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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
해방 70주년이 지나고 건국 70주년을 앞둔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위기, 또 하나의 도전에 직면했다. 일제 36년 동안 독립을 위한 선조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해방은 국제 정치의 변화에서 왔다. 우리가 해방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그냥 주어진 것이다. 그 결과 분단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한반도의 분단은 냉전이라는 엄혹한 국제 질서에 편입되었고, 소련과 중국의 지원으로 북한은 전쟁을 도발했다. 3년 동안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새롭게 출발한 대한민국은 합리적인 예측을 뒤엎고 짧은 시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룩하여 인류 역사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진기한 기록을 남겼다.
우리 조상들은 지난 70여 년 동안 전쟁과 가난, 빈약한 자원 속에서 불굴의 의지로 빛나는 경제 성장을 쟁취하였다. 그 동안 경제 규모는 1,000배 이상 성장했고, 1인당 국민총소득은 400배 가까이 늘어났다. 가난과 무기력에 시달리던 대한민국 국민은 반세기 만에 명목 GDP 기준으로 세계 13위의 경제 강국으로 도약하였다.1) 경제 성장의 힘으로 ‘민주주의’라는 사치재도 누리게 되었다. 멀리서는 이것을 ‘한강의 기적’이라 부르지만, 기적은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에 붙여지는 이름일 뿐이다. 이것은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전 국민의 눈물겨운 노력의 결과가.
‘한강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요인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존립과 경제 성장의 역사에는 이승만과 같은 탁월한 안목을 지닌 지성적인 정치인, 불굴의 의지ㆍ과감한 결단과 맹목적 실천력을 지닌 박정희ㆍ이병철ㆍ정주영과 같은 불세출의 리더들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을 실질적으로 바꾸는 것은 리더들만이 아니다. 리더(leader)의 리드(lead)를 따르는 사람들의 노력이 역사를 바꾼다. 가족들을 굶기지 말아야 한다는 생물학적 본능과 자식은 나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소망을 가진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탁월한 리더의 리더십과 강인한 의지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의 팔로우십이 시너지 효과를 거두어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룩한 것이다. 새로운 대한민국의 건설을 가능하게 한 가장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는 냉전이라는 국제정세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동맹국들이 만들어 준 튼실한 이념의 울타리였다.
다행히 우리는 한반도 남쪽에 자리 잡았다는 지리적 우연성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이념적으로 신봉하는 집단 속으로 우리를 밀어 넣은 것이다. 이념의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 가는 남한과 북한의 경제 격차가 선명하게 웅변하고 있다. 일란성 쌍둥이 같았던 남한과 북한이 서로 다른 이념적 환경에 던져짐으로써 지금과 같은 엄청난 차이를 창출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사실은 아는 사람도 인정하는 사람도 드물다.
건국 70년을 눈앞에 두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은 핵무장한 북한과 급변하는 국제 정세라는 새로운 도전 앞에서 길을 잃었다. 잘 먹고 잘살아 보겠다는 산업화와 나도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 받고 살고 싶다는 민주화의 열망을 달성하고 난 뒤에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할 꿈을 잃은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는 집단적인 열망의 성취였는데, 이제 집단적 열망이 사라진 것이다. 그 자리를 자유화와 개인화가 건실하게 채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러한 이념적 가치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뒷받침해야 할 정신적 자산을 소홀히 한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집단적 열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이념ㆍ지역ㆍ계층ㆍ세대ㆍ성별 갈등이 채워져 대한민국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정부가 제공하는 ‘뜯어먹기 좋은 빵’을 찾아 동분서주하는 사이에, 분노에 찬 구호로 무장한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거리의 권력이 다시 세상을 삼키고 있는 것이다. 합법적이고 합리적인 권위가 사라진 자리에 무질서와 우격다짐이 들어선 것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새로운 세상을 낳기 위한 진통인가, 최후의 몰락 전의 혼돈인가?
이럴 때일수록 무모하고 맹목적인 성공의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든 사람들의 혼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한사코 거부하였지만, 어느 누구도 그가 ‘한강의 기적’의 주인공 가운데 한 사람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정주영의 인생 철학과 성취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그를 모방하거나 따라하지 말고, 그의 정신과 의지를 창조적으로 계승해야 한다.
