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총수 무더기 증인 출석
전경련, 부패사건 연루로 존폐 갈림길
2016년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그야말로 대혼란에 빠졌다. 한국경제가 처한 난국에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안으로는 최순실 사태마저 겹쳐 많은 기업이 위기에 처했고, 밖으로는 대미 수출량이 많은 국가에 적개심에 가까운 반발을 표명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우리 기업의 수출에 빨간불이 하나 더 켜졌다. 병신년(丙申年)을 마무리하면서 올해 재계를 뜨겁게 달군 10대 이슈를 소개한다.

① 최순실 청문회, 28년만 재계 총수 총집합

   
▲ 지난 12월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재벌 총수들이 의원질의를 경청하고 있다. 오른쪽 부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 대표이사,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연합뉴스

올해 재계의 가장 큰 이슈는 단연 '최순실 국정조사' 청문회였다. ‘5공 청문회’가 열렸던 1988년 12월 이후 28년 만에 재계의 총수들이 다시 한 번 대거 청문회 자리에 선 것이다. 지난 12월 6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9명의 재벌 총수가 출동했다. 재벌을 출석시킨 청문회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애초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 의한 국정농단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자리였지만 국민에게는 평소 베일에 가려져 있던 재벌 총수들의 화법이나 면모를 엿볼 기회가 됐다. 총수 청문회의 스포트라이트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쏟아졌다. 국정조사 특위 위원들 질의의 67%가 이 부회장에게 집중되면서 ‘이재용 청문회’였다는 평도 나왔다.

② 부패사건 연루 전경련, 존폐 갈림길

   
▲ 전국경제인연합회 전경. / 미디어펜 자료사진


9개 재벌그룹 총수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청문회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해체 문제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경련을 탈퇴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최태원 SK그룹, 구본무 LG그룹,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등도 전경련 탈퇴 의사가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여기에는 국회의원의 '재촉성' 질문에 일부 그룹 회장들이 마지못해 긍정적 답변을 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생방송으로 지켜보는 청문회 자리에서 전경련 회장단을 구성하는 재벌 회장들이 전경련의 존재 이유를 옹호하기는커녕 '해체'에 동조했다는 것은 현재 전경련이 처한 상황을 잘 대변했다는 평이다. 전경련 안팎에서는 미국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 전환하는 방안, 산하 한국경제연구원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해 연구단체로 거듭나는 방안, 법정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와 통합하는 방안 등 여러 대안이 거론되고 있다. 

③ 최순실 게이트에 대기업 오너들 "우리도 피해자"

   
▲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 2013년 청와대가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의 퇴진을 요구한 정황이 드러났다. / 미디어펜 자료사진


정국을 뒤흔들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는 재계 총수와 오너들에게까지 덮쳤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국내 굴지의 기업들이 크게 작게 연루되거나 피해를 본 사실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이들 기업의 '오너'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한 때 '비선 실세' 최순실 씨와 가깝다는 소문에 휘말렸던 이미경 CJ 부회장은 청와대로부터 경영 퇴진 압력을 받은 녹취록이 공개되며 '측근'이 아닌 '피해자'로 신분이 바뀌었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지난 5월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사퇴에 김종덕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압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그런가 하면 서민임대주택 사업으로 재계 서열 19위에 오른 부영 이중근 회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으로부터 K스포츠재단에 대한 추가 기부를 요청받고 회사가 받고 있는 세무조사 무마를 부탁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④ '롯데 2인자' 이인원, 검찰 조사 앞두고 자살 충격 

