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활동? 국회의원의 오래된 미신, 청탁 세탁할 우려…정당·시민단체면 청탁해도 되나
   
▲ 도태우 변호사, 자유화통일을향한변호사연대
청탁금지법 제5조 제2항 제3호 삭제의 필요성

1. 청탁금지법이 청탁특권법으로 변질될 우려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제5조 제2항 제3호의 삭제가 절실히 요청된다. 이 조항은 선출직 공무원(국회의원 포함), 정당, 시민단체 등에게만 합법적인 청탁 권리를 허용함으로써 청탁금지법을 청탁특권법으로 변질케 할 우려가 농후하다.

청탁금지법은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한 청탁을 금지한 후, 위 세 종류의 집단에만 공익적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예외적 특권을 허용하고 있다. 공익목적의 애매함과 고충민원의 포괄성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금지된 부정청탁과 부정청탁으로 의심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여겨지는 광범위한 민원사항이 유일하게 열려진 출구인 '선출직 공무원, 정당, 시민단체 등'으로 쇄도할 것이 분명하다. 각종의 진성 부정청탁이 급조된 단체를 거쳐 합법을 세탁할 우려도 괜한 염려만은 아닐 것이다.

청탁금지법은 유치원 교사를 포함하는 사립학교 교원, 소규모 잡지사의 단순노무직까지 규제대상을 확장하면서도 정작 입법자 자신과 정당, 시민단체 등은 청탁금지 규제에서 제외하였다. 나아가 오직 그들에게만 합법적인 청탁자의 지위를 부여하는 대담함을 보이고 있다.

이 조항에 이르러 청탁금지법에 내재된 이념적 문제점은 적나라하게 그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즉 다중(多衆)민주주의적인 경향이 입헌(立憲)자유주의 측면을 압도하고 있는 현상을 반영하는 것이다.

헌법을 근간으로 한 법치주의적 자유와 그 순간의 민의를 대변하는 민주제적 요소는 긴장관계 속에서 정치적 지혜로 승화됨이 바람직한 방향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3권분립 중 중앙행정부와 사법부에 편중된 비선출공직자의 일부 행태에 대한 실망으로, 선출직과 정당· 임의단체들을 기축으로 한 민주제적 라인에 균형이 위태로와 보일 정도의 힘이 실린 모양새다.

   
▲ 김영란법? 국회의원들은 부정청탁의 15가지 유형을 세밀하게 적시해 놓고는 정작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른 이들의 손발을 꽁꽁 묶고 자기들 300명 국회의원은 마음껏 민원을 할 수 있게 뒷문을 열어놓은 것이다./사진=미디어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으로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한 단계 더 성숙시켜 가기 위해서는 비선출직과 선출직, 대의제적 요소와 직접민주제적 요소, 대통령제의 중추와 내각제적 보완요소 상호간의 견제와 균형, 창발적인 다성악(多聲樂)이 간절히 요망된다.

입법자가 자신과 자신에게 친근한 세력만을 우선 비호하고 심지어 특권을 부여하는 제도를 고안한 뒤, 민감하게 이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회피한다면, 국민의 위기의식이 이를 좌시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국회 내에서도 법 시행 전 마지막 개정 요청의 목소리가 있는 것으로 안다. 최소한 청탁금지법을 청탁특권법으로 변질케 할 독소조항을 제거한 채 9월 28일을 맞이해야 할 것이다. '입법자에 대한 입법은 누가 할 것인가'라는 탄식이 남지 않도록 말이다.


2. 조문 내용

가. 청탁금지법 제5조 제1항

누구든지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하여 직무를 수행하는 공직자등에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부정청탁을 해서는 아니 된다. (하략)

나. 청탁금지법 제5조 제2항 

제1항에도 불구하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이 법을 적용하지 아니한다.