현대그룹 창업주, 아산 정주영 약력
1915. 강원도 통천군 송전면 아산리 출생
1933. 인천부두, 보성전문학교 교사 신축 공사장에서 막노동하다 풍전엿공장 취업
1946. ‘현대자동차공업사’ 설립
1947. ‘현대토건사’ 설립
1971. ‘현대건설회장’ 취임
1976. 한국 최초 자동차 Pony 생산
1977. 사이디 부베일 산업항 공사 수주
1981. 88서울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
1989. 북한을 방문해 금강산 공동개발 의정서 제시
2001.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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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정주영 회장은 황량한 바닷가에 소나무 몇 그루와 초가 몇 채가 선 초라한 백사장을 찍은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일본으로, 영국으로 배를 수주하러 돌아다녔다. 그로부터 현대중공업의 신화가 시작됐다. 사진은 현대그룹 故정주영 회장(1915~2001)./사진=현대그룹 홈페이지 |
자유주의 인생철학을 가진 정주영 2)
아산 정주영(1915-2001)은 오직 ‘일’에 빠져 산 사람이다. 그에게 가장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언제나 그가 쓸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의 관심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무슨 일에, 얼마만큼 알차게 활용해서, 어떤 ‘발전과 성장’에 집중할 것인가에 있었다. 그는 스스로 “시간 이라는 자본을 꽤 잘 요리한 사람이라고 자부하였다.”3) 언제나 남보다 빠른 시간에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뛰어들고, 마무리하고, 남이 우물쭈물하는 시간에 돌진하였다.
정주영은 보통 사람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능한 것으로 바꾸어 놓은 사람이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해 봤어’는 “우리는 해 보지도 않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가.” 또는 “우리는 해야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철학적 금언을 상식적인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정주영의 ‘해 봤어’의 철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정주영의 인생에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행위에 대해서만 사회가 간섭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당사자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행위에 대해서는 개인이 당연히 절대적인 자유를 누려야 한다. 자기 자신, 즉 자신의 몸이나 정신에 대해서는 각자가 주권자인 것이다”4)라는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주의 철학이 녹아 있다.
정주영은 ‘해 봤어’의 철학을 무한 신뢰하여 정치에도 뛰어 들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업 영역을 개척하면서, 정주영은 정치가 문제라고 느꼈다. 그러나 그는 정치에 대해서는 ‘해 봤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정치에 대해 ‘해 봤어’라고 하려면 대통령이 되는 수밖에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정치에 도전하여 실패했다고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정주영이 대통령에 출마하여 낙선한 것을 두고 세상 사람들이 정주영 인생의 결정적인 실패라고 하였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쓰디쓴 고배를 들고 보복 차원의 시련과 수모도 받았지만 그는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정주영은 “5년 전 내가 낙선한 것은 나의 실패가 아니라 YS를 선택했던 국민들의 실패이며, 나라를 이 지경으로 끌고 온 YS의 실패이다. 나는 그저 선거에 나가 뽑히지 못했을 뿐이다. 후회는 없다”5)라고 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도전과 실패를 간명하게 정리했다.
Stay Hungry 6)
이 글은 정주영의 일생을 지배한 일관된 신념이 무엇인가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1992년 대선에 출마하면서 『나의 삶 나의 이상,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자서전을 출간하고 약 5년이 지난 뒤, 현대건설 창사 50주년에 맞추어 『이 땅에 태어나서: 나의 살아온 이야기』를 출간했다. 그의 나이 82세 때다. 그는 회고록을 출간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국졸(國卒)이 내 학력의 전부이고, 나는 문장가도 아니며, 다른 사람의 귀감이 될 만한 훌륭한 인격을 갖춘 사람도 아니다. 또 평생 일만 쫓아다니느라 바빠서 사람들에게서 가슴 깊이 새겨질 어떤 고귀한 철학을 터득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이 책을 내는 것은, 이 나라를 책임질 젊은이들과 소년 소녀들에게 확고한 신념 위에 최선을 다한 노력만 보탠다면 성공의 기회는 누구나 공평하게 타고났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싶어서이다.”
“ ‘시간(時間)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지는 자본금’이라는 말을 한 사람이 있다. 참으로 옳은 말이다. 나를 성공한 사람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면, 나는 신념의 바탕 위에 최선을 다한 노력을 쏟아 부으며 이 ‘평등하게 주어진 자본금’을 열심히 잘 활용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일 뿐이다.”
