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속에 열린 19대 마지막 본회가 열린 19일. 아니나 다를까 늑장과 지각으로 끝까지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1만7822건의 법안이 제출됐지만 7634건만 처리됐다. 접수된 법안 중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한 1만여 건은 자동폐기 운명을 맞았다. 경제와 민생과 직접 관련된 노동개혁 및 경제활성화 쟁점법안 상임위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법안처리율은 43%에 그치면서 17·18대 국회와 비교해 10%p 이상 뒤졌다.
식물국회, 뇌사국회라는 혹독한 평가속에서도 막말과 갑질만은 역대 최고였다. 마지막 본회의에서까지 놓지 못한 건 '갑질'이었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상시 청문회법' (국회법 개정안)을 직접 발의해 기습처리 했다. '제2의 국회선진화법'이라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은 국회상임위에서 주요 안건 심사나 현안 조사를 위해 쉽게 청문회를 개최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기존 국회법에서는 '국정감사 및 국정조사에 필요하다는 위원회의 의결이 있을 때', '법률안의 심사를 위해서 3분의 1의 요구가 있을 때' 그리고 '법률안 이외 중요한 안건의 심사를 위해서 과반수가 요구될 때'만 상임위가 청문회를 열 수 있었다.
|
|
|
▲ 최악국회 최후 '갑질' 상시청문회법…靑 "국정 발목" 일부선 거부권 촉구 |
이날 통과된 상시 청문회법은 '중요 안건'이 아니더라도 '소관 현안 조사를 위해 필요하다는 위원회 의결이 있을 때'에는 과반수 의결로 청문회를 열 수 있다. 청문회 조항은 국회선진화법 적용 대상도 아니다. 과반 야당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청문회를 열 수 있는 것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그야말로 야당 맘대로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당장 야당은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가습기 살균제 피해, 어버이연합회에 대한 청문회 개최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국회 선진화법으로 사사건건 국정 발목을 잡아온 19대 국회가 여소야대 정국에서 20대 국회를 제왕적 국회로 만들었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청문회 공화국이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지금껏 청문회가 여야 정략의 대결장으로 전락하거나, 국회의원들이 무리하게 기업인이나 공무원들을 마구잡이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불러놓고 호통을 치는 갑(甲)질의 장이었음은 삼척동자도 안다.
주먹질·멱살잡이 없애자는 좋은 취지로 18대 국회가 만든 국회선진화법이 19대 국회를 식물국회로 만들면서 어떻게 변질됐는지를 국민들은 알고 있다. 그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은 기득 정치권의 행태로 보면 언감생심이다. 특히 거야(巨野)는 이미 가습기 살균제 피해, 어버이연합회에 대한 청문회를 벼르고 있다.
청와대는 국회법 개정안 본희의 통과와 관련해 20일 "행정부를 마비시키는 법안인 만큼 즉시 개정돼야 한다"며 "정치권이 정쟁의 목적으로 청문회를 활용할 경우 정부 입장에서는 행정력에 마비가 올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우려의 입장을 밝혔다. 입법부가 행정부의 국정 통제권을 실효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청와대 측은 "20대 국회에 적용되는 국회 운영에 관한 법안이 충분한 협의와 토론도 없이 사실상 19대 국회 마지막 국회의장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기습적으로, 졸속으로 만들어졌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면서 "국회가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으려는 의도가 아니냐"고 반발했다.
청와대 뿐만 아니라 산업계 등 민간영역도 비상이 걸렸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우리 정치 수준으로 판단해보면 상시 청문회 도입 이후 상임위별로 기업인들과 민간인들이 무차별적으로 증인으로 소환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청와대는 일단 관련 법안이 정부로 이송된 이후 대통령 거부권 행사 등 다각적인 대응 방안을 고심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정연국 청와대 대변인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여러 언론이 많은 문제점을 지적해줬던데 검토를 해보고 드릴 말씀이 있으면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해 이옥남 바른사회시민회의 정치실장은 "초헌법적 발상이자 삼권분립의 원리에도 어긋난다. 입법부가 사법부 위에 군림하여 사법부까지도 좌지우지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관계자는 "최근 국회가 입법부로서의 기본적인 역할에는 소홀이 하면서 국회의 권한은 초헌법적으로라도 강화시키려는 여러 행태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며 "이는 국회가 나서서 대한민국이 반세기에 걸쳐 성취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훼손하면서까지 제왕적 권한을 갖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삼권분립이 보장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