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살인 재판에서 정신감정 없었고 치료감호도 받지 않아
[미디어펜=이상일 기자]'수락산 묻지마 살인' 피의자 김학봉(61)씨가 과거 강도살인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으면서 비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인정됐음에도 치료감호 명령을 선고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아울러 당시 정신감정도 받지 않아 최근 정신질환으로 약 처방까지 받았던 김씨의 증세를 미리 치료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따라 치료감호 명령과 정신감정 등 이미 존재하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 치료를 통해 재범의 기회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3일 법조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김씨는 2001년 1월 10일 경북 청도군의 한 마을에서 이모(당시 64세·여)씨를 흉기로 마구 찔러 살해했다.

대구지법에서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김씨는 그 이전 정신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1997년 6월부터 3개월간 대구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5차례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았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법원은 입원 치료 이후에도 음주습벽, 환시, 환청, 충동적인 행동 등의 증세가 여전히 남아 있는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범행했다며 심신미약을 인정했다.

당시 적용된 구 사회보호법(현 치료감호법)에 따르면 심신장애 상태나 알코올 등의 약물중독 상태에서 범행해 재범의 위험성이 있는 자에 대해서는 치료감호 명령을 내리도록 규정돼 있었다.

사회보호법 14조는 검사의 청구로 법원이 치료감호 명령을 내리도록 규정했다. 검사의 청구가 없더라도 법원이 사건의 심리 결과 치료감호를 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때에는 검사에게 치료감호 청구를 요구할 수 있다. 

사회보호법이 폐지된 이후 제정된 현행 치료감호법 4조에도 같은 내용의 항목이 있다. 그럼에도 김씨에게는 징역 15년만 선고됐고, 치료감호 명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이 탓에 김씨는 15년 동안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올 1월 19일 만기 출소했다.

당시 김씨는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었던 정황이 드러났지만, 정신감정도 이뤄지지 않았다. 정신감정은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판사나 검사, 변호인의 신청으로 이뤄진다.

김씨의 가족은 김씨가 과거부터 환청이 들린다고 호소하는 등 정신질환 증세가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최근 수락산 범행 직전에 안산에 있는 정신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편집 조현병'(정신분열증) 약을 처방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김씨의 재범이 정신병력과 관계가 없다고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15년 전 재판과정에서 정신감정을 받지 않아 김씨의 병증을 치료할 수 있는 시점을 놓쳤다고도 볼 수 있다. 전문가들은 재범의 우려를 막기 위한 치료감호나 정신감정 제도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4년까지 법무부 치료감호소장을 맡았던 최상섭(67) 대한법정신의학회 회장은 "정식 진단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김씨의 범행들은 정신질환의 영향이 없었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정신질환자를 걸러내기 위해 정신감정이나 치료감호 제도가 있는 것"이라며 "남용할 위험성을 막는 선에서 적극적으로 제도를 이용해 치료를 받게 하고 재범을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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