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잃어버린 20년' 교훈…지나친 정치 논리 개입 피해야
[미디어펜=김재현 기자] 성장통 회피한 늙어버린 아이, 우리나라 산업 구조의 개혁과 혁신을 주저한 현재를 인용한 말이다. 늙어버린 아이는 한계기업을 잉태하고 눈덩이 부실 키우면서 금융회사의 리스크로 작용한다. 우리 경제가 휘청거리는 파장 또한 만만치 않다. 조선·철강업체가 몰려있는 경남, 부산지역 경제는 보릿고개를 넘어야 하는 험난에 맞닥드렸다.

골든타임을 놓친 구조조정은 우리 경제에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부는 칼을 뽑았다. 더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강력한 의지로 한계기업에 메스를 들이댔다. 기업은 경영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체질을 강화하기 위해 내려놓아야 하며 노조는 뜻을 같이해야 한다. 채권은행은 정확한 진단을 통한 건강진단표를 만들어 혁신 이행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 지난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일방적 조선업 구조조정 중단 결의대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를 마친 대우조선해양 노조원들이 버스로 향하고 있다./연합뉴스

단기적인 구조조정이 아닌 중장기적인 구조조정 마스터 플랜을 세웠다. 물론 잡음도 많다. 대우조선해양과 같이 수차례 혈세를 투입했음에도 또다시 구조조정 풍랑을 만나 손을 벌리고 있다. 주채권은행으로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부실 관리 책임도 시끄럽다. 산은의 기업 구조조정 폭풍질타가 계속되면서 정치권도 나설 요량이다.

임시국회가 본격화되면서 야당을 중심으로 조선·해운 구조조정 관련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추진키로 합의했다. 정부가 청와대 서별관에서 밀실 구조조정 짜맞추기를 했다는 이유다.

서별관 회의는 국민의 정부때부터 '경제정책 중심' 역할을 위해 경제수장들이 수시로 모여 의견을 주고 받는 상시적인 모임이다. 보안유지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청와대 서별관 회의로 곤혹을 당했던 때가 있었다. 동양사태다. 1만7000여명의 동양 피해자가 발생했다. 동양 그룹 오너 일가의 모럴헤저드가 질타 받았다. 또 관치금융 논란도 확산됐다.

동양사태로 인해 금융시장의 여파가 큰 만큼 경제 관료들이 모여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회의는 공개든 비공개를 떠나 당연한 처사다. 다만, 국내 경제의 이상기류나 금융위기 상황이 불거졌을때 국가가 개입되는 꼴이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정부가 해결할 수 밖에 없는 책임론 문제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경제 컨트롤할 수 있는 구심점이 없다는 까닭에 여론은 서별관 회의를 왜곡시켰다.

이 때문인지 정부는 정부 관계 기관 합동 '산업·기업 구조조정 추진현황 및 향후계획' 브리핑을 갖고 개편방향과 향후계획을 발표했다.

조선·해운  등 경기민감업종에 대한 총력전을 위해 2년 한시 공식 회의체인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설치해 컨트롤 타워 역할을 강화키로 했다. 투명성을 보장시키겠다는 의지다.

구조조정호(號)가 돛을 올리고 본격적인 출항을 했다. 자칫 산으로 갈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이 조선·해운 구조조정과 관련해 '청와대 서별관회의 청문회'를 추진키로 합의했다. 여기에 대우조선해양 혈세 논란도 되짚어볼 기세다.

여당은 홍기택 전 산은 회장의 대우조선해양 혈세 투입 정부 짜맞추기 들러리 발언과 관련 야당측의 요구에 대해 "팩트를 제시하지 않고 정책 결정 과정의 일을 청문회로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대했다.

야당을 중심으로 한 청문회 전운이 드러웠다. 먹고 살기 힘들다는 국민의 아우성은 저버리고 국회는 민생을 돌보지 않은 채 이슈를 부각시켜 논란을 더욱 가중시킬 전망이다.

구조조정 문제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 모두가 만족하는 구조조정은 없다. 정치권이 개입하게 되면 특정 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 밖에 없는 생리인만큼 구조조정이 더 복잡해진다. 산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우려를 더욱 확인시킨다.

