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가니깐 두려워서 일어나는 일"…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사전 협의' 함구
[미디어펜=문상진 기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실 관계는 당시를 잘 기억하는 분들에게 물으세요" "그 질문은 안 하기로 했죠" "허구한 날 종북 타령과 색깔론을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삼고 있으니 우리 경제와 민생이 이렇게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정권 교체가 꼭 필요한 이유다"

국회 청문회도 국정감사장 얘기가 아니다. 송민순 회의록 파문에 대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말이다. 지난 2007년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 과정을 둘러싸고 문 전 대표와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간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진실게임 양상으로 확전되고 있다.

애초 문 전 대표는 지난 15일 송민순 회고록의 '사전 협의'와 관련 자신의 페이스북에 "북한의 반응을 점검하거나 정보를 수집했다면 참여정부의 높은 외교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했다. 17일에는 "새누리당은 북한 덕분에 존속하는 정당"이라고 각을 세웠다.

여론이 악화되자 문재인 전 대표는 '쪽지'에 대해 입을 닫았다. 아예 질문조차 받지 않겠다고 했다. 문 전 대표는 18일 충북 괴산군 한살림 생산자연합회 현지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도 북한 '사전 협의'에는 굳게 입을 닫았다. 대신 "아마 이번에 송민순 전 장관 회고록 때문에 논란이 많아서 걱정도 좀 하리라 생각한다. 걱정하지 말라"며 "결국 나 문재인이 가장 앞서가니깐, 나 문재인이 두려워서 일어나는 일 아니겠나"라는 황당 발언에 이어 또다시 색깔론을 들먹였다.

국민들 눈에는 뭔가 단단히 켕기는 게 있는 모양새로 비춰진다. 입을 닫는다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정작 중요한 것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을 놓고 '사전 문의'든 '사후 통보'든 북한과 입장 조율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송민순 회고록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사전 협의'에 대해서 여전히 함구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기억의 건너편에 숨어서는 안된다. 속된말로 조사하면 다 오는 진실을 가리려 해서는 안된다. 색깔론으로 덧칠해서도 안된다. /사진=연합뉴스

색깔론을 들먹이고 북한 덕분에 존속하는 정당이라고 역공을 취하는 건 적반하장격이다. 문재인 전 대표가 "잘 기억하는 분들에게 물으라"고 반발한 것은 그야말로 무책임의 극치다. 최소한 책임 있는 정치인이라면 그 때 상황을 파악해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 당시 노무현정권의 비서실장이란 막중한 자리에 있었던 사람이 이걸 변명이고 해명이라고 내놓다니 그야말로 어이상실이다. 더욱이 차기 대권후보를 꿈꾸는 문 전 대표라면 더 더욱 문제다.

국가의 주요 결정 사안을 기억하지 못하면서 색깔론 운운하는 건 그야말로 색깔론을 자인하는 셈이고 또 다른 색깔론을 부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전이든 사후든 북한과 조율이 있었다면 엄연한 국기문란이다. 국기문란 사건에 색깔론을 들이대는 건 개도 웃을 일이다. 기억조차 못하는 사람에게 국가 운명을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북한 덕분에 존속하는 정당"이라고 새누리당을 몰아 부치는 후안무치도 보였다. 그렇게 따지면 문재인이 몸담은 더민주당은 '북한과 내통하면서 존속한 정당'이란 말인가.

북한과 입장조율이 있었다면 내통이다. 그 사이 북한은 5차례의 핵실험을 했다. 내통하면서 북한에 퍼주고 봐주고 가져다준 결과다. 대한민국의 안보가 백척간두다. 이 모든 것이 그동안 북한과 내통한 댓가다. 이걸 부정하려면 문재인 전 대표는 '기억나지 않는 것'을 기억해 내야 한다.

그의 말대로 당시 남북관계는 황금기였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주적이 바뀌지는 않았다. '끝나지 않은 전쟁' 상태인 엄연한 주적에게 정부 결정을 알렸다면 용인될 수 없는 일이다.

'잘못된 관계'로 인해 지금도 핵과 미사일 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북한이다. 착각은 자유지만 잘못된 관계로 인한 부적절한 결과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한다. 밝힐 건 밝히고 사과할 게 있으면 해야 한다. 아름다운 기억만을 추억하는 기억편집증으로 오해 받기 싫다면.  

문재인 전 대표가 송민순 회고록의 의혹을 벗으려면 그의 기억을 복원해 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인권 변호사'로 알려진 그가 유독 북한 인권에 눈 감고 있는 점과 최근 공산주의자라는 논란에 대한 판결이 편향성 공방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정부의 중요 정책 결정이 기억나지 않는 다는 건 그의 대북관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짙게 할 뿐이다.     

최근 대규모 싱크탱크를 출범시키며 내년 대선출마를 기정사실화한 문재인 전 대표다. 노무현 정부의 비서실장으로 외교안보 회의에서 의사결정의 키를 쥐었던 그다. 그런 그가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서 찬성인지 기권인지 '쪽지'가 오갔는지 아닌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말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를 바란다면 그는 정치지도자로서 신뢰는 물론이고 스스로 대권 자격론에 대해 자문해야 한다. 문재인 전 대표는 세간의 말들을 기억해야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에 대해서도 북한의 이해를 구하고 "핵과 미사일은 언제쯤 포기할거냐"며 쪽지를 주고받아야 하는 거냐고.

이 모든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문재인 전 대표 스스로가 기억의 시계를 되돌려야 한다. '잘못된 관계' 청산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가 말하는 '남북관계 황금기'가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는 삼척동자도 안다. 덕분(?)에 5000만 국민은 '햇볕' 대신 '핵'을 머리에 이고 살아가고 있다.

'응답하라 2007'. 문재인 전 대표는 기억의 건너편에 숨어서는 안된다. 속된말로 조사하면 다 오는 진실을 가리려 해서는 안된다. 색깔론으로 덧칠해서도 안된다. 허구한 날 종북타령이라고 새누리당을 몰아붙이기전에 진실을 밝혀야 한다. 그래서 경제와 민생이 어려워졌다면 정권교체가 필요한 이유라고 어물쩡 넘어가서도 안된다.

문재인 전 대표의 '이유 같지 않는 이유'에 대해 송민순 전 장관은 '이유 있는 이유'를 들었다. "그 당시 참석자들은 누가 회의를 주재했는지 다 안다"며 “진실이 있다. 진실은 어디 도망가지 않는다"고 했다.

고발당할 것까지 각오하며 회고록을 썼다는 송 전 장관은 덧붙인다. "제 책이 무슨 희랍어도 아니고 한글로 다 써져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라며 "그 정도는 다 알 수 있잖아요"라고 했다. 그래도 다 알 수 없는 사람도 있다. 남은 건 한 가지다. '문재인 응답하라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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