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을 따라가거나 이중잣대로 '고무줄 형량'이라는 비판 직면
대한민국은 법관의 주관에 따라 판결을 막기 위해 양형기준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통해 이른 바 '고무줄 판결'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양형기준제도는 포퓰리즘을 따라가거나, 제도 자체가 이중잣대가 되어 오히려 '고무줄 형량'이라는 비판을 받게 됐다. 이에 자유경제원은 지난 19일  우리나라의 양형기준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해법은 있는지 토론해 보는 자리를 가졌다. 아래 글은 전동욱 자유와통일을향한변호사연대 변호사의 '양형제도의 문제점' 토론문 전문이다. [편집자주]
 
1. 서

양형론의 출발점은 입법자의 입장에서 기준이 되는 법률적 양형과 법관의 입장에서 기준이 되는 법관의 양형을 구별하는 것이다. 법률적 양형에는 법정형의 제정뿐만 아니라 법정형의 범위 내에서 형의 가중·감경을 정하는 처단형의 범위의 결정도 포함된다.

이에 반하여 법관의 양형은 적정한 형벌을 목표로 양형에 관한 법률규정을 개별 사례에 적용하는 과정이므로 선고형의 결정과 관련된다. 법률상의 처단형의 범위는 매우 광범위하게 결정되므로, 개별사례에서 피고인에게 적합한 형벌을 확정하는 것이 양형제도의 목적이 된다. 그러나 과연 현재의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이 법관으로 하여금 피고인에게 적합한 형벌을 확정하게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이하에서는 이에 관하여 간략히 논의하기로 한다.

2. 양형위원회의 문제점

대법원에 따르면, 「양형위원회는 국민의 보편적인 상식이 반영된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하기 위하여 양형기준을 설정하고 이와 관련된 양형정책을 연구·심의하는 대법원 산하의 독립위원회로서, 2007. 4. 27. 설립된 이후 외국 양형제도 연구, 국민 일반의 양형에 대한 인식 조사, 확정사건에 대한 양형자료조사, 공청회 및 의견조회 절차 등을 통하여 지금까지 30여개 이상의 범죄군에 대한 양형기준을 설정하였고, 설정된 양형기준은 관보 및 책자와 양형위원회 홈페이지를 통하여 국민 일반에 널리 알리고 있으며, 또한 기존에 만들어진 양형기준에 대하여도 지속적인 점검 및 보완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고 한다.
 
현 양형위원회는 양형위원 12인, 전문위원 13인, 자문위원 12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양형위원은 판사 4인, 검사 2인, 변호사 3인(1인은 판사출신), 교수 2인, 언론인 1인, 전문위원은 판사 3인, 검사 2인, 변호사 2인, 교수 6인(2인은 비법학), 그리고 자문위원은 법학 교수 5인, 비법학 교수 3인, 언론인 2인, 시민사회단체 2인 (소비자시민모임 회장과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이다.

전체 37인 중에서 10인을 제외한 27인이 현역 법조인 내지 법학교수인 상황에서 과연 이러한 인적 구성으로 국민의 보편적인 상식이 반영된 공정하고 객관적인 양형을 실현할 수 있는가에는 회의적인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다. 형사재판에서 법관은 검사나 피고인이 제출하는 증거를 통하여 드러난 자료를 가지고 양심에 따라 형량을 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양형을 판단함에 있어서 법관은 예리한 판단력, 편향되지 않는 신중성 및 고도의 정의 관념을 가질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점에서 양형 판단은 법관의 양심이 가장 민감하게 작용하는 영역이며, 법률적 지식 이상의 것을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렵고 섬세한 기술이 필요한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인적 구성으로는 양형기준표에 국민의 보편적인 상식보다는 특정 직역 종사자의 상식을 담게 될 우려가 크다 할 것이다. 

   
▲ 현재 우리나라 양형기준제도는 포퓰리즘을 따라가거나, 제도 자체가 이중잣대가 되어 오히려 '고무줄 형량'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죽음 부르는 데이트' 캡쳐.

3. 양형기준의 법체계적 문제점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하면서 법관의 독립을 천명하고 있다. 물론 양형기준은 권고적 기준에 불과하다고 하나, 이미 관료화된 사법부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굳이 위에서 보기에 튀는 판결을 하는 위험을 감수할 판사는 많지 않아 보인다.

