치기' 김정은…북핵은 버릴 수 없는 최후 카드
   
▲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
대북제재가 본격 가동하자 어느새 수면 위로 부상한 이슈가 있다. 첫째, 북한은 5차 핵실험을 강행할까? 둘째, 정전협정이 북미 평화협정으로 탈바꿈하면 한반도 평화는 오는가? 크게 이 두 가지에 대한 잠재적 담론이 가시권에 진입했다.

몇몇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이 국면에 5차 핵실험을 감행하겠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바깥 세상에 비친 그의 행보는 이제껏 '제정신이라면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한가지 분명해진 것은 북한 핵 기술의 완성도 수준이 추가 핵 실험의 필요충분 조건인 상황은 진작에 넘어섰다는 점이다. 남은 것은 핵 원료인 우라늄의 공급뿐인데 북한은 전세계 2위의 우라늄 매장국가이니 원료 수급은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5차 핵 실험은 그저 독재자의 결단에 달린 일일 뿐이다. 그것은 철저히 정치적인 결정이다. 5월로 예정된 7차 당대회의 성공은 체제의 내적 안정과 보상, 외적 과시로 완성된다. 지난 1월의 4차 핵실험으로 북한은 의도했던, 못했던, 지리멸렬한 남북관계의 현상타파에 성공했다. 국면을 성공적으로 전환시킨 것이다. 외부로부터의 제재는 내부 결집과 체제 단속의 좋은 명분이다.

   
▲ 북한은 언제 5차 핵실험을 할까? 평화협정 논의 같은 극적인 전기가 대두되지 않는다면 당대회일 전인 5월 초에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 김정은이 군사시설을 시찰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가 핵 실험으로 더 잃을게 없는 상황이라면 김정은 정권이 굳이 마다할 까닭이 없다. 오히려 5차 핵실험은 김정은의 확고한 핵 의지력과 핵 능력을 입증하는 절호의 기회가 될 터이다. 그 결과에는 북한 정권의 '몸 값'이 높아진다는 함의가 깔렸다. '몸 값'은 언제고 있을 협상에 반영되게 마련이다.

남한 내 사드 공론화 논쟁을 통해 북한이 얻은 전략적 통찰 중 하나는 중국의 북핵 임계치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당장은 중국이 UN제재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 같지만 전세계에 북한의 대중 전략적 가치만 확인시켜 준 셈이다.

평화협정 논의는 바로 동북아에서 북핵을 둘러싼 강대국들의 안보조건이 충돌하는 교차점에서 싹이 튼다. 미·중은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고전적인 이항대립의 구조를 벗어나기 어렵다. 알고도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적 정체(停滯)는 상호 정치적 피로감만 가중시킬 뿐이다. 누적된 피로현상이 평화협정이라는 '뇌관'으로 눈길을 가게 하는 추동력으로 작동하는 한 요인일 수 있다.

물론 중국이 훨씬 적극적이다. 얻는 이익이 월등히 크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평화협정이 잉태할 사실상(de facto) '분단의 고착화'는 곧 중국이 군사·안보적으로 통제 가능한 '안정화된 북한'을 담보한다. 딱 중국이 원하고 있는 바람직한 상태인 것이다.

전제이자 조건인 '비핵화' 여부는 '평화협정'과의 병행 또는 조건부 협상 논란의 핵심 어젠다(agenda)이긴 하나 어느 쪽이건 평화협정 논의의 공식화 자체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에 주한미군 철수가 포함됐음도 새삼스럽지 않다. 그 결과 야기되는 한미동맹의 형해화(形骸化)는 그저 덤이다. 그렇기에 김정일이 2000년 10월 평양을 방문했던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에게 직접 했다는 미군의 한반도 주둔을 용인한다는 발언이 크게 주목 받았던 것이다.

오랜 세월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해 버린 북한이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카드는 평화협정과 비핵화 협상의 동시진행 전략이다. 북핵 해결이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미·중에게도 아직까지 쓰지 않았던 최후의 대북 협상 카드이기도 한데 중국이 북한을 대신하여 '총대'를 메어주었으니 '판'이 커진 셈이다.

이쯤에서 세부적인 내용은 과감히 생략하고 역사적(?)일 북미 평화협정에 드디어 이르렀다고 한번 상상해 보자. 당연하지만 한국도 당사자로 참여하여 중국-북한-남한-미국의 합동서명식이 판문점에서 거행됐음을 가정한다.

북한도 비핵화를 선언, IAEA 사찰 결과 비확산은 확보됐고 '과거 핵'에 대한 폐기 절차가 완료됐다. 연례행사였던 한미 합동 군사훈련은 중단되고 주한미군은 장비 운용을 위한 최소한의 기술인력만 남고 모든 전투병과는 타 지역으로 전출됐다.

이산가족 상봉도 정례화되고 금강산 관광을 포함, 묘향산 등 북한 주요 명승지에 제한적 규모이나마 관광이 가능해졌다. 개성공단 재개는 물론이고 새로운 공업개발 단지가 남한기업의 주도로 시작됐다.

   
▲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한 4차 핵실험 광명성 4호 발사장면./사진=연합뉴스

김정은을 유일 사상의 절대적 지도자로 모신 사이비(pseudo) 신정체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 간 전대미문의 합법적 동거라는 세계사적인 기록이 한반도에서 쓰여지고 있다고 기대해 보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 때가 이르면, 북한은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건가?

'완전히 신뢰한다'는 의미는 북한이 '全한반도의 공산화'라는, 태생부터 갖고 있던 일관된 정치적 욕망을 깨끗이 포기했고, 각자 도생, 협력의 발전 노선을 선택하여 남북 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공존〮공영의 파트너십을 추구한다는 것을 아무 의심없이 믿을 수 있겠느냐는 질문이다.

적어도 남북이 하나의 정치체제로 국가통치 시스템이 작동되는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캐나다와 미국 같은 관계정립은 된 거냐고 묻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앞서 지적한 대로 그 때가 되면 80년대부터 운동권이 그렇게 비난해 오지 않았던 ‘분단의 고착화’를 피할 수 없게 됐다고 해도 말이다.

시골의 촌로건, 지식인 사회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전문가 그룹이건 이 현실적 질문에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각자가 자기의 답을 해야 하는 세계에 살고 있다. 정책결정자와 전문가들이 보여줘야 하는 미래 청사진은 개념에 일치하는 관념적인 이상향이 아니라 적나라한 현실의 실제 모습이어야 한다. 비록 그것이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일지언정 말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언제 5차 핵실험을 할까? 평화협정 논의 같은 극적인 전기가 대두되지 않는다면 당대회일 전인 5월 초에 실시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추가 핵실험이 있은 후, 평화협정과 비핵화가 맞물려 의제화된다면 한국과 미국은 외교적으로 중국에 이미 몇 수는 접히고 들어가는 꼴이다. 이마저 의도하고 시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고도의 전략이 없는 한, 미국發 평화협정 논의의 가시화는 미국의 국가이익만을 좁게 고려한 '이기적인 협상과정'이 될 것이다. /김효진 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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