‘수저계급론’을 앞세워 ‘노력하라’는 교훈이 꼰대의 잔소리로 나락한 우리의 현실에서도 그의 말은 강한 설득력을 지닌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농부였던 정주영의 아버지, 농부로 살다 간 아버지를 둔 정주영은 ‘흙수저 출심’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정주영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건강한 몸을 밑천으로 부지런함, 검약 정신, 포기를 모르는 끈기와 집념, 그리고 인간의 도리를 실천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 세계적인 기업가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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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산 정주영은 경제에는 기적이 없다고 믿었을 것이다. 종교나 정치에는 기적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경제 분야에서는 기적이 없으며, 오로지 땀과 노력과 창의력이 있을 뿐이라고 정주영은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의 현대그룹 모두는 아산 정주영 생각의 소산이다./사진=미디어펜 |
사회가 학교다 : 몸으로 익힌 지식의 위력
배움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정주영은 6년밖에 정규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16세부터 세상이라는 큰 학교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교과서가 아니라 생활 현장에서 지식을 익힌 것이다. 그가 익힌 것은 ‘명시적 지식’이 아니라 ‘암묵적 지식’이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정주영이 ‘현장의 지식’, ‘암묵적 지식’을 쌓아갈 수 있었던 것은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우리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해방과 건국, 6.25와 권위주의 정권의 지배 하에서도 북한과 달리 남한에서는 민영기업이 허용되어 ‘창조적 파괴’를 자신의 생존 전략으로 삼은 기업가가 탄생하고 성장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박정희 시대와 같은 권위주의 시대에도 권위주의를 정당화하고 국민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경제를 개발하기 위해 시장을 허용하고 기업가의 이윤 동기를 자극해야 할 정치적 필요성이 존재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주영은 사회에서 수영을 배우듯이 사업 수완을 익혀갔다. 수영은 글이나 말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물에 들어가 허우적거리면서 몸으로 배운다. 기업가는 학자와 달리 매일 현장에서 의사 결정을 해야 하는 ‘현장의 인간’이다. 기업가의 의사 결정은 교과서적 지식이 아니라 명시적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몸소 체득한 암묵지(tacit knowing)에서 나온다.
기업가의 성공은 암묵지에 의존한다. ‘암묵적 지식’은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명시적 지식’(explicit knowing)과는 다른 몸으로 아는 지식이다. 이것은 베르그송이 말한 직관(본능지)과 유사하다. 기업가들의 의사 결정을 주도하는 시장적 사고는 기예(技藝)의 수련과 같은 암묵지의 결정체이다.
정주영은 이러한 ‘암묵적 지식’을 자신의 몸속에 쌓아갔다. 그는 무엇이나 경험하면 그것을 자신의 지식으로 전환하여 몸속에 축적하였다. 정주영은 이러한 자신의 능력을 모르고 자신을 ‘불도저’라고 불렀던 세사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기도 하였다.7) 자신은 단순히 일에 대한 추진력만 가지고 매사를 밀어붙였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정주영은 자신을 ‘불도저’라고 부른 사람들은 “학교 공부도 거의 없는 못 배운 사람이 무슨 일에든 덮어놓고 덤벼들어 곧장 땅 파고 기둥 박는 식으로 밀어붙이는 것처럼” 자신을 평가하여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정주영은 자신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학식이 없는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생각도 머리도 지혜도 없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 인간이 가진 자질과 능력을 학교에서 배운 학식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곧 명시적 지식으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어떤 일에도 결코 덮어놓고 덤벼든 적이 없다. 학식은 없지만 그 대신 남보다 더 열심히 생각하는 머리가 있고, 남보다 치밀한 계산 능력이 있으며, 남보다 적극적인 모험심과 용기와 신념이 나에게 있다. 어떤 일의 시작 전에 내가 나 혼자 얼마나 열심히 생각하고 분석하고 계획하는가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전부 다 무계획적이고 무모한 것으로 보였겠지만, 무계획과 무모함으로 어떻게 오늘의 ‘현대그룹’이 존재할 수 있었겠는가.”
정주영이 가진 기업가 정신의 원동력은 ‘명시적 지식’이 아니라 ‘암묵적 지식’이었다. 그는 엄청난 물량을 바지선에 실어 울산에서 주베일까지 해양으로 수송하였다. 정주영은, 상식 안에만 갇혀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을 무지의 소치에서 나온 황당한 일이라고 평가하였지만 그것은 모험을 감행하는 자신의 스타일에서 나온 것이라고 항변한다.
