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논쟁' 촉발한 김제동의 성주 연설…비전문가의 감성 팔이, 웃음 파는 예능인 줄 아나
방송인 김제동은 지난 5일 경북 성주군청에서 열린 '한반도 사드 배치 철회 촛불집회’에 참여, 사드 배치를 규탄하는 연설을 했다. 헌법과 세계 평화를 운운하면서 말이다. 그는 이전에 여러 TV프로그램에서 화려한 입담과 재치를 선보이며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 그러나 사드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 나아가 국가의 존망까지 달린 중차대한 사안이다. 한 방송인이 수많은 시민 앞에서 가벼운 농담과 화려한 말재주로 쉽게 떠들 주제가 아니다. 김제동의 성주 연설은 경솔한 측면이 있다.

국립국어원에서는 연설이란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의 주의나 주장 또는 의견을 진술함” 주장에는 항상 근거가 뒤따라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김제동의 연설 중에는 주장에 대한 근거가 부실하거나 다소 생략되어 있다. 또는 논리적 오류를 범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가령 김제동은 외부세력에 대한 판단 기준을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근거하고 있다. 그러면서 대통령도 외부세력이고, 국무총리, 국방부 장관도 마찬가지라며 비난했다. 통치권자를 외부세력이라 칭하는 궤변은 희극에서 통할 말도 아니다. 

분명 강신명 경찰청장은 외부세력을 “정부의 정책에 무조건적인 반대 입장을 표하며 정부를 비난하는 시위 전문 세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런데 김제동은 대뜸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언급하며 반론 아닌 반론을 제기했다. 이를 논리학에서는 '사이비 논쟁’이라고 일컫는다. 적절한 반박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방과 동일한 단어와 의미를 사용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 방송인 김제동이 성주를 찾아가 사드반대 연설을 했다. 외부인의 개입 자제를 촉구하는 국민과 언론의 요구에 대해 사드와 박근혜대통령 황교안총리도 외부인이라고 막말을 퍼부었다./연합뉴스TV 화면캡처


논리적 오류는 또 있다. 김제동은 외부세력 및 성주 시민들 모두 사드 문제에 대해 말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너희들이(사드 찬성론자) 이야기하지 말라는 것은…헌법 정신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제3자로부터 어떠한 제재나 방해를 받지 않고, 성황리에 집회를 잘 마치지 않았나. 소신껏 발언할 자유는 이념을 떠나 모두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왜 이런 당연한 말을 꺼냈을까. 마치 공권력과 여러 세력들이 자신들의 발언권을 침해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려는 의도가 아닐지. 상대방의 주장을 과장하거나, 하지도 않은 말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자비의 원리’에 어긋난다.

아울러 김제동은 거듭 헌법 조문을 인용하며 연설을 이어나갔다. 헌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제멋대로 법이 아니다. 김제동은 주권과 행복추구 등 헌법을 인용했으나 북한의 핵폭탄이나 노동 미사일 발사로 인해 파괴될 한반도의 행복 파괴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성주시민들의 감성과 눈물샘을 자극하는 데 성공했을지 몰라도, 세계 유일의 총칼을 맞대고 있는 분단국가의 국민으로 전혀 현실적이거나 이성적이지 못했다.

필자가 자주하는 말이 있다. 대중은 대체로 옳지만, 때론 과격한 발언과 피켓 하나에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 그 집회에서는 어른뿐만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는 초등학생도 함께 있었다. 말랑 말랑한 뇌에 선동적인 메시지와 오염된 이념이 각인됐을까봐 무섭다. 한 심리학 실험 결과를 살펴보면 괜한 걱정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심리학자 솔로몬 애쉬는 피험자에게 표준선 하나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와 길이가 같은 선을 A, B, C 중에 고르라고 말한다. 보기의 선들은 길이 차이가 확연했기 때문에 쉽게 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가짜 피험자 모두가 틀린 답을 말했을 경우, 진짜 피험자도 틀린 답을 말했다. 이것이 동조 현상이다. 당시의 집회 분위기도 이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군중이 한 사람의 발언에 열광하는 분위기 속에서 특히 어린 아이들은 주체적인 판단력을 가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 사드는 핵무기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 체계요, 국민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사진=록히드 마틴 '사드' 홍보브로셔


이러한 동조 현상 때문에 연설을 듣고 있는 청중의 안보관이 심히 걱정된다. 중립을 지켰던 시민들은 사드 반대에 찬동을, 사드 반대에 찬동했던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김제동은 “2014년 전 세계 기준으로 무기수입 1위인 우리나라는 충분히 북한 정도 되는 나라는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낭만적인 생각이다. 북한의 도발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난 1월 북한은  4차 핵실험을 하며 동북아의 평화를 위협했다. 또 최근에는 일본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노동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의 호전성을 고려한다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실적인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막강한 국방력을 바탕으로 한 전쟁 억지력을 키워야 한다. 사드는 핵무기에 대한 최소한의 방어 체계요, 국민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이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김제동을 겨냥해 “지독한 편견을 가진 사람”이라며 공중파 퇴출을 촉구했다. MC이자 개그맨인 김제동의 직업까지 걸고 넘어지고 싶진 않다. 시위 현장에서, 거리에서 마이크를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하도 종북이라고 그래서 나는 경북이다 이 XX들아”라고 너스레를 떠는 것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나 적합하다. 웃음을 파는 본업에 충실했을 때가 가장 아름다웠다. /박진형 한국대학생포럼 7기 언론국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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