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5년 당시 ‘대통령 간선제’ 및 ‘7년 단임제’를 골자로 한 5공화국 헌법 수호(호헌)에 대해 미국 레이건 정부의 공개적인 지지 표명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외교부는 17일 이 같은 내용 등을 담은 총 1602권, 25만여 쪽에 달하는 외교문서를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는 '전두환 대통령 미국 방문', '김대중 귀국' 등 1985년에 생산된 문서가 중심이며, 1980년과 그 이전의 외교문서 가운데 일부도 재심의를 통해 공개 대상에 포함됐다.
공개된 외교문서에 따르면 전두환 정권은 1985년 4월 24∼29일 전 전 대통령의 방미를 앞두고 한미 정상회담 후 언론 발표 과정에서 당시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한국 정부의 호헌에 대한 공개 지지 표명을 해줄 것을 미국 측에 집요하게 요청했다.
이 같은 한국 정부의 요청은 같은 해 '2.12 총선'에서 제1야당으로 급부상한 신민당 돌풍을 계기로 한국에서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가 거세진 시점에 나온 것이다.
같은 해 4월 초 양국 정상간 언론발표문(press remarks) 교섭에 들어간 우리 정부는 레이건 대통령이 발표할 문안에 전 대통령의 '헌정수호 결의'를 지지한다는 내용을 담을 것을 요구했다.
전 전 대통령은 4월 12일 주한 미국대사와의 오찬에서 직접 '헌법 수호를 통한 평화와 안정을 위한 노력에 대해 레이건 대통령이 확고하게 지지하는 성명을 해 주기 바란다'는 뜻을 밝혔다.
정상회담을 하루 앞둔 4월 25일 저녁 미국 현지에서 열린 한미 외무장관 회동에서도 줄다리기는 계속됐다.
이원경 당시 외무장관은 전 전 대통령이 헌정질서 유지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며 거듭 지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배석한 폴 월포위츠 국무부 당시 동아태 차관보는 "한국 내에서 헌법 개정 문제가 정치 문제화돼 있는 것으로 아는데, 미국이 이 문제를 언급하면 한국의 국내 정치에 간섭한다는 인상을 줄 우려가 있다"고 맞섰다.
결국, 최종 발표문은 레이건 전 대통령이 헌법 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한국의 정치 발전을 위한 제반 조치를 지지하고, "전 대통령이 임기 말에 하겠다는 평화적 정권교체 공약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재차 강조"하는 선에서 타결됐다.
이후 전 전 대통령은 1987년 4월 13일 일체의 개헌 논의를 중단시키고 현행 헌법을 유지한다는 내용의 4.13 호헌 조치를 발표했다.
하지만 개헌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계속되자 전두환 정권도 어쩔 수 없이 4.13 호헌조치를 철회하고, 같은 해 6월 29일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6. 29 선언을 발표하면서 직선제 개헌이 이뤄졌다.
아울러 미국이 5·18 민주화 항쟁을 유혈 진압하고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의 불가피성을 인정한 사실도 이번 외교문서 공개를 통해 드러났다.
글라이스틴 주한 미국대사는 1980년 8월 29일 당시 박동진 외무부 장관과 면담에서 "미국 행정부는 이번(에) 전(두환) 장군께서 대통령에 취임하시게 됨은 한국의 국내 정세 흐름으로 보아 불가피한 것이며, 다른 대안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므로…"라고 말했다.
또 1982년 망명길에 올랐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5년 2월 총선 직전 귀국을 선언하자 한미 정부가 귀국 연기를 종용하기 위해 긴밀히 협의한 상황도 드러났다.
미국 정부는 김 전 대통령 측에 귀국 연기를 설득하는 한편, 한국 정부에도 사면, 유럽 방문 허가 등 상응하는 조치를 요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총선에서의 악영향을 우려한 것으로 보이고, 미 정부는 일종의 중재를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 정부는 김 전 대통령의 귀국 문제가 그해 4월로 협의가 이뤄지던 전 전 대통령의 방미(일명 '태평양 계획')에 영향을 줄 것을 극도로 우려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아울러 전 전 대통령은 1984년부터 남북대화를 추진하면서도 북한과 일본의 관계개선은 방해하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 전 대통령은 그해 1월 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일본의 대북관계를 계속 예의주시하고 1984년 9월 한일 정상회담을 통해 모처럼 이뤄진 양국 간 좋은 관계가 일본 측의 필요 이상의 대북 접근을 통해 깨지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지시했다.
[미디어펜=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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