폄훼로 얼룩진 자유경제원의 우남 이승만 공모전…잘못된 의사표현
우남진(眞)가

이번 이승만 시 공모전에서 일어난 일은 항상 벌어져 왔었다. 파맛 시리얼이 나올 뻔 했던 적도 있었고, 오리온, 현대차, KT, 그리고 서울시청 등이 주관한 이벤트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자유경제원이 주관한 이벤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문제시 되었던 두 편의 시를 제출한 이들의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할 수 있지만 두 시에 쓰인 것들에 대해 이론을 제기할 필자의 표현의 자유도 마찬가지로 존중되어야 한다.

1. 한반도 분열?

대체 무슨 생각으로 한반도 분열의 책임을 이승만에게 돌리는 지 묻고 싶다. 1946년 6월 3일의 정읍 발언을 예로 들겠지만, 이미 그 전부터 분단은 가시화되고 있었다. 소련은 일제 관동군을 격파하고 북한에 진주하자마자 조만식 선생을 회유하는 것을 시도하였다. 조만식 선생의 회유에 실패하자 그냥 감금해 버렸다. 그리고 김일성의 독재체제를 수립하였다. 

1946년 2월 8일 김일성을 수반으로 하는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라는 사실상의 정부가 구성된 것이다. 치안 유지 등을 위한 기구라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북조선 임시 인민 위원회는 수립되자마자 남한과는 아무 상의도 없이 공산주의 정책을 시행하였다. 한반도 분열의 책임 소재는 김일성과 소련에게 있으며, 이승만의 정읍발언은 이런 김일성의 분단작업과, 1차 미, 소 공동위원회의 결렬로 매우 악화된 현실을 냉정하게 말한 것에 불과하다.

   
▲ 우남 이승만은 현대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공과가 공존하고 매우 복합적인 인물이다. 사실 왜곡에 근거한 시로 폄훼될 인물이 아니다.


2. 친일 인사 고용?

이것은 이승만의 잘못으로도 볼 수 있지만 사실상 당시 주요 정치세력들은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그 백범 김구마저도 그의 거처였던 경교장은 친일파에게 받은 것이고 그의 일대기인 백범일지도 친일파 이광수가 썼을 정도였다. 이승만 역시 친일청산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이승만이 친일파들을 그대로 썼다고 해도 그 자들이 아니면 대체 누구를 사회 요직에 배치시키란 말인가? 

충칭(重慶) 임시 정부와 같은 독립운동 세력에서 독립 후 국가 시스템 유지를 위한 인력들을 미리 양성해 놓은 것도 아니었다. 예를 들어, 경찰 교육을 받지 않은 자에게 경찰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다. 오죽하면 후에 이승만의 정적 중 한 명이 되는 독립 운동가 출신 미군정 경무국장 조병옥이 일제 강점기 경찰들을 그대로 기용하면서 그들은 Pro-jap이 아니라 Pro-job이라고 하였겠으며, 광복군 출신 이범석 장군이 창군 과정에서 일제 복무자들을 용서하고, 적극 영입하려고 했겠는가. 물론 독립 운동가 출신 인재들을 적극 기용한 것도 이승만이었다. 

광복군 출신의 이범석 장군에게 창군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맡기고, 여운형 직계의 독립 운동가 조봉암에게 토지 개혁이라는 또 하나의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이승만이 새로운 나라를 세울 때 이승만과 함께한 사람들은 독립 운동가였다. 친일파는 단지 그 독립 운동가들이 부린 것에 불과하다. 물론 같은 민족을 고문하고 박해한 악질 친일파들을 걸러내지 못한 것은 이승만의 잘못이다. 철저히 반면교사할 일이다.

3. 민족반역자?

민족반역자가 독도를 일본으로부터 되찾고, 독도 인근에 침입한 일본 어선을 엄하게 처벌하다니, 참 신기하다. 이승만은 독립 운동가 출신이고, 이승만의 독선 때문에 다른 독립 운동가들과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해방 이후 그 누구도 이승만이 독립운동가임을 부정하지 않았다. 민족반역자라는 나라를 팔아먹은 매국노들과 북한의 김씨 왕가 정도에게나 어울릴 말을 이승만에게 하다니, 민족반역자가 되찾아 왔다는 독도가 일어나 펄쩍 뛸 소리다.

4. 한강다리폭파/국민버린지도자?

소는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야, 소설가 고 박완서의 시이다. 이승만은 최소한 외양간은 고쳤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밀리고 있을 때, 미리 여성과 어린이를 소개시킨 뒤 민첩하게 서울 전체에 피난명령을 내린 것이다. 전쟁 초기 이승만의 미숙했던 점을 변호할 생각은 없지만 이 세상에는 소를 몇 번이나 잃어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아 같은 역사를 되풀이한 일이 넘친다. 그리고 한강 인도교 폭파 명령자는 지금까지도 오리무중이며 이승만은 유력한 용의자는 아니다. 물론 이승만이 지시한 일이 아니라고 해도 국가 지도자로서의 최종책임은 져야 하지만, 국법에 무죄추정의 원칙이 존재하므로 폭파 지시자가 누구인지를 지목하는 것은 증거에 근거하여 신중하여야 한다.

5. 망명정부건국?

이승만이 외국으로 도망치려고 했다는 의혹인데, 대한민국 정부나 일본 정부, GHQ의 기록은 없다. 가뜩이나 평화선 때문에 이승만을 싫어하던 일본 정부에서 이승만의 정치 생명을 끝내버릴 수 있는 증거가 있다면 발표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근거라고 KBS에서 가져온 일본 야마구치 현의 자료를 인용한 많은 신문사들의 자료는 일관적이지 않으며, C사이트에서 결정적으로 논파에 성공해, KBS는 유감을 표했으며 날조 보도 관련자 전원을 보직해임 처분하였다.

   
▲ 이번 이승만 시 공모전에서 일어난 일은 항상 벌어져 왔었다. 파맛 시리얼이 나올 뻔 했던 적도 있었고, 오리온, 현대차, KT, 그리고 서울시청 등이 주관한 이벤트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자유경제원이 주관한 이벤트에서도 마찬가지였다./자료사진=연합뉴스


6. 보도연맹학살?

2005년,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하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열심히 근, 현대사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고, 나름의 성과도 있었다. 물론 보도연맹 학살사건도 그 조사대상 중의 하나였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열심히 조사하여 억울하게 희생된 분들을 위해 노력하였지만, 2009년 11월 26일차로 보도연맹 학살사건에 관련된 수사는 종결되었으며, 이승만이 학살을 지시했다는 증거는 없었다고 발표했다. 

물론 이승만이 국가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맞다. 실제로 이승만은 3.15 부정선거를 지시하지도 않았고, 시위대에게 총을 쏘라고 지시하지도 않았고, 부정선거와 관계없이 정당하게 당선되었으나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 않은가. 이렇듯 국가 지도자가 지는 일종의 연대책임은 결코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승만이 정말로 학살을 지시했는지에 대해서는 철저한 근거를 가지고 접근하고, 확실한 증거 없이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시를 쓴 사람은 단지 웃기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상술했듯이 공모 형식의 행사가 이렇게 장난으로 엉망이 되는 경우는 매우 많았다. 이런 이벤트에서 정치적인 화제가 된 이상, 유머 이전에 이승만이라는 현대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수많은 공과가 공존하고 또 매우 복합적인 인물에 대한, 일부 사실에 거짓된 정보와 확실히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섞어 단지 맹목적인 증오만을 부추기는 저런 장난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표현하고 싶어서 글을 적게 되었다. /이태영 자유기고가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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