1. 「청원법」, 「민원사무 처리에 관한 법률」, 「행정절차법」, 「국회법」 및 그 밖의 다른 법령ㆍ기준(제2조제1호나목부터 마목까지의 공공기관의 규정ㆍ사규ㆍ기준을 포함한다. 이하 같다)에서 정하는 절차ㆍ방법에 따라 권리침해의 구제ㆍ해결을 요구하거나 그와 관련된 법령ㆍ기준의 제정ㆍ개정ㆍ폐지를 제안ㆍ건의하는 등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행위
2. 공개적으로 공직자등에게 특정한 행위를 요구하는 행위
3.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인 목적으로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거나 법령ㆍ기준의 제정ㆍ개정ㆍ폐지 또는 정책ㆍ사업ㆍ제도 및 그 운영 등의 개선에 관하여 제안ㆍ건의하는 행위
4. 공공기관에 직무를 법정기한 안에 처리하여 줄 것을 신청ㆍ요구하거나 그 진행상황ㆍ조치결과 등에 대하여 확인ㆍ문의 등을 하는 행위
5. 직무 또는 법률관계에 관한 확인ㆍ증명 등을 신청ㆍ요구하는 행위
6. 질의 또는 상담형식을 통하여 직무에 관한 법령ㆍ제도ㆍ절차 등에 대하여 설명이나 해석을 요구하는 행위
7. 그 밖에 사회상규(社會常規)에 위배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행위

   
▲ 김영란법의 모순. 이렇게 되면 세상의 민원 청탁들이 국회의원한테 몰릴 수밖에 없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 효과다.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입법, 예산 확정의 권한을 부여하고 청렴, 국익 우선의 의무를 지울망정(헌법 제3장) 그 어디에도 민원청탁이란 용어를 허용하지 않는다./사진=미디어펜


3.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의 문제점 지적

오경식 교수는 2015. 2. 23.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하여 다음과 같이 이 조항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먼저 법안의 대상 범위와 관련된 부분입니다. 공직자의 범위 확대로 인한 공직과 무관한 대상자의 잠재적 범죄인 취급 가능성이 있고 공직자의 가족, 즉 민법 779조의 친족의 범위로 규정되어 있어 그 범위가 너무 넓고 또 언론인, 교직원, 특히 사립학교 교직원처럼 범위가 너무 넓어서 관련 대상에 대한 입증의 어려움과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법의 규범력․실효성 약화 우려가 있고 정치적 반대 세력 등에 의한 자의적 법 집행과 표적수사 우려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두 번째로 법안에서 처벌하고자 하는 범죄의 명확성 여부입니다. 법의 제정 목적에 의해 달성하고자 하는 이익․불이익과 관련된 비례성의 원칙을 비교했을 때 법의 제정으로부터 얻는 청렴성과 공정성에 비해서 국가의 과도한 간섭과 법적 안정성과 실효성의 혼란 등으로 사회적 혼란의 양이 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법안 제5조의 공직자에 대한 부정청탁 금지 규정 또한 국민의 민원권과 청원권과의 구별의 불명확화로 인하여 혼란이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국민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통해 행정행위에 대한 바람과 불만을 법에 정한 절차나 규정으로 하지 않을 경우 본 법안에 의한 처벌의 가능성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행정청에 대한 국민의 입을 막을 소지가 있습니다.”

“부정청탁의 요건 중 기준의 범위가 불명확해서 형벌규정의 명확성 원칙에도 반합니다. 물론 일곱 가지의 예외 사유가 있다고 하지만 제5조제1항제1호에 ‘사규’라는 규정이 있는데 이게 개인의 사규인지 언론사의 사규인지 이것을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것은 지나친 입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규정은 모든 국민들이 관련법 규정에 대한 절차를 정확하게 숙지하고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므로 자칫 그렇지 못한 대부분의 국민들은 법의 무지로 인해 처벌될 위험성이 잔존해 있기 때문에 행정청의 행정처분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것입니다.”

“특히 법안 제5조제2항제3호에서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공익적 목적―이것도 모호한 규정입니다―으로 제3자의 고충 민원―제3자의 고충 민원의 범위가 모호합니다. 이러한 경우 예외를 인정해서 본 법안 제1조의 입법 취지와 달리 여기 계시는 정치인 등은 처벌하지 않도록 하는 불균등 법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부정청탁 여부가 명확성이 결여되며 정치인 등이 제외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입법취지와 달리 불평등 법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경식 교수는 법 제5조 제2항 제3호가 모호한 범위의 예외를 설정하여 정치인 등은 처벌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불균등 법안이며 불평등 법안임을 지적한 바 있는데, 이후 전혀 시정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 민원의 청취·부탁이 국회의원 고유의 사명이라는 믿음은 좋게 말해 신화일 뿐이다. 의원만 민원을 가능케 한 청탁독점 조항(5조2항3호)을 삭제해야 김영란법의 완성도가 높아진다./사진=연합뉴스


4. 국민권익위원회 해설집의 관련 내용

가. 주체

시민단체 “등”에서 “등”에는 직능단체나 이익단체, 공인된 학회 등 공익성을 추구하고 국민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단체가 해당된다고 한다.

