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원우 기자]내년 도입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은행권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이 발표되면서 금융노사 간에 일촉즉발의 갈등이 점화되고 있다. 은행연합회는 '금융기관들의 보신주의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며 단호한 입장이다. 반면 금융노조는 "생존권 박탈"이라며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자세다. 이 가운데 성과연봉제의 연착륙이 과연 가능할지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회장 하영구)는 기존에 예고했던 '성과연봉제 가이드라인'을 이날 오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은행 근무 직원들의 개인 성과에 따라 연봉을 최대 40%까지 더 받을 수 있다'고 명시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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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일 전국은행연합회 1층 로비에서 개최된 금융노조 총파업 1차 결의대회 현장에서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펜 |
세부적으로 보면 관리자의 경우 같은 직급끼리 연봉 차이를 최저 연봉의 30%, 일반 직원은 20% 이상으로 확대한 뒤 이를 40%까지 늘린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아울러 은행원 연봉에서 성과급 비중을 20~30% 이상으로 확대하고 기본급 인상률도 성과에 따라 차등을 두도록 했다.
그간 은행권의 성과 측정은 지점 단위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부점장급 미만 일반직원은 이른바 '연공서열'에 의거한 호봉제 임금을 받고 있다. 시중은행 사용자 측이 성과연봉제를 통해 이와 같은 분위기를 반전시키려는 이유는 현 상황의 임금구조가 과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은행연합 한 관계자는 "은행의 대표적 수익지표인 순이자마진(NIM)만 봐도 지난 2005년 2.82%에서 작년 말 역대 최저 수준인 1.60%까지 떨어졌다"면서 "'은행=신의 직장'이라는 공식이 통용되는 현실이 바뀌지 않으면 은행산업에는 비전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시중은행의 총이익 대비 임금비중 역시 같은 기간 6.3%에서 10.6%로 상승해 임금에 들어가는 비용이 큰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금융노조의 거센 반발이다. 각 산별노조 중에서 상당히 온건한 편으로 분류되는 금융노조는 근래 보기 드문 격렬한 기세로 성과연봉제에 반발하고 있다. 이미 '9월 23일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이며 지난 20일에는 은행연합회 1층 로비에서 1차 결의대회를 열기도 했다.
은행연합의 발표 이후 금융노조 한 관계자는 "결의대회 딱 하루 만에 보란 듯이 가이드라인을 내놨다"면서 "한 마디로 금융사용자 측이 파업을 부추기는 것으로 밖에 이해가 안 된다"고 분노를 표시했다.
곧장 이날 오후 김문호 금융노조 위원장 명의의 반박 성명서가 나왔다. 성명서는 이번 가이드라인의 골자를 "시키는 대로 일하고 주는 대로 받으라는 것"이라고 요약하면서 "10만 금융노동자 전체를 노예로 만들겠다는 모욕적인 선언"이라고 정리했다.
또한 성명서는 "성과연봉제는 단순히 임금체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저성과자 해고'를 합법화하려는 노동개악의 일환"이라며 "임금삭감 방안이 아니라고 강변하는 사용자 측은 정신적 이상이 없다면 창피함을 모르는 철면피"라고 비난을 쏟아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에 대한 비판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는 성명서는 "금융노조는 모든 것을 걸고 끝까지 투쟁해 나갈 것"이라는 주장으로 마무리 됐다.
양측이 모두 단호한 입장으로 일관하면서 평화적인 타협의 가능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금융당국이 '금융개혁'의 선결과제로 꼽고 있는 성과주의가 은행권에 안정적으로 연착륙할 가능성도 그만큼 낮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금융권 한 고위관계자는 "지난 6월 평화적인 산별교섭이 결렬되면서 사실상 예고된 갈등"이라며 "상호 출혈적인 갈등으로 끝없이 치닫는다면 결국 손해는 모든 국민들에게 분산될 수밖에 없다"고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미디어펜=이원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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