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연주 기자] 현대상선 용선료 인하 협상이 이달 중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면 법원 주도의 회생절차(법정관리) 돌입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현대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글로벌 해운동맹체 가입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결국 회사가 청산 절차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해외 선주들도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시장에서는 현대상선의 용선료 협상 타결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지만 '설마…'하는 희망도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배를 빌려준 선주들의 입장을 감안하면 타결이 쉽지 않아 보인다.
선주들은 현대상선이 법정관리로 가게 되면 현대상선의 용선료를 더는 받을 수 없게 되지만 다른 계약은 온전하게 지킬 수 있다. 현대상선의 용선료를 깎아주면 다른 해운업체들도 인하해줄 수밖에 없다. 주주와 투자자들로부터도 거센 항의를 받을 수 있다.
현대상선에 대한 의존도가 큰 그리스의 용선사 다나오스는 지난 18일 단체협상에서 "기존의 계약가치를 유지하는 데 초점을 두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선주들이 현대상선을 봐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2011년 대한해운, 2013년 STX팬오션 등 용선료 협상에 실패해 법정관리를 겪은 선례도 있다.
당국은 협상에 실패하면 법정관리가 불가피하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협상 타결을 위한 당국의 지원은 없다는 얘기다.
현대상선은 법정관리로 갈 경우 선주들이 입을 손해가 훨씬 커질 것이라는 점을 내세워 설득하고 있다.
금융권과 해운업계 관계자들은 현대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영업이 어려워져 결국 청산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법정관리 하에서는 현대상선 영업력의 핵심을 차지하는 글로벌 해운선사 동맹체에 가입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주가 법정관리 진입 후 계약조건을 내세워 배를 회수해 가더라도 업황 부진으로 배를 빌려줄 선사를 쉽게 찾지 못할 것으로 해운업계는 보고 있다.
현대상선에 깎아준 용선료보다 더 싼 값에 배를 빌려줘야 하거나 아예 배를 빈 채로 놀리게 될 수도 있다.
초대형 에코십은 용선료를 다소 낮추면 새 선사를 찾을 수 있을지 몰라도 수요가 적은 오래된 중형 이하 배는 철 스크랩으로 분해해 팔아야 할 수도 있다. 고철 값만 건지게 되는 셈이다.
과거 대한해운과 STX팬오션의 법정관리로 선주들이 돈을 떼인 전례도 있다.
대한해운은 주로 석탄, 철광석 등을 운송하는 벌크선 위주로 영업을 해왔는데 전체 180척 중 140척이 빌린 배였고, 2007~2008년 초 해운 시황이 절정기일 때 고가에 장기 계약을 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배를 빌려준 해외 선박업체들은 용선료 인하 요구를 무시했고, 대한해운은 2011년 초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원 주도의 채무 조정으로 선주들은 최종적으로 연체 용선료 채권액의 3%만을 인정받는 등 큰 피해를 감수해야 했다.
현대상선은 지난해 매출액 5조8000억원의 32%에 달하는 1조9000억원을 해외 선주 22곳에 용선료로 지급했다. 영국계 조디악, 싱가포르계 이스턴퍼시픽, 그리스계 다나오스·나비오스·캐피털십매니지먼트 등 5개사에게 내는 용선료가 전체 용선료의 70% 수준이다.
이 중 대한해운과 STX팬오션에게 용선료를 떼인 경험이 있는 그리스 선박업체 나비오스는 그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 실제 이번 협상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의 경우 현대증권 매각 이후 밀린 용선료를 납부했기 때문에 연체금 이슈는 크게 부각되지 않은 상태다.
채권단 관계자는 "현대상선의 용선료 연체는 이미 거의 해소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글로벌 해운업황이 크게 악화한 데다 대형 선사들이 모두 가혹한 원가절감에 들어간 상황이어서 해외 선주 입장에서는 대한해운과 STX팬오션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2011∼2013년보다 상황이 더 나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디어펜=김연주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