정주영은 상식에 얽매이고 고정관념에 갇힌 사람에게서는 창의력이 나올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정주영은 자신이 믿은 것은 “‘하고자 하는 굳센 의지’를 가졌을 때 발휘되는 인간의 무한한 잠재적 능력과 창의성, 그리고 뜻을 모았을 때 분출되는 우리 민족의 엄청난 에너지”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나는 내 ‘불도저’에 생각하고 계산하고 예측하는, 성능이 그다지 나쁘지 않은 머리라는 것을 달고 남보다 훨씬 더 많이, 더 열심히 생각하고, 궁리하고, 노력하면서 밀어붙였다.”라고 술회했다. 그의 이러한 능력은 끊임없이 현장에서 생각하고, 배우고, 문제를 해결해 온 ‘암묵적 지식’에서 나온 것이다. ‘암묵적 지식’은 머리가 아니라 몸에 저장되는 지식이고, ‘해봐야’ 생기는 지식이다. ‘해 봤어’는 바로 암묵적 지식과 몸으로 획득한 직관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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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은 5종의 한국사 교과서에 쓰여 있지만 모두 경제와 기업에 관련해서가 아니라, 남북관계를 다룬 부분에서 소떼를 북한에 보내준 사람으로만 나온다./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제공 |
Stay Foolish
드디어 정주영은 1992년 1월 1일 새해 차례를 지내기 위해 모인 가족들에게 정치 참여를 통고했다. 단 한 사람도 동의하는 사람이 없었다. 하던 기업이나 계속하지 늦게 시궁창 같은 정치판에는 왜 뛰어들려고 하느냐고 만류했다. 이에 대해 정주영은 “경제만 잘 되고 있다면 누가 정치판에 끌어들이려고 해도 끌려 들어갈 내가 아니었다.”8)라고 하며, 정치 참여의 명분을 ‘경제’에서 찾았다.
정주영의 아우들은 정주영이 만에 하나 실패했을 때 ‘현대’가 감수해야 할 불이익을 두려워했다. 그것은 우리 정치 수준으로 볼 때 당연한 두려움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정주영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짚신 한 켤레 신고 맨몸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인데, 우리가 망한다고 해도 구두는 신고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라 꼴이 이 모양인데 그냥 앉아서 정치 욕이나 하며 내 안전만 도모하는 것이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할 일이냐? 시궁창을 시궁창인 채로 내버려두면 언제까지나 시궁창일 수밖에 없다. 누군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서 청소할 사람이 필요하고, 그걸 내가 해보겠다는 것이다. 우거짓국 먹고 살 각오를 해둬라. 죽으면 맨몸으로 가는 게 인생인데 망한다고 해도 아까울 것이 없다.”
1970년대 초 조선 사업, 올림픽 유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주영은 성공했다. 자신의 평생은 불가능에의 도전, 그것을 가능으로 뒤집은 기록의 점철이라고 믿었던 정주영은 정치 개혁도 선진 경제도 통일 한국도 자신이 있었지만 국민은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선택하지 않은 국민이 실패한 것이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YS가 실패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끝까지 ‘Stay Foolish’한 것이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정주영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으로 현대라는 거대한 기업을 일으키고, 한국의 산업화에 기여함으로써 우리 국민이 가난에서 해방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이러한 정주영의 일생을 지배한 가치는 모든 인간은 ‘자신이 바로 자기 인생의 주권자’라는 자유주의 철학이다. 그는 자신의 믿음을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다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어떤 이는 잘 되고 어떤 이는 잘 안 되기도 하는데, 대개의 사람들은 비슷한 출발에서, 과정의 능력과 노력에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결과의 불균형에 대해서만 불평을 품는다. 자유 기업 사회에서 그 불균형은 정부도, 제삼자 누구도 해결할 수가 없다. …… 더구나 개개인의 자유가 구속되고 타의에 의해 직업이 주어지고, 사는 곳이 고정되어 있는 그 사회에서 사는 것만큼 큰 불행은 없다. 때문에 다소 불균형이 문제가 되더라도 기본적인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체제가 나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9)
“막노동에서 풍전 엿 공장으로 고정된 직장을 잡게 된 것이 한걸음 나아가 발전이었고, 엿 공장에서 쌀가게로 직장을 옮긴 것이 또 한걸음 발전이었다. 엿 공장에 취직이 되었을 때에도 기뻤지만 쌀가게에 들어갔을 때 정말 행복했다. 전차삯 5전을 아끼느라 구두에 징을 박아 신고 출퇴근하면서도 신이 났고, 생활이 조금 나아져 5전짜리 음식 대신 10전짜리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을 때의 흐뭇함도 아직 기억한다.”10)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 어떤 위치에서 무슨 일을 하고 있든지, 최선을 다해 자기한테 맡겨진 일을 전심전력으로 이루어내며 현재를 충실히 살 줄 아는 사람은 우선 행복한 사람이다.”
