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망각하는 배임…포퓰리즘적 활용, 국민연금 존속기반 흔들어
현재 정부가 설치·운용하고 있는 연기금 규모는 2015년 기준 504조여 원이다. 그 중 국민연금은 올해 2월말 기준 482조 원으로 국내총생산의 약 35%에 해당하는 규모다. 2016년도 정부 예산안보다도 크다. 이렇다보니 정치권과 정부에서는 새로운 사업에 연기금을 활용하자는 주장들이 반복적으로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을 공공복지인프라를 구축하는데 활용하는 것이 미래세대를 위한 투자라고 주장한다. 반면, 국민의 노후생활을 보장해야할 국민연금을 선심성정책에 투입할 경우 안정성과 수익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에 바른사회시민회의는 21일 연기금의 공공투자 필요성을 재검토하고, 연기금 활용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는 토론회를 개최했다.

바른사회가 주최한 ‘커지는 연기금의 공공투자 유혹, 이대로 괜찮나’ 토론회에서 패널로 나선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기금은 국민들이 노후자금으로 맡겨둔 돈이며 이는 정부나 공적기관이 임의로 빼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라며 “이런 이유로 국민연금법을 제정하여 함부로 그 기금을 사용할 수 없도록 법을 제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적사업에 국민연금기금을 동원하자는 주장은 배임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조 교수는 “저출산문제 해결정책에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하자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라며 “분명한 인과관계에 대한 경험적 증거도 없이 그저 한번 해보자는 식의 발상”이라고 강조했다. 아래 글은 조성봉 교수의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커지는 연기금의 공공투자 유혹, 이대로 괜찮나

1. 논의의 배경

2015년 말 현재 국민연금 기금자산은 시가기준 512.3조원이며, 2014년 말 대비 42.5조원(9.0%)이 증가하였다. 국내총생산의 약 33% 수준이다. 이 국민연금 기금을 돈이 필요한 공공투자 사업에 활용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와 같은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국민연금기금은 국민의 공적 자산이므로 공적인 사업에 쓸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공주택이나 공적보육시설 확충에 쓰는 것은 국민연금 기금을 위해서도 좋다는 것이다.

첫 번째 논의의 일례로 서상목 박사는 2010년 경기개발연구원에서 발간한 보고서를 통하여 국민연금기금이 일자리 창출보다는 금융시장에 집중적으로 투자되고 있으며, 이 중 상당부분은 해외시장에 투자될 예정이므로 차라리 국내 일자리 창출에 활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최근 국토부가 중산층을 위한 '뉴스테이' 정책에 국민연금을 투입하려는 것도 유사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경제기획원은 사회간접자본 확충 실행의 재원조달을 위해 40조원에 가까운 국민연금기금을 끌어다 썼다. 박근혜 대통령 인수위원회도 2013년초 기초연금 필요재원 일부를 국민연금에서 충당하겠다는 논의를 한 바 있다.

두 번째 논의의 예로 국민의당 장병완 의원은 청년주거 무이자융자 등에 국민연금을 활용하자는 이른바 '컴백홈법안'을 지난 2월 18일 제안하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야당 간사인 더불어민주당의 김성주 의원은 국민연금 기금을 활용해 공적 보육시설을 확충하여 출산율을 높인다면 기금 고갈의 근본원인인 납부자 감소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 국민연금은 주인 없는 돈이 아니다. 국민이 맡긴 돈이다. 분명한 주인이 있는 돈이며 국가에서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해야 할 책임이 있는 돈이다. 이를 빼서 다른 목적에 쓰겠다는 것은 책임을 망각하는 배임이다./사진=미디어펜


2. 국민연금기금 활용 주장의 문제점

국민연금기금을 이처럼 공적부문에 활용하자는 논의는 몇 가지 근본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는 국민연금기금이 안정성과 수익성을 전제로 운용되어야 한다는 전제를 잊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은 국민들이 노후자금으로 맡겨둔 돈이며 이는 정부나 공적기관이 임의로 빼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국민연금법을 제정하여 함부로 그 기금을 사용할 수 없도록 법을 제정한 것이다. 지금도 국민연금기금 중 일부는 국채에 투자되고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안정성과 수익성을 위한 포트폴리오 배분 차원에서의 발상이지 공적사업에 국민연금기금이 동원되어야 한다는 책임의식의 발로로서는 아니다.

두 번째로 저출산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에 활용하는 것은 국민연금기금을 오히려 안정적으로 늘리는 방안이므로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물론 인구 고령화와 저출산율에 따른 인구증가율의 감소 나아가서 인구의 감소국면에서 현재의 국민연금기금이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연금개념은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처음 도입한 것인데 이 당시는 산업혁명 이후 산업이 급성장하였고 국민국가의 형성으로 인구성장률이 10%를 상회하는 시기였기에 가능하였다는 점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수단으로 과연 저출산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현재의 저출산 문제가 단순히 주택문제나 육아문제로 인한 것인지, 공공주택과 육아시설을 확충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회·경제적인 요소가 있는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분명한 인과관계에 대한 경험적 증거도 없이 그저 한번 해보자는 식의 발상을 위해 국민의 노후자금을 동원하는 것은 다소 무책임하다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을 활용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적절한 수익률을 보장하는 사회투자채권을 통하면 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다른 재원을 활용하면 되는 것이지 국민연금기금을 동원할 필요가 없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공공주택을 건설하게 되는 것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별도로 지적되어야 한다. 그동안 주택공사 그리고 LH공사에서 건설하고 운영하고 있는 공공임대주택으로 인해 얼마나 큰 부채가 증가했으며 이 중 일부를 정부의 부채로 환원하여 국민의 세금으로 갚았는지 등에 대한 논의는 별도로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공공투자를 위해 국민연금기금을 동원하자는 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러한 포퓰리즘적 국민연금 활용이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기금의 안정적 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이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인하여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을 키우게 되고 나아가서 임의가입자의 탈퇴 등 큰 혼란을 부추길 수 있어서 국민연금의 존속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점이다.

국민연금은 주인 없는 돈이 아니다. 국민이 맡긴 돈이다. 분명한 주인이 있는 돈이며 국가에서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고 운영해야 할 책임이 있는 돈이다. 이를 빼서 다른 목적에 쓰겠다는 것은 책임을 망각하는 배임이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 국민연금기금은 국민들이 노후자금으로 맡겨둔 돈이며 이는 정부나 공적기관이 임의로 빼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이런 이유로 국민연금법을 제정하여 함부로 그 기금을 사용할 수 없도록 법을 제정한 것이다./사진=미디어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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