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지호 기자]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격동의 시기를 맞고 있다. 내년 2월 전북 전주로 이전을 앞두고 핵심 운용인력 이탈이 잇따르고 있다.
또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리면서 지난해 제일모직과 구 삼성물산 합병과정에서 삼성 오너일가를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합병에 찬성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삼성물산 합병 논란은 국민연금을 스튜어드십 코드에 가입시켜 사실상 의결권 행사 자율성에 제약을 가하는 쪽으로 번지고 있다.
1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금운용본부 양영식 운용전략실장은 강면욱 기금운용본부장에게 올해 말까지만 근무하고 사직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또 국민연금공단 런던사무소 소장도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전주로의 이전 날짜가 다가오자 부담을 느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수사에도 심리적인 압박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한 기금운용본부 운용역은 “전주 이전에 대한 부담과 검찰 수사가 겹치면서 직원들이 술렁이고 있다”고 말했다.
양 실장은 지난해 7월 열린 투자위원회에서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건에 찬성표를 던졌던 인물로 단순히 전주 이전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표를 제출한 것은 석연치 않은 측면이 있다.
특히 최광 전 국민연금 이사장이 합병 찬성을 주도한 홍완선 전 기금운용본부장의 연임 문제와 관련해 김현숙 청와대 고용복지수석과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의 압력을 받았다고 밝히면서 이를 둘러싼 기금운용본부의 잡음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대가로 삼성 측이 최순실 모녀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과 관련해 집중적인 수사를 펼칠 예정이어서 기금운용본부 직원들의 고충은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최순실 게이트’와의 관련 의혹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벤치마크 복제율을 없애고 자산운용사 평가방식을 단기수익률에서 장기수익률 중심으로 바꾸는 내용의 새로운 투자 가이드라인을 조만간 발표하는 데 이르렀다. 각종 오해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논란이 되면서 기관투자자의 주주권 행사 원칙을 담은 한국형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놓고 국민연금이 집중 타깃으로 떠오르고 있다.
같은 합병 사안이지만 SK C&C와 ㈜SK 합병 때 국민연금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열어 반대 의견을 냈다. 하지만 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때는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열지 않고 기금운용본부 내의 투자위원회에서 바로 찬성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버렸다.
물론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를 반드시 열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된 중대한 사안을 자체적으로 결정하면서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 대한 불신감은 더욱 커졌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기관투자자의 대표격인 국민연금을 엮어 넣어야 다른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데, 삼성물산 합병 논란으로 가입을 권유할 일종의 명분이 생긴 셈이다. 구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이를 반대한 기관투자자는 한 곳도 없었다.
기업지배구조원은 연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해 발표한다는 계획이지만 국민연금은 이중 규제라면서 참여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이미 자체적인 의결권 행사지침을 갖고 있는데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면 독립성 훼손이 우려된다”며 “최고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결정을 따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등장으로 국부유출을 막아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이제와서 국민연금이 잘못된 결정을 내렸던 것으로 몰아가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전철홍 기업지배구조원 부원장은 “의결권 행사를 표준화 시킨 게 스튜어드십 코드로 자체적인 기준이 있다면 하던 대로 하면 되는 것이고 안 지킨다고 해도 제재가 없는데 이중규제라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며 “시장에서 가입을 한 기관과 안 한 기업에 대해 평가가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명현 기업지배구조원장도 “국민연금이 알아서 스튜어드십 코드에 들어올 것으로 보이지만 만일 안 들어오면 정부가 참여를 강제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미디어펜=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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