“현재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을 꾸므로 언제나 일하는 것이 즐겁고 작은 일에도 행복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든 나름대로 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런 사람이 인생을 잘 사는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중급 기술자든 고급 기술자들, 중국집 배달원이든, 학생이든, 관리든 마찬가지다.”
“우리는 성장하면서 사회를 알고 배우고 체득해가면서 자기 형성을 하는데, 사물을 보는 관점이나 사고의 방향, 마음 자세에 따라서 일생이 크게 달라진다.”11)
정주영의 이러한 인생철학은 ‘수저계급론’과 ‘사회책임론’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주영 따라 하기로 정주영과 같은 인간이 될 수는 없다. 모든 인생은 고유하고 일회적이다. 인생은 따라 하기가 아니라 스스로 적응하고 창조하는 과정이다. 영웅 따라 하기로 영웅이 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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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1월 18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고 정주영 탄생 100주년 기념음악회에서 한 관객이 고 정주영 회장의 사진 앞을 지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우리 사회에 대한 클리프턴 회장의 조언 12)
놀라운 성취를 이룩한 대한민국은 건국 70년이 지난 오늘날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정치는 파당에 갇혀 길을 잃었다. 정부는 무능과 부패로 권위를 상실했고, 국회는 권력유지와 차기 정권 획득에만 집중하여 공익과 국민에는 관심이 없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 경제는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게 되었다. 급변하는 국제 정세와 답답한 국내 정치를 바라보며 국민들은 분노ㆍ불안과 좌절감에 휩싸여 있다. 이것을 털어내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긍정적인 변화의 기운은 보이지 않는다.
불확실성이 지배하는 이곳에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모험심과 용기를 자산으로 세계를 질주했던 과거의 용감한 기업가들은 이제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상황을 직시한 갤럽의 클리프턴 회장은 “한국 기업들이 변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는 부도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가 지적한 것은 ‘창조적 파괴’에 기초한 창업과 개척을 주도하는 기업가 정신의 부족이 아니라 이미 성공한 기업들이 갖추어야 할 것을 갖추지 못한 것에 대한 지적이다.
클리프턴 회장은 “한국 기업의 관리 시스템은 다른 어떤 나라 기업들보다 후진적이며 실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땅콩 회항’과 ‘갤럭시 노트7 발화 사고’는 후진적인 한국의 기업문화에서 나왔다고 해석했다. 상명하복의 지휘 통제(command and control)가 지배하는 한국의 기업문화가 문제라는 것이다.
이러한 기업문화에서는 직장인들의 일에 대한 몰입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몰입하는 한국 직장인은 11~13%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90%에 가까운 나머지 사람들은 일터에서 제자리 걸음(zero development)을 하고 있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리더가 바뀌지 않기 때문에 위기를 맞은 기업들이 혁신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슬로건을 내걸고 캠페인을 벌이지만 효과가 없다는 것이다. 기업문화의 70%는 중간 리더들이 좌우하는데 중간 리더가 변하지 않으면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실제로 최고경영자(CEO) 자신이 이끄는 것은 조직과 직원이 아니라 기업 인수합병(M&A), 재무제표, 가격 정책 같은 ‘일’일 뿐”이라고 말함으로써 중간 리더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최근 들어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행동 경제학을 연구해 온 갤럽은 과거와 구별되는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80년 이후 출생한 소위 ‘밀레니엄 세대’가 기업에 입사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과거 직장인들이 급여와 만족감, 상사, 인사고과, 일을 중시했다면, 밀레니엄 세대는 목적과 의미, 발전, 지속적인 대화, 자신의 삶을 중시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변한 상황 속에서 “직원들의 몰입도를 높이기 위해 리더들은 직원들 앞에서 정직해야 하며 참여와 몰입을 이끌어 내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클리프턴 회장은 강조한다.