   
▲ 검찰 소환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진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은 신동빈 회장에 이어 롯데그룹의 '넘버 2'로 꼽히는 인물이었다. 사진은 2009년 12월 서울 중구 남창동 롯데손해보험 빌딩에서 열린 롯데미소금융재단 본점 개소식에 참석한 신 회장(왼쪽)과 이 부회장. / 연합뉴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최측근인 이인원 롯데그룹 정책본부장(부회장)이 검찰 조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8월 26일 오전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산책로의 한 가로수에 이 부회장이 넥타이와 스카프로 목을 매 숨져 있는 것을 운동 중이던 주민이 발견했다. 차 안에서 발견된 자필 유서에서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에 비자금은 없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먼저 가서 미안하다. 신동빈 회장은 훌륭한 사람이다"라며 끝까지 조직과 신 회장을 옹호했다. 검찰은 이날 이 부회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등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었다. 이 부회장은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 격인 정책본부 본부장을 맡아 신 회장과 함께 경영 전반을 이끌어온 롯데그룹의 2인자였다. 임직원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이 부회장의 자살 소식에 롯데그룹도 충격에 휩싸였다. 내부에서는 롯데그룹에 대한 자부심이 남달랐던 이 부회장이 검찰 수사를 앞두고 심한 심리적 압박을 느낀 것 같다는 관측도 나왔다.

⑤ 이재현 회장 경영 복귀…CJ그룹, 다시 찾은 미소

   
▲ CJ그룹 본사 전경 / 미디어펜 자료사진


올 여름 재계의 큰 관심사였던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특별사면이 결국 성사됐다. 2013년 조세포탈·횡령·배임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 회장은 8.15 특별사면으로 '자유의 몸'이 되면서 3년 만에 경영 일선에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정부의 특별사면 계획 발표 뒤 악화한 건강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재상고를 포기한 이 회장으로선 다행스러운 결과였다. 이 회장은 이번 사면에서 대기업 총수 등 유력 경제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형집행면제 특별사면과 특별복권 대상자가 됐다. 그는 지난해 12월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확정되자 대법원에 재상고했다. 이는 법적으로 실형을 면할 가능성이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이 회장은 정부의 특별사면 계획이 발표된 이후 재상고를 포기, 형이 확정되면서 사면 대상자에 포함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재상고를 포기해도 사면을 받을지는 불확실했지만 건강이 극도로 악화한 상황에서 특별사면에 마지막 희망을 건 셈이었다. 이 회장은 사면 직후 사과와 감사의 뜻을 밝히면서 "빠른 시일 내 건강을 회복해 사업으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을 인생의 마지막 목표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⑥ 금호家 '형제의 난' 봉합…박삼구 회장, 그룹 재건 속도

   
▲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오른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그룹 회장 / 미디어펜 자료사진


2009년부터 7년간 이어져 온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동생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간 소송전이 매듭지어지며 금호가(家) 형제의 갈등이 일단락됐다. 금호석유화학은 지난 8월 10일 아시아나항공 이사진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고소한 건과 박삼구 회장, 기옥 전 대표이사를 상대로 항소한 '기업어음(CP) 부당지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모두 취하했다. 당시 금호석화 측은 "(기업) 생사의 위기 앞에서 (소송이)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스스로의 가치를 제고하고 주주에게 이익을 되돌려주는 기업 본연의 목적에 더 집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에 금호아시아나그룹 측은 "모든 소송 취하를 존중하고 고맙게 생각한다"며 "국민께 걱정과 심려를 끼쳐 죄송하고 두 그룹 간 화해를 통해 국가 경제 발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재계에서는 경영 환경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위기를 극복하려는 두 회사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 법적 분쟁 종결의 배경이라고 봤다.

⑦ 남편 기일에 현대상선 떠나보낸 현정은 회장

   
▲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 미디어펜 자료사진


현대차그룹과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은 주요 계열사의 하나인 현대상선을 40년 만에 떠나보내야만 했다. 날짜가 남편인 고(故) 정몽헌 명예회장의 기일과 겹쳤다는 점도 공교로웠다. 현 회장은 지난 8월 4일 현대상선 임직원에게 '이별'에 애절한 마음과 응원의 메시지를 담은 편지에서 "기일을 즈음해 현대상선이 그룹과 이별하면서 현대상선의 발자취를 되새겨 보고 새삼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며 "현대상선 임직원들과 이별한다는 것이 아직도 와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 회장은 현대상선 구조조정이 한창이던 지난 3월에는 사내이사에서 물러나며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하고 용선료 협상이 난항을 겪자 친필 편지를 선주에게 보내기도 했다. 현대상선을 떼어낸 현대그룹은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아산을 중심으로 재도약에 나선 상태다.

