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금융권 CEO 임기 만료, 관피아·모피아 하마평 솔솔
[미디어펜=김재현 기자] 낙하산(落下傘)의 단어적 의미는 공중에서 사람이나 물자를 안전하게 낙하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우산 모양의 기구다. 여기에 인사(人事)를 붙이면 뜻이 추해진다.

경제용어로서 낙하산 인사는 해당 기관의 직무에 대한 능력이나 자질, 전문성과 관계없이 권력자가 특정인을 중요 직책에 임명하는 것을 의미한다. 임자께서 자신의 성향과 철학에 따라 맞는 인물을 그 자리에 꽂는 '코드 인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낙하산 파티는 계속됐다. 명분이야 인사 혁신을 최우선으로 삼았지만 실제 주요 공기관이나 요직에 낙하산 인사들로 채워졌다.

   
▲ 올 하반기 금융권 CEO들의 교체시기가 다가오면서 낙하산 파티 우려가 터져나오고 있다./연합뉴스

정부, 정치권, 금융당국으로 이어진 관치금융은 금융공기업, 민간 금융회사에 이르기까지 한국금융의 고위 경영층을 점령하게 됐다. 전문성을 최고의 덕목이 되어야 할 금융권 인사는 정실(情實)에 얽매이면서 직원들의 사기저하, 비전상실, 낮은 윤리의식 수준 속에서 끊이지 않는 사건사고를 유발했다.

관직의 인사나 공기관 수장의 경우 정치적 사슬로 이어지며 여러가지 구설수에 휘말리기 쉽다. 리더십과 전문성, 도덕성 등 인사 검증 작업을 제대로 수행해야 한다.

낙하산 인사는 조직마다 독특한 기업문화를 무시하면 직원들의 동기부여를 끌어내지 못한다. 노조의 반대에 부딪히면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시도한다. 개혁은 그림의 떡이 된다. 낙하산의 경영철학마저 펼치지 못하니 직원들은 낙하산 CEO에게 반감을 갖는다. 직원들의 주인의식과 자긍심은 심어주지 못한채 정부의 정책에 눈치를 보면서 직원들을 비만증 환자로 전락시켜 버린다.

쳇바퀴 도는 이같은 행동은 조직에게 독이 된다. 조직의 구조적 환부를 도려내지 못한 채 임기 채우기에 급급할 뿐 환골탈태는 뒷전이다.

최근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의 돌출 행보가 낙하산 인사의 폐단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는 당시 산은 회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있게 자신을 낙하산이라 자부했다. 낙하산이 뭔가 보여주겠다며 호언장담했다.

하지만 당시 그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홍 전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 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책금융 체제 개편 업무를 맡았다. 산은 민영화를 찬성한 그가 정책금융의 맏형격인 산은 회장 자리에 앉는 자체가 모순이라는 것. 또한 학자 출신인 그가 정책금융이라는 거대한 기차를 끌고 가기엔 적임자로서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4조2000억원 대의 대우조선해양에 대해 지원했지만 부실로 이어졌으며 '분식 회계' 등 비리 논란으로 불거지자 '정부의 들러리'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막대한 국고지원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부실을 남탓으로 넘겼다. 그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으로 옮기자 정부와 상의없이 휴직계를 내면서 국제기구의 우리나라 부총재 몫을 날아가게 했다. 국제적 망신을 보여줬다. 여야는 정부의 인사시스템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홍 전 회장의 이같은 돌출 행동은 관치금융 경계령으로 확대됐다. 올 하반기 금융권 CEO들의 교체 시기가 다가오면서 낙하산 파티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내년 대선을 앞둔 시점이라서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해졌다. 벌써부터 하마평에 낙하산 인사들이 입에 오르내린다.

오는 9월부터 내년 3월까지 최대 9명의 금융권 CEO의 임기가 만료된다.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한국거래소, 한국자산관리공사, 한국예탁결제원, 우리은행, IBK기업은행, 한국수출입은행 등 정부가 대주주이거나 공기업이 대상이다.

특히 공공기관 대상에서 제외된 신보, 기보, 자산관리공사, 예탁원 등은 여전히 정부를 바라보는 입장이어서 대선 캠프 출신이나 정부 관료들의 낙하산 파티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금융권의 시각이다.

우리는 지금 모든 분야에서 새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관행과 혁신을 추진 중이다. 벼랑 끝에 있는 한국경제는 골든타임 끝 언저리에 서 있다. 경제를 뒷받침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띤 금융으로서 국가 기간산업인 조선·해운업계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또한 성과주의를 모든 금융권으로 확산해야 하는 금융개혁을 완성시켜야 한다.

대내외 변동성의 파고를 헤쳐나가야 하는 처절한 생존게임마저 펼쳐야 하는 시점이다. 떡고물에 군침 흘리는 낙하산으로 혁신과 생존의 패러다임을 쫒을 수 있을까 의문이다.

금융권에 관행처럼 내려왔던 낙하산 인사를 배제하고 금융기관 스스로 전문성을 갖춘 CEO를 선출하는 공정한 인사시스템 도입이 필요하다.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좋은 인재를 뽑아 적재적소에 배치해 모든 일이 잘 풀리게 하고 순리대로 돌아가게 한다는 의미다. 인사(人事)가 망사(亡事)가 되는 일이 없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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