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사드 배치 '전략적 모호성' 은근슬쩍…문, 오락가락 흔들리는 안보관
   
▲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우스갯말로 원판 불변의 법칙이란 게 있다. 아무리 뛰어난 화장술로 감춘다고 타고난 외모는 어쩌지 못한다는 뜻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요즘 행보를 보면 이 말이 떠오른다. 사드 논란이나 강령 개정, 문재인 대표의 안보 행보와 같은 모습들을 보면 화장술을 넘어 위장크림을 잔뜩 바르는 것 같아 보기 불편하다. 

예컨대 김종인 대표가 ‘당신들의 지적 만족을 위해 정당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자당 사람들에 일갈하는 모습에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국가안보 사안인 사드배치 문제를 전략적 모호성이란 말로 구렁이 담 넘듯 하는 걸 보면 김종인 식 개혁의 실체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김 대표는 사드 6인방을 향해 "여행하고 오는 분들"이라고 비꼬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언행을 크게 문제 삼았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 문재인 전 대표는 “지금 한국 외교의 최우선 과제는 사드 배치 문제로 중국과의 관계가 훼손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며 “도리어 노력하는 야당 초선의원들을 비난부터 하니 참 한심한 정부”라는 전혀 다른 말도 나왔다.

그런데 김종인 대표의 전략적 모호성보다도 더 헷갈리는 게 문 전 대표의 오락가락한 태도다. 사드 배치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을 때부터 반대했고, 얼마 전까지도 재검토를 주장하더니 "배치가 '현실화'하더라도 중국과의 관계 악화는 막아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지난달에는 독도를 다녀오더니 광복절을 앞두고는 1박 2일 백령도를 찾아 안보 행보에 유독 신경을 쓰는 모습을 보였다. 

인천자유공원 맥아더 동상 아래에서 찍은 사진도 공개했다고 한다. 과거 NLL 대화록 폐기 논란이나 천안함 폭침 논란과 같은 사건에서 얻은 안보불안감 이미지를 없애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그런데 변화에도 나름의 맥락과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설득력이 있다. 문 전 대표 안보행보가 영 생뚱맞은 건 그게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반대해놓고 지금은 왜 말이 바뀌었는지 아무 설명이 없다. 총선 전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계 은퇴하겠다고 해놓고 여태껏 설명이 없는 것과 똑같은 모습이다. 

   
▲ 김종인 대표가 사드배치에 반대하는 더민주 의원을 향해 일갈하는 모습에선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전략적 모호성이란 말로 구렁이 담 넘듯 하는 걸 보면 김종인 식 개혁의 실체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든다. /연합뉴스

김종인 색깔만으로 집권하겠다는 오만

지지자들은 문재인 이라면 그가 앞뒤 맥락 없이 어떤 언행을 해도 잘 이해하고 받아줄지 모른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은 그렇지가 않다. 사드 배치에 대해 생각이 바뀐 것인지, 아니면 어떤 이유로 말이 달라진 것인지 설명이 없다면 보여주는 것만 그대로 믿고 "문재인의 안보관은 확고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대한 안보 문제에 말을 완전히 바꾸면서도 '왜'라는 질문은 무시하고 '이렇게 안보행보를 하면 믿어 주겠지' 하는 식으로 안일하게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국민을 개돼지 취급하는 것이다. 그나마 낫다는 김종인 현 대표의 전략적 모호성이란 것도 문제가 있다. 집권을 위한 전략과 계산만 들어있다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이다. 

김 대표가 국가안보에 대한 주관이 분명했다면 사드 6인방 문제를 그렇게 대충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긴 겉과 속이 다른 걸 다들 아는데도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말로 적당히 넘어가려는 더민주당 입장 자체가 지나치게 기회주의적이다. 

어찌됐든 총선을 거치면서 친문정당으로 탈바꿈한 더민주당의 위장쇼도 오래 가지는 않을 것 같다. 곧 있을 전당대회를 통해 김종인 색깔을 완전히 걷어낼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민주당이 새 강령에서 '노동자'란 단어를 뺀 것 가지고 당권주자들이 "당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이라며 하나같이 반기를 든 것은 하나의 예고편이다. 

더민주당은 현행 강령에 "경제발전을 위한 국민의 헌신과 노력,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을 존중한다"고 돼 있는 문구를 개정안에서 "경제발전을 위한 국민의 헌신과 노력을 존중하며, 시민의 권리 향상을 위해 노력한다"로 바꾸었다고 한다. 

노동자가 국민이나 시민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이고 그보다 무슨 상위 개념인지 당 정체성까지 운운하며 반발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 같은 일이지만 이 당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 아닌가. 더민주당이 노동자 대표를 자처해왔던 민주노총 등 거대 귀족노조 이익논리에 휘둘려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에서 최종적으로 삭제될지 의문이다. 

   
▲ 문재인은 사드배치는 국익에 도움이 안되고, 중국과의 갈등으로 대북제재공조를 흔들리게 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대표의 안보 행보는 화장술을 넘어 위장크림을 잔뜩 바르는 것 같아 보기 불편하다./연합뉴스

김종인 성공사례는 이미 과거, 기본으로 돌아가라

더민주당이 새 당 대표를 뽑고 난 뒤에 김종인 대표가 이 당에 계속 머물지 솔직히 필자는 잘 모르겠다. 비례대표 더 하자는 게 아니라는 그의 말을 떠올리면 대선까지 함께 한 배를 타고 갈 것 같지 않기도 하다. 또 설령 끝까지 간다 해도 사드 논란에서 보듯 김 대표는 전략적 모호성이란 기회주의적 수사로 더민주당에 위장 크림만 덕지덕지 바르는 역할에만 그칠 가능성도 크다. 

김종인 대표는 어쩌면 처음부터 더민주당 체질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새누리당에서 맛본 성공사례를 더민주당에서 다시 한 번 재연해 내는 것이 목표였을 수 있다. 김 대표가 더민주당의 많은 것을 바꾸었다고 해도 이 당의 근본이나 체질을 바꾸는데 김 대표가 자신을 던졌다는 증거는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변신한 성공사례는 위장크림만의 덕분은 아니었다. 나름의 절박함을 가지고 단결하는 힘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더민주당에는 그게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따로 문재인 따로다. 이 둘의 결합이 제대로 안 됐는데 성공을 위한 작전계획이 순탄할 리 없다. 노동자 단어 하나 놓고 벌써 날이 서 있는데 당 강령에 경제민주화 집어넣는다고 해서 잘 섞일 리가 있나. 재집권을 위해 당명부터 시작해 거의 모든 걸 싹 뜯어고치다시피 한 새누리당의 성공 모델을 그대로 따라한다고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 대표도 알아야 할 것은 그건 이미 한 번 써먹은 전략이라는 점이다. 같은 방식이 또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안일한 생각이다. 무엇보다 더민주당은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는 게 큰 문제다. 그러니 세력 간 화학적 결합도 안 되고 안보행보나 김 대표의 '전략적 모호성'이란 전략도 위장크림에 불과하다는 인상만 주는 것이다. 

그러니 방법은 딱 하나다. 김 대표는 더민주당 체질을 바꾸는데 자신을 던져야 하고 문 전 대표도 가식적인 대권행보가 아니라 국민의 질문에 솔직하게 답부터 해야 한다. 진부한 말이지만 진정성 없이 눈속임을 위한 쇼와 위장만으로는 안 된다. 그런 식의 개돼지 취급을 받고 마음 열 국민은 없다. /박한명 미디어그룹 '내일' 대표·미디어워치 온라인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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