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이상일 기자]'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으로 '대포폰'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정보기관과 고위층 인사들 상당수가 대포폰을 애용한다는 게 통신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었는데, 이번 의혹의 관련 인물 중 한명인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비서관이 대포폰으로 다른 관련자를 회유하려한 정황이 보도되면서 사실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31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대포폰은 등록자 명의와 실제 사용자가 전혀 다른 휴대전화를 가리킨다. 노숙자 등의 명의를 빌리거나 도용·위조한 명의를 써서 실제 사용자가 누구인지 추적하기 어렵다. 아는 친구나 친척의 명의로 개설될 때도 있다.

노숙자 등 신원 불상 인물의 명의로 개설될 경우만 '대포폰'이라고 부르고 타인 명의를 빌린 경우는 '차명폰'이라는 '완곡어법'을 쓰는 경우도 있으나, 법적으로는 전혀 구분이 없고 실제로도 구분이 무의미하다. 

대포폰을 개설·판매하는 것은 물론이고 구입·이용도 범죄행위다. 전기통신사업법 제30조(타인 사용의 제한)와 제97조(벌칙)는 대포폰을 개설·판매하는 자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같은 법 제32조의4(이동통신단말장치 부정이용 방지 등)와 제95조의2(벌칙)은 대포폰을 구입하거나 빌리거나 이용하는 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대포폰을 개설하려면 대개 명의자가 명목상 주인인 '대포통장'이 함께 필요하다. 이용 요금을 내야 휴대전화 회선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대포폰·대포통장 모집책이 신원을 '빌려주는' 노숙자 등에게 대가로 건당 10만 원 내외의 푼돈을 쥐어 준 후 신분증과 막도장을 가지고 대포폰이나 대포통장을 개설하는 것이 통상 수법이다.

대포폰을 실제로 쓰려는 사용자는 모집책에게 수십만원을 현금으로 지급하고 물건을 넘겨받는다. 직접 만나서 주고받는 경우도 있기는 하나, 신원 노출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 택배나 퀵서비스로 현금과 대포폰을 전달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으로 알려졌다.

유출된 개인정보를 이용해 휴대전화 대리점에서 수백·수천 개씩 한꺼번에 대포폰을 만드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대포폰 판매 수익뿐만 아니라 개통 수당까지 챙기니 '꿩 먹고 알 먹고'다.

미래창조과학부 집계에 따르면 2011년부터 올해 6월까지 휴대전화 명의도용으로 확인된 사례는 1만8317건에 달했다. 그러나 추적이 까다로운 대포폰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통신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정보기관 관계자, 권력비리 연루자, 고위층 인사 등이 대포폰을 이용했다는 의혹도 심심찮게 제공된다. 실제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실의 직원들이 검찰 조사에서 '민간인 불법 사찰 관련' 업무를 위해 대포폰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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