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은 선택권 없고 교사는 교육권 분명하지 않아…자유주의로 가야
   
▲ 김소미 교육학 박사·용화여고 교사
'학교는 감옥이다'라는 말이 있다. 학생도 갇혀 있고 교사도 갇혀 있다. 교육은 교육의 수요자와 공급자가 만나서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는 교환시스템이 본질이다. 교육은 인간의 문명사회에 그렇게 등장했다. 부모가 자녀를 집안에서 교육시키는 것은 가족 공동체 내에서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부족사회에서 아이들은 어른들을 도우며 스스로 공동체의 삶과 질서를 깨우쳤다.

도시의 발전은 확장된 질서를 인간 사회에 가져왔고, 분업이 이뤄지면서 '교사'라는 직업이 등장했다. 그러한 교환체계로서 학교와 교사, 학생은 문명의 시작이라는 5천 년 전 수메르 사회에서도 있었다. 그러나 교육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수요에 부응하는 공급체계였다. 따라서 비록 기술 문명의 발전 정도가 낮은 고대·중세사회에서 '배운다'는 일은 적어도 지금에 비해서는 값진 일이었고, 고단한 일이었으며, 희망이 있는 일이었다.

그러한 교육은 근대에 들어서 국가를 위한 교육이 됐다. 국민이라는 이름으로 의무교육이 시행되었으며 공교육이 필수가 됐다. 공무원과 관료들, 정치인들은 교육을 교육받는 자 '개인'의 이익으로 보지 않고 국가 공동체의 이익으로 간주했다. 국가 간에, 그리고 국민 간에 경쟁은 '국민교육'이라는 시스템을 가져왔다. 개인들은 근대 이념이 가져온 '국민 국가'라는 신화 속에서 그러한 공동체와 집단적 교육을 당연히 받아들였다. 특히 유교문화의 전통에서 한국은 어느 국가보다 높은 교육열로 인해 빠른 시간 안에 기초교육의 국민적 완성도를 구현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민적 교육열과 국가주도의 교육은 1960~70년대의 산업화, 그것도 노동집약적 산업화에 읽고 쓰고, 계산하는 능력의 보편성을 가져와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 산업과 경제가 노동집약에서 지식과 창의성에 바탕 한 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과거와 같은 획일적 평준화 교육으로는 미래에 필요한 인적 자원을 키워 낼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의 변화에 반해 오랜 관치교육과 교육평등의 이념은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할 자유를 여전히 크게 제약하고 있다.

[$img2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를 선택할 자유는 교육의 공급체계를 변화시키게 된다. 학생과 학부모가 학교를 선택할 수 없다면 교육의 공급에서는 경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흔히 교육을 시장에 맡길 수 없다는 생각의 바탕에는 교육은 '인간의 덕을 길러내는 것'이라는 도덕적이고 형이상학적 가치 부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료가 인간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는 생각과 같아서, 교육과 의료는 공공재라고 생각하기 쉽다.

만일 인성교육이 그렇게 중요하고 인성교육에 대한 학부모들의 수요가 크다면 당연히 인성교육을 하는 공급자들이 등장하는 것이 시장의 원리일 것이다. 우리 교육에서 인성교육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우리 학부모들에게 인성교육에 대한 수요나 효용이 그만큼 없기 때문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한 인성교육보다는 입시교육에 더 큰 효용을 부여하기에 입시교육 공급자는 넘쳐나고 인성교육 공급자들은 희소하다고 설명된다.

다만, 교육의 공급자도 교육에 주관적 가치를 부여하기에 자신에게 효용을 주는 교육을 공급하려는 이들이 등장할 수 있다. 즉 '지식이 뛰어나고 도덕성이 높은 인재들을 길러내고 싶다'는 교육 서비스 공급자도 있을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런 이들이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법으로 학교를 세우려는 노력을 국가가 막으면 안 된다. 교육의 수요자에게 선택할 자유가 있다면, 교육의 공급자에게도 공급할 자유가 주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유로운 교육의 수요와 공급이 만날 때, 개인들은 더욱 행복하고 더욱 유능해진다고 믿는다. 그것이 내가 교사로서, 교육자로서 자유주의를 수용하는 이유이다.

그렇게 될 때, 학교는 더 이상 감옥이 아니라 진정한 배움과 창의가 넘치는 민주주의의 예비학교, 사회의 훈련장이 될 수 있다. 자신이 선택한 학교에서 학생들은 같은 학교를 선택한 다른 학생을 존중할 수 있다. 그리고 학교가 학생을 선택할 수 있을 때, 교사도 교육의 공급자로서 자신의 교육권을 발휘할 수 있고, 학교는 올바른 주권을 갖게 된다.

학생의 선택의 자유가 없는 학교, 교사의 교육권이 분명하지 않은 학교, 학교의 소유와 운영의 책임이 없는 학교에는 주권적 질서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은 공동체로서도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한 현실이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학교다.

이제 학생들과 교사들은 학교라는 감옥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학생과 교사는 자유를 바탕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만나야 한다. 학생과 교사가 서로에게 감사하는 고객이 될 때 학교는 진실한 배움터가 된다. 자유주의가 교육에 주는 교훈은 그러한 진정성과 발전성이다. 그것이 내가 자유주의자가 된 이유다. /김소미 교육학 박사·용화여고 교사
[김소미]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