나아가 그는 “사람들은 성공한 리더들의 공통점을 찾고 싶어 하지만 그런 공통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성공한 리더들을 뜯어보면 공통점보다 다른 점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다. 그는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강점을 아는 것으로 자신만의 장점을 알게 되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덧붙였다.
클리프턴 회장은 청년 실업에 대해서도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했다. “한국 청년들이 일자리 부족을 고민하는데 일자리는 정부가 만들어 주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각국 정부가 공익사업을 늘리고 일자리 지원금을 주면서까지 일자리를 늘리려 하고 있지만 일자리 부족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전 세계 70억 인구 가운데 15세 이상의 성인은 50억 명에 달하는데 일하고 싶은 ‘괜찮은 일자리’는 12억 개에 불과하며 양질의 일자리를 원하는 인구는 30억 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부족한 18억 개의 일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는 국내총생산(GDP)의 성장이 필요한데 성장 동력은 정부가 아닌 개인과 기업에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역사를 통틀어 새로운 경제와 일자리는 젊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들었을 때 생겼다.”며 “원하는 미래가 있다면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클리프턴 회장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우리가 무엇을 창업할 수 있는가,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를 고민하기 시작하면 한국의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라며 창업과 도전을 강조했다.
클리프턴 회장이 “사람들은 성공한 리더들의 공통점을 찾고 싶어 하지만 그런 공통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듯이, 기업이나 국가의 성공 방정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병철과 정주영 같은 과거 우리 기업가들의 창조적이고 영웅적인 기업 활동을 후세 사람들이 따라 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 기업가 정신의 핵심은 남이 가지 않았던 길을 간 창조적 일회성에 존재하기 때문에 기업가 연구는 ‘기업가 따라 하기’가 아니라 새로운 인간 만들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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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2번째, 세계적으로 16번째로 독자 자동차 모델 생산국에 이름을 올린 포니 개발성공이후 1985년 첫 전륜구동 자동차인 포니엑셀의 신차발표회장에 참석한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사진=아산정주영닷컴 |
기업가 정신의 발현을 위한 교육
여기에서 우리는 교육으로 돌아간다. 미래에 필요한 기능은 ‘비판적 사고’ㆍ‘창조성’ㆍ‘의사소통 능력’ㆍ‘협업하는 능력’이며, 이러한 기능을 위해 필요한 것은 ‘호기심’, ‘자기주도성’, ‘집요함’, ‘공감능력’, ‘적응력’이라고 한다. 우리에게서 기업가 정신을 가진 인재들이 많이 나오기 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교육이다. 타고난 기업가는 가만 두어도 알아서 기업가로 성장하겠지만, 기업가적 자질은 후천적으로 교육을 통해서 개발될 수 있다. 이제 자유주의자들은 기업가적 자질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
1) MBC <대한민국> 제작팀, 『MBC 광복 70주년 특집 다큐』, 프리이코노미 북스, 2015, pp.5-6.
2) 정주영 부분은 이전에 발표한 글을 요약한 것이다.
3) 정주영 (1998), 『이 땅에 태어나서: 나의 살아온 이야기』, 솔, 197쪽.
4) 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서병훈 옮김, 책세상, 2005, 31쪽.
5) 정주영 (1998), 424-425쪽.
6) “Stay Hungry. Stay Foolish.”는 스티브 잡스(1955〜2011)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2005)에서 강연하면서 인용하여 유명한 말이 되었지만, 이 말은 Stewart Brand가 만든 The Whole Earth Catalog에 나오는 말이라 한다. 이 말의 뜻을 번역하면 ‘끊임없이 갈망하라, 우직하게 몰두하라’ 정도가 될 것이다.
7) 정주영 (1998), 230〜234쪽.
8) 정주영 (1998), 421쪽.
9) 정주영 (1998), 359쪽.
10) 정주영 (1998), 405쪽.
11) 정주영 (1998), 406쪽.
12) [해외 CEO 인터뷰] “‘최순실 게이트’ 충격 받은 한국, 정직한 대통령 뽑게 될 것”, 클리프턴 미국 갤럽 회장, 『중앙일보』 2016년 11월 12일.
(이 글은 자유경제원이 15일 리버티홀에서 주최한 2016 세계기업가정신주간 기념 ‘기업의 번영은 대한민국의 힘이다’ 세미나에서 ‘신중섭 강원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발표한 발제문 전문입니다.)
[신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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