이는 실무에서 판사 개인의 정치적 편향성에 따른 일부 판결을 제외하고는 하급심은 대법원 판례의 법리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예견가능하다. 법관이 구체적으로 형량을 정하는 것은 양형의 법제화와 이론적 체계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양형은 결국 법적문제가 아니라 가치판단의 문제로 법관이 정하는 형량의 타당성은 수치로 검증될 수 없는 창조적 형성행위로서 법정형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재량행위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대법원이 법률인 법원조직법에 근거한 양형기준을 통해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의 재량을 제한하는 것은 편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고, 법체계적으로나 입법론적으로 바람직하지 아니하다.
 
게다가 양형기준 중 일부는 실체법 규정과 상이하여 국회 입법권의 침해소지의 문제도 있다. 양형기준에 있어서 기본 형량은 당해 범죄에 있어서 가장 대표적인 기준이 되는 형량이라고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양형기준은 여러 범죄들에 대한 ‘기본영역’ 형량범위를 법률에서 정한 법정형의 하한 보다 낮게 설정하여 입법자가 정한 법률적 양형을 침해하고 있다.

물론 양형기준이 이렇게 결정된 이유는 실무상 법정형 하한보다 더 낮은 형량이 선고되고 있다는 경험적 분석에 따른 결과라고 판단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적 분석이 실정법의 범위를 이탈할 수 있는 근거는 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4. 규범원칙의 법제화 필요성

대한민국 헌법 위에는 국민정서법이 있다는 말이 있다. 국민정서법은 대한민국의 죄형법정주의를 부정하는 법논리로서 한국인의 국민정서에 맞는다는 조건만 충족되면 행정·입법·사법은 실정법에 구속되지 않는 판단 판결을 낼 수 있다는 개념이다. 그런데 유독 사법부만은 이러한 국민정서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들을 쉴 새 없이 쏟아내고 있다. (‘신안 염전 노예 사건’의 경우 얼마전인 2016. 4. 17.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의 원심을 깨고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되었다) 
 
물론 법이 사회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종종 일반국민의 시각과 차이를 불러오기도 한다. 법의 속성은 사회변회 예측이 아닌 반영에 가깝기 때문에 사후적 대처가 불가피하므로 이러한 시차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양형위원회가 만들어진지도 햇수로 10년째이지만, 최근까지도 국민법감정에 배치되는 판결은 계속되었고, 우리 사회는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양형기준이 아닌 특별법 등 신법의 제정을 통해 모색하였다.

( '벤츠 여검사'는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의 수수 금지법)이 제정되었고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이 없는 한 오는 9월부터 시행된다. '대구 어린이 황산 테러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게 됐지만, 이 일을 계기로 '태완이법'이 마련됐다. '울산계모 사건'을 계기로는 2014년 9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신설되었다.)

반면, 양형에 관하여 체계적인 법률규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양형사실들이 개별적인 사안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양형사실은 너무나 다양하고, 양형의 입법은 항상 양형인자들의 강도를 수량화 할 수 있도록 하여야 되므로 법익의 상대적인 가치서열에 따라서 개괄적으로 수량화 될 수밖에 없으므로 이에 대한 원칙과 기준도 결국 추상적이고 일반적일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는 법원조직법에서 몇 가지 양형요소에 대해 명시하고 있을 뿐 형법전에서 양형의 규범원칙에 관하여는 침묵하고 있다. 양형의 규범원칙이 형법전에 규정되지 않은 점은 실질적 법치주의를 지향하는 현대 민주주의 입법과 합치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양형기준의 제정 및 수정보다 우선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할 수 있는 양형의 규범적 기초 원칙을 하루 빨리 형법전에 규정할 필요가 있다.


5. 결   
 
양형기준은 법원간·재판부간 양형의 불균형 문제, 화이트 칼라 범죄에 대한 양형의 불균형 문제, 집행유예 선고 관행의 문제, 항소심에서의 사정 변경 없는 형의 감형의 문제, 상고심에 있어서의 심리불속행의 문제 등 양형 관련 실무관행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미있는 성과를 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위의 문제들은 형법 등 현행 형사법체계의 합리화 혹은 향판, 지역 검사 출신 및 대법관 출신 변호인들의 전관예우 관행 타파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동일한 양형 요소가 있는 사안의 경우에도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그 양형 요소를 반영할 것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이 완전히 다를 수 있다. 따라서 획일적인 양형기준에 따라 양형 요소를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아니하다.

물론 법관도 인간이므로 잘못 판단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불완전함을 보완하기 위하여 심급제도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이러한 의미에서 양형기준에의 경도는 법관들에게 획일화된 판결을 유도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전동욱 자유와통일을향한변호사연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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