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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촛불집회,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이루어질 수 없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개인의 자유 압살·전체주의 파시즘으로 향해
승인 | 편집국 기자 | media@mediap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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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인 2016-12-01 11: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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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신화 '광장 민주주의'

새로운 신화가 탄생하고 있다. ‘광장’에 대한 분주한 신격화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가 매주 열리고 있다. 언론들은 ‘광장에서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광장이 역사를 바꾸고 있다며 민중의 흥분을 전했다. 광화문 광장에서는 초등학생조차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라!”고 외쳤다. 아이는 그렇게 쉽게 영웅이 됐다. 

반복되는 촛불집회 덕에 많은 사람들이 광장과 민주주의를 엮어서 이해하기 시작했다. ‘광장 민주주의’라는 말도 유행이다. 민주주의는 정말 광장에서 성숙할 수 있을까? 광장과 민주주의는 공생하는 관계일까.

'광장-민주주의'의 이질감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은 폭력 없이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광장에서의 투쟁이 필요 없음은 물론이다. 직선제 개헌을 이뤄낸 1987년의 6.10 항쟁은 광장에서 이뤄졌다. 6월 항쟁이 그래도 ‘민주화를 이뤄냈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그 때는 광장이 아니라면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점이 당시 광장에서의 폭력을 제한적으로나마 정당화한다. 하지만 지금은 ‘법에 따라’ ‘평화적으로’ 지도자를 바꿀 수 있다. ‘광장 민주주의’는 정당화될 여지가 없다. 오히려 그 자체로 형용 모순이다. 광장에서의 투쟁이 제한적으로나마 정당하게 인정되는 것은 정권의 평화적 교체가 불가능할 때뿐이다. 정상적인 국가에서의 민주주의는 광장이 아니라 투표소에서 이뤄진다. 

   
▲ 민주주의가 광장에서든 어디에서든 개인의 자유를 압살해버린다면 민주주의도 악(惡)이 될 수 있다. 광우병 파동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당시 대중은 광우병 선동 앞에 최소한의 이성을 상실한 채 휘둘렸다./사진=연합뉴스


민주주의 선진국 영국‧미국에서의 광장

그런데 한국 언론은 유독 투표소에서 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대의제 민주주의보다 광장을 사랑한다. 최근 전 세계 핫이슈였던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 영국의 EU 탈퇴) 결정이나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의 보도 행태를 보면 그렇다. 영국은 오랜 논의를 거친 끝에 EU를 탈퇴하기로 결정했고, 미국은 ‘악동’으로 묘사되던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한국 언론이 정반대의 예측을 하며 헛발질을 한 것은 문제였다. 하지만 예측은 언제나 틀릴 수 있다. 진짜 문제는 후속보도를 하면서부터다. 

많은 언론이 이 결과를 보도하면서 다소 엽기적인 모습을 보였다. 브렉시트에 대해서는 국민 투표 결과에 반대하는 일부 영국인들이 재투표를 하자며 길거리에서 항의하는 내용을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대해서는 ‘트럼프는 나의 대통령이 아니다’며 길바닥에서 시위하는 이들을 확대 보도했다. 정작 새로 선출된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라고 명확히 못을 박았다. 또 우리가 트럼프의 당선을 ‘믿지 못하는’ 동안 이웃의 아베 신조는 발 빠르게 트럼프를 만났다. 우리는 영국과 미국의 ‘광장’에 주목했지만, 민주주의가 성숙한 국가에서의 광장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광장,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무엇보다 광장은 그 자체로 불안정하다. 우리는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광우병 파동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다. 광장에 모이는 ‘대중’도 완전과는 거리가 멀다. (나를 포함한) 당시의 대중은 광우병 선동 앞에 최소한의 이성마저 완전히 상실한 채 휘둘렸다.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송송 뚫린다는 1차 선동에 대다수가 넘어갔다. 힘을 잃어가자 한미FTA를 체결하면 한국이 미국의 식민지가 될 것이라는 식으로 ‘한국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계속된 2차, 3차 선동도 성공적이었다. 민주주의 제도가 살아있는 국가에서의 광장은 민주주의를 지켜내기 못했다. 민주주의는 오히려 광장 때문에 체면을 구겼다. 

민주주의를 위해 절제는 필수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절대 선(善) 인가. 그것도 아니다. 민주주의의 원칙을 가장 쉽게 설명하면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긴다’는 것이다. 이것은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약점이다. 다수가 선이자 질서가 되는 민주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은 형태가 바로 전체주의이자 파시즘이다. 민주주의는 목적이 아니다. 알맹이는 자유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극단에 파시즘과 같이 위험한 요소가 있지만 우리는 민주주의를 택했다. 이는 지금까지는 민주주의가 그래도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가장 적합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광장에서든 어디에서든 개인의 자유를 압살해버린다면 민주주의도 악(惡)이 될 수 있다. 

민주주의에는 절제가 필요하다. 주어진 권한을 가지고 투쟁하는 것이 절제다. 일반 국민이 가진 것은 ‘하야권’이 아니라 ‘투표권’이다. 광장의 본질은 무절제한 폭발력에 있다.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성숙하지 않는다. 민주주의와 광장에 대한 신격화는 당장 멈춰져야 한다. /이슬기 자유경제원 객원연구원

   
▲ 새로운 신화가 탄생하고 있다. 광장에 대한 분주한 신격화다.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가 매주 열리고 있다. 언론들은 '광장에서 민주주의가 성숙하고 있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광장이 역사를 바꾸고 있다며 민중의 흥분을 전했다./사진=미디어펜



(이 글은 자유경제원 젊은함성 게시판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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