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 최근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이 여성의 범죄에 대한 피해망상을 키우는 사회현상으로 번지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범죄 표적이 돼야 하는 현실을 개탄하는 이들이 전국에서 추모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피의자 김모(34)씨가 여성에 대한 반감과 피해망상으로 희생자를 살해한 것으로 알려진 탓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김씨의 정신분열증에 따른 '묻지마 범죄'로 보고 있지만, 일부 여성은 한국사회에 여전한 성차별과 여성에 대한 폭력을 집약적으로 드러낸 '여성 혐오' 범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 혐오로 피해자를 살해했느냐보다 이 문제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중요하다"며 "여성들은 성차별적 사회에서 여성 누구나 죽임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은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이번 사건은 성차별이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왔다"며 "여성이기 때문에 죽을 수도, 맞을 수도, 성폭력을 당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통해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홍찬숙 서울대 여성연구소 교수는 "한국사회가 급격히 변화하고 여성 노동력이 필요해져 담론 수준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졌지만, 실제로 여성의 지위는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다"며 "여성들이 현실과 담론 간 괴리를 느끼던 차에 이번 사건을 보고 집단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흔히 강력범죄는 극단적 장소나 상황에서만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밥 먹다 자연스럽게 화장실에 가는 일상 행위로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충격일 것"이라며 "누구나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고, 이를 자신의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추모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청이 2008년부터 지난 2013년까지 집계한 살인, 강도 등 강력 범죄피해자는 남성이 120만551명으로 전체의 66%를 차지했다. 여성은 62만9276명으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성폭행 피해 역시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검찰청이 매년 발간하는 ‘범죄분석’에 따르면 남성이 피해자인 성폭행 건수는 지난 2010년 702건에서 2014년 1375건으로 5년 동안 195%(673건)나 늘었다.
이 같은 통계는 여성이 범죄의 피해자라는 기존의 통념을 깨뜨린다.

한편 경찰 측은 "피의자의 정신분열증이 상당히 심각한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에 피의자가 진술하는 여성에 대한 반감이나 피해 망상이 정신분열증으로 인한 것일 소지가 높아 여성혐오 범행이라고 보기는 현재 어렵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2008년부터 모두 4차례 정신분열증으로 입원한 전력이 있다. 마지막으로 입원을 했다 올해 1월 퇴원한 뒤부터는 약을 제대로 복용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미디어펜=이상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