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기자]터키 정부가 최근 '6시간 쿠데타' 배후로 지목한 재미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의 송환을 미국에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으면서 양국간 갈등으로 번지는 양상이다.
펫훌라흐 귈렌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정적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TV로 중계된 연설에서 "터키는 그동안 미국이 요구한 테러리스트 추방 요구를 거절한 적이 없다"며 미국 정부에 귈렌을 추방해 터키로 넘길 것을 요구했다.
또한 미국 주도의 '테러와의 전쟁'에 자국이 기여한 공동역할을 강조하며 "만약 우리가 전략적 파트너라면 미국은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종용했다.
나아가 터키 정부 요인들까지 나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가 귈렌을 넘기지 않을 경우 미국을 적국으로 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비날리 이을드름 총리는 이날 "귈렌을 후원하는 어떤 나라도 터키의 친구가 아니며, 터키와 심각한 전쟁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했고, 술레이만 소이루 노동장관은 이번 쿠데타 뒤에 미국이 있다는 주장까지 폈다.
그러나 미국은 터키 정부에 귈렌의 범법행위를 입증할 증거를 먼저 제시할 것을 요구하면서, 쿠데타 배후에 미국이 있다는 일각의 주장도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은 이날 룩셈부르크에서 기자들에게 귈렌과 관련한 어떤 요청도 아직 받은 바 없다면서 터키 정부가 철저한 조사를 통해 귈렌이 범법행위를 했다는 "적법한 증거를 제시한다면 그것을 수용하고 검토한 뒤 알맞은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터키 정부를 지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도 이번 쿠데타 연루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적법절차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케리 장관은 이어 메블류트 차부숄루 터키 외무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미국이 실패한 쿠데타에서 어떤 역할을 했다는 공개적인 암시나 주장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며, 이는 양국 관계에 해롭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고 존 커비 미 국무부 대변인이 전했다.
이처럼 갑자기 양국 간 논쟁의 중심으로 떠오른 귈렌은 '히즈메트'(봉사)라는 이슬람 사회운동을 이끈 이슬람학자이자 종교지도자다.
귈렌과 에르도안 대통령은 한때 세속주의 군부 세력에 맞서 대항한 정치적 동지였다. 두 사람은 2002년 현 집권당인 정의개발당(AKP) 이 집권한 이후 함께 터키의 민주화를 위한 개혁을 추진했고, 이는 2005년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 협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이 동안에도 귈렌의 사회운동에 연계된 검사와 판사들이 투옥됐고, 에르도안 정부 전복을 기도한 협의로 군 관료들이 기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귈렌과 에르도안은 외교·안보 정책과 국내 정치에서 점차 멀어졌고, 귈렌은 야당을 탄압하는 에르도안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두 사람은 결국 2013년 에르도안에 대한 부패 수사를 계기로 완전히 결별한다.
당시 검경이 집권당을 겨냥한 부패사건 검거 작전을 벌이자 에르도안은 사법당국 내 귈렌 추종자들이 '사법 쿠데타'를 벌였다고 역공을 펼쳐 귈렌 추종세력을 정계·법조계·언론계·군부에서 대부분 축출했다. 귈렌과 추종자들에게는 '국가전복기도' 혐의가 적용됐다.
귈렌은 1999년 지병을 치료하고자 미국으로 이주한 이후 현재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자진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귈렌이 이끈 '히즈메트'는 교육 운동을 중심으로 하며 온건한 이슬람 운동으로 평가받는다. 터키에서 시작돼 유럽과 미국 등에도 퍼져 나가 그의 추종자들은 미국에서 160개가 넘는 공공 차터 스쿨을 여는 등 세계 각지에서 사립학교를 운영하고 있다고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터키 각계에서 귈렌의 추종세력은 대부분 권력을 잃었지만, 군부와 사법부에 지지그룹이 잔존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들의 처지가 점점 위태로워진 군부 일부가 에르도안을 몰아내려고 쿠데타를 이번 쿠데타를 주도했다는 게 에르도안 측 주장이다.
귈렌은 자신이 쿠데타의 배후라는 에르도안의 주장에 대해 앞서 "터키에서 일어난 이번 쿠데타를 강력히 비난한다. 나는 이번 쿠데타와 관계가 없다"고 전면 부인했으며, 16일 기자들과 만나 "민주주의는 군사행동을 통해 달성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밝혔다.
한편 '6시간 쿠데타'로 194명이 사망하는 등 유혈사태가 발발했던 터키 내부에선 에르도안 정부발(發) 제2의 피바람이 예상돼 국제사회의 우려를 낳고 있다. 에르도안은 쿠데타 발발 6시간여만에 도착한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서 한 연설에서 "반역에 대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쿠데타 관련자들에게 예고한 바 있다.
이날 외신에 따르면 에르도안 정권은 쿠데타에 가담한 군인 등 2839명을 체포했다. 전직 공군사령관, 육군사령관 등도 포함됐다.
헌법재판관도 붙잡혔다. 터키 전역의 판사 2745명을 해임한다는 방침을 당국은 밝혔다. 또한 쿠데타 실패 직후 인근국인 그리스로 도망가 망명 신청을 한 군인 8명에 대해서도 송환을 요구했다.
비날리 이을드름 터키 총리는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헌법재판소와 정당들아 사형제 부활이 합리적인지를 놓고 논의하는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사형제 부활 가능성마저 거론하고 있다. 에르도안의 예고대로 '숙청 피바람'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일각에선 SNS를 중심으로 에르도안 정권이 일사천리로 반란 세력을 진압한 것은 '자작극'이 아니냐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에르도안과 같은 AKP 소속 의원이었던 비평가 페이지 이스바사란은 쿠데타 발발 당시 트위터를 통해 '에르도안 배후설'을 주장했다.
집권 14년차인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지율을 높여 의원내각제를 폐지하고 미국식 대통령제를 촉진하고자 이번 쿠데타를 계획한 것일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독일 언론 슈피겔온라인은 이스바사란의 트윗 내용을 풀이했다.
[미디어펜=온라인뉴스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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