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남자로 못 태어나 총을 메고 싸움을 못하러가니 그 대신 비행기 생산에 산업전사가 되겠다고 굳은 결의를 가지고 여자정신대에 참가한 군국의 정렬을 가진 소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기관지 '매일신보'가 1944년 12월 24일자 지면에 보도한 강제동원 피해자 故 김순례, 이정숙 양을 소개한 내용이다.
김양 등은 광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같은 해 5월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로 강제동원돼 12월 7일 나고야 지역을 강타한 도난카이 지진으로 희생됐다.
매일신보는 지진으로 무너져내린 공장에서 몸을 피하지 못한 10대 소녀들의 죽음을 '순직을 하는 그 순간까지도 비행기 증산에 좀 더 활동 못함을 부끄러워하며, 선반 앞을 떠나지 않았다'고 묘사했다.
당시 공장에서는 '근로정신대' 피해자 6명이 건물더미에 깔려 목숨을 잃었고, 매일신보는 12월 23일부터 이틀에 걸쳐 이들의 죽음을 실제상황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미화했다.
'비행기 증산에 불철주야로 분투', '여자정신대원에 자진하야 참가', '두 소녀를 본받겠다는 전 공장에서는 증산의 열화가 북받치고 있다' 등 매일신보는 강제동원된 소녀들의 죽음을 전시 선전수단으로 이용했다.
이 같은 일제의 만행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딸의 죽음을 일가의 명예로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된 한 아버지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슬픔마저 침략 전쟁의 홍보 수단으로 이용된 사실을 모른 채 눈을 감았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6월 1일 광주시청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70여년간 감춰졌던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연다.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억울하게 죽은 소녀들을 모욕한 일제의 만행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유족들과 협의를 하고 나서 향후 행동계획 등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미디어펜=이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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