나. 목적 

국가, 사회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 뿐만 아니라 특정한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하며, 공익적 목적이 주된 목적이면 족하고 오로지 공익적 목적일 필요는 없고, 특정 제3자의 고충민원이라도 다수의 이익과 관련되거나 될 수 있는 경우 공익적 목적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본다.
 
다. 대상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에 운영에 관한 법률 제2조 제5호에 따르면, “고충민원이란 행정기관등의 위법·부당하거나 소극적인 처분 및 불합리한 행정제도로 인하여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국민에게 불편 또는 부담을 주는 사항에 관한 민원을 말한다.”고 한다.

라. 소결

국민권익위원회 해설집 제74쪽부터 제75쪽까지의 내용을 참조할 때, ‘시민단체 등’에 해당되는 단체의 수는 제한 없이 확대될 수 있고, ‘공익적 목적’ 또한 그 범위가 광대하며, ‘고충민원’의 포괄범위 또한 거의 민원·청탁 사항 전체를 아우른다고 할 수 있다. 결국, 법 제5조 제2항 제3호는 자의적이고 광범위한 예외 영역을 설정함으로써, 청탁금지법의 건전한 실행을 왜곡하는 중요한 길목으로 기능할 우려가 크다고 할 것이다.


5. 결어

중앙일보 전영기 논설위원도 최근 ‘청탁독점조항’이란 용어를 쓰며, 법 제5조 제2항 제3호의 삭제를 주장한 바 있다. 

“의원들은 또 부정청탁의 15가지 유형을 세밀하게 적시해 놓고는 정작 ‘선출직 공직자, 정당, 시민단체 등이 고충 민원을 전달하는 행위’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른 이들의 손발을 꽁꽁 묶고 자기들 300명 국회의원은 마음껏 민원을 할 수 있게 뒷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세상의 민원 청탁들이 국회의원한테 몰릴 수밖에 없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 효과다.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입법, 예산 확정의 권한을 부여하고 청렴, 국익 우선의 의무를 지울망정(헌법 제3장) 그 어디에도 민원청탁이란 용어를 허용하지 않는다.

민원의 청취·부탁이 국회의원 고유의 사명이라는 믿음은 좋게 말해 신화일 뿐이다. 의원만 민원을 가능케 한 청탁독점 조항(5조2항3호)을 삭제해야 김영란법의 완성도가 높아진다. 2004년 정치관계법이 국회의원의 주례와 경조사비 지출을 일절 금지했을 때 정치권은 패닉에 빠졌지만 막상 실행해 보니 그게 가능했다. 지금 국회의원들이 신앙처럼 주장하는 민원활동도 무슨 성역이나 자연질서가 아니다. 그냥 오래된 미신이다. 김영란법에 못하도록 규정하면 없어진다. 정상적인 민원은 국회 상임위와 본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하도록 하는 게 이치에 맞다. 시민이 나서서 혁명하듯 김영란법을 개선해야 한다.”[출처: 중앙일보 종합 26면 전영기 논설위원 http://news.joins.com/article/20402681?cloc=joongang|home|opinion 입력 2016.08.04 19:09 수정 2016.08.05 00:27]

법체계적 측면과 법정책적 측면 양쪽에서 모두 심각한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는 청탁금지법 제5조 제2항 제3호는 법 시행전 반드시 삭제 개정이 필요할 것이다. /도태우 변호사, 자유화통일을향한변호사연대


(이 글은 자유화통일을향한변호사연대의 도태우 변호사가 8월 19일 국회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에서 바른사회시민회의 및 강효상 의원실 공동주최로 열린 '김영란 제대로 만들기 위한 개정방향 논의' 국회토론회에서 발표한 토론문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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