⑧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징역 구형…유통가 대모의 추락

   
▲ 검찰청사에 조사받으러 온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 연합뉴스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장녀이자 '유통가 대모'로 통하던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롯데면세점 내 매장 위치를 좋은 곳으로 바꿔주는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신 이사장에게 검찰이 징역 5년을 구형한 것이다. 검찰은 지난 12월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 심리로 열린 신 이사장의 결심공판에서 징역 5년 및 추징금 32억 3천여만원을 구형하며 "지위와 수수액을 고려해 형평에 맞는 형이 선고돼야 한다"고 밝혔다. 신 이사장은 최후진술에서 "나 때문에 아버님(신격호 그룹 총괄회장)과 가족들, 제가 평생 몸담은 곳에 씻을 수 없는 불명예를 남기게 됐다"며 눈물을 흘렸다. 신 이사장은 2007년 2월부터 올해 5월까지 롯데백화점 면세점과 관련해 총 32억여원을 받아 챙긴 혐의(배임수재 등)로 구속기소 됐다. 신 이사장은 지난 7월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후 소환된 첫 번째 오너가(家) 인물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⑨'빅2' 동반 위기…삼성전자·현대차 성장통에 시름

   
▲ 서울 양재동 현대차그룹 사옥. / 미디어펜 자료사진

대한민국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가 동반 위기에 빠진 가운데, 다른 주요 기업의 성장동력도 약화하고 있다. 재계 안팎에서는 "현재보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한국 경제의 앞날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국내총생산(GDP)의 20% 가까이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삼성전자는 지난 10월 기대작이었던 스마트폰 '갤럭시노트7'을 제품 결함에 따라 단종하기로 하면서 향후 전망에 먹구름이 드리우기도 했다. 현대·기아차는 IMF 외환위기 때인 1998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으로 올해 글로벌 판매량이 전년 대비 감소하는 '마이너스 성장'을 예고하고 있다. 실제로 현대·기아차는 올해 들어 9월까지 국내외에서 562만1910대(현대 347만9326대, 기아 214만2584대)를 팔았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8% 줄어든 수치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지난해 판매실적인 801만5745대에도 못 미치는 결과를 낼 전망이다.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전후방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 때문에 양사의 위기는 수천 개씩에 달하는 협력사들에 고스란히 전이될 수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우려다.

⑩ 갤럭시노트 사태 속 이재용의 '뉴삼성' 출범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0월 임시 주총에서 등기이사로 선임됨으로써 삼성에 8년 만에 공식적인 사주 경영체제가 다시 출범했다. 이 부회장은 2008년 4월 이건희 회장이 퇴진한 이후 처음으로 총수일가의 구성원으로서 등기이사직을 맡게 됐다. 한국 최대 기업 삼성전자의 '이재용 체제' 구축을 바라보는 일반의 시선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삼성전자가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로 초유의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부회장이 경영 전반에 폭넓은 경험을 쌓았고, 실적 반등과 사업재편을 이끄는 등 경영자의 역량과 자질을 충분히 보였다고 평가해 이사로 추천했다는 게 삼성전자 이사회의 설명이었지만 이를 보는 시각은 엇갈렸다. 실제로 이 부회장 체제의 '뉴삼성'이 맞닥뜨린 과제는 만만치 않았다. 매출이 300조 원대에 이르고, 수출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등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한 만큼 국가 경제와 삼성의 발전을 위해 이 부회장이 새로운 경영 전망과 지도력을 보여주기 바란다는 재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디어펜=김세헌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