왜 경제통을 회피해 늙은 아이가 돼버렸는지 되새길 필요가 있다. 시장 주도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함은 누구나 인정한다. 한계로 치닫은 기업은 금융권의 자금지원이 있다면 회생할 수 있다는 희망의 끈을 놓치 않는다. 채권은행은 부실 우려와 뼈를 깎는 자구책을 요구하며 맞선다. 철강과 조선업은 기간산업이자 대기업이 영위한다. 고용과 협력업체, 지역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서로 자신의 주장을 펼치며 으르렁대는 사이에 늙어간다. 이 둘 사이 조정자가 없다면 세월을 좀먹을 수 밖에 없다. 이틈을 타 지역민들의 표를 의식한 야당은 재벌 특혜, 근로자 감원 저지 등을 주장하며 딴죽을 걸며 시간을 소비할 수 있다.

과거 정치권의 구조조정 개입으로 하세월을 보내며 골든타임을 놓친 적이 있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대선 전 기아차 처리 문제를 놓고 '국민차 살리기 운동'을 벌이며 구조조정을 미뤘다.

STX조선해양은 경제 문제를 도 넘은 정치논리 개입으로 망친 사례다. 지난 2009년 1000억원대 적자를 내자 2013년 경영난에 시달리며 파산 위기에 몰렸다. STX조선소가 있던 부산, 경남 지역구 여야 의원들은 금융위원장을 불러 신속한 자금 지원을 요구했다. 이들의 지나친 요구에 눈치를 보던 금융당국은 채권단 공동 관리 방식을 선택했다. 지금 STX조선해양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2011년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희망퇴직 문제가 '희망버스'운동으로 정치적인 이슈가 됐다. 희망버스 운동은 자본과 노동의 대립구도를 그리며 일부 시민들이 곤경에 처한 노동자편에 섰다. 5차에 걸친 희망버스 운동에 힘입어 92명이 복직했다. 

그러나 전 세계적인 불황은 조선업계를 강타했다. 당시 정치권의 중재로 합의를 이뤄냈지만 올해 1월 채권단 자율협약을 신청했고 영도조선소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뜨거운 가슴보다 차가운 머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치가 개입한 희망버스 운동으로 얻은 것은 없다. 이미 경쟁력이 떨어진 이 곳엔 태풍의 눈 안에 안주해 있었을 뿐 구조조정 운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

경제는 공짜가 없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나친 정치논리를 피해야 한다. 산업과 금융의 회생이라는 전문적인 지식과 판단에 기초해 집중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산은에 대한 대우조선해양의 관리부실도 도마 위에 앉았다. 과거 산은의 구조조정 성과는 잊어버린채 모진 질타는 산은을 더욱 지치게 하고 있다. 정부도 이번 조선·철강업 구조조정에 전문가 집단으로 산은을 지목했다. 물론 부실로 치닫게 한 벌로 가혹한 산은 내 구조조정 죄값을 치르고 있다.

산은이 구조조정 전문집단으로서 심기일전을 통해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기대해야 할 때 산은의 능력을 의심하고 과거의 잘못을 파헤친다고 해서 나아질 것이 있을까 의문이다. 변양호 신드롬까지 고개를 들고 있다고 하는데 책임지고 구조조정의 선봉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

주식에 손 댔다가 반토막이 난 친구에게 "왜 주식투자를 했느냐"는 무의미한 우문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이참에 우리나라는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일본의 구조조정 실패와 부실채권 누적의 교훈을 명심해야 할 때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버블붕괴로 인해 부실해진 대출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기업의 부실을 숨긴채 시작됐다. 부실채권이 축적되는 동안 신용창조력은 떨어지면서 일본경제 체력을 떨어뜨리게 됐다.

기업 구조조정의 실기는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진다. 이는 다시 대출 부진을 낳고 기업의 투자와 소비를 위축시킨다. 좀비처럼 다른 기업으로 부실이 전염되면서 악순환을 일으킨다. 신속하고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교훈이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것이 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나친 정치논리가 골든타임 발목을 잡는다면 우리나라는 구조조정 망령에서 헤어나올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미디어펜=김재현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