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세헌기자]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19일 기각되면서 재계는 안도하는 모습이다. 다만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다음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SK, 롯데, CJ 등은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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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인 19일 오전 6시15분께 의왕시 서울구치소 밖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
앞서 특검이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더라도 대기업 수사를 확대하겠다고 밝힌 만큼, 두 재단에 돈을 낸 53개 대기업 전체에 대한 수사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청와대의 압박으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을 낼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을 강조해왔지만, 특검은 주요 대기업의 출연금도 뇌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 만큼 삼성 외에도 다수의 대기업에 뇌물공여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이 열렸다.
재계는 이번에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을 계기로 특검이 향후 구속영장 재청구라는 강수를 두기보다는 불구속 수사로 법리 공방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과 삼성에 대한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서, 특검의 칼날은 이제 SK, 롯데, CJ 등 쪽으로 날아갈 채비를 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지만 이번 사안이 향후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두 재단에 각각 111억원과 45억원을 출연한 SK와 롯데는 추가 모금을 요청받았다는 점 때문에 특검의 우선 수사 대상으로 거론돼왔다.
SK는 K스포츠재단으로부터 '체육인재 해외 전지훈련 예산 지원' 명목으로 80억원을 요구받았지만 지원이 성사되지 않았다. 롯데는 지난 5월 말 K스포츠재단의 하남 체육시설 건립사업에 70억 원을 추가로 기부했다가 전액 돌려받았다.
특검팀은 박근혜 대통령이 SK와 롯데에 현안 해결을 대가로 출연금이나 기타 요구를 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검팀은 김창근 SK이노베이션 회장이 지난 2015년 7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해 3월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 박 대통령과 독대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당시 SK는 최태원 회장 사면, 롯데는 면세점 인허가라는 중요 현안이 있었다.
박 대통령이 2015년 7월 SK 김 회장과 단독 면담을 한 지 20여일이 지나 최 회장은 광복절 특별사면·복권을 받아 출소했다.
이에 SK는 최 회장이 사면받을 당시 두 재단은 언급되지도 않은 상황이라 서로 연관이 없다는 입장이다. 롯데도 최순실 게이트 관련 의혹 자체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특혜는커녕 2015년 11월 잠실 면세점(월드타워점)이 특허 경쟁에서 탈락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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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펜 자료사진 |
차은택 씨가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K컬쳐밸리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CJ그룹도 특검 수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이에 CJ는 특혜 의혹과 관련해 이 회장이 건강악화로 도저히 수감생활을 할 수 없었던 점이 고려돼 사면받은 것이라는 입장이다.
무엇보다 그간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법원의 영장 발부에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다.
법원이 이 부회장에 대해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있다고 판단하지 않은 데 따른 것인 만큼, 최태원 SK 회장과 신동빈 롯데 회장 등 대기업 총수 여러 명을 출국금지한 것은 과잉수사의 단면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태원 SK 회장은 출국금지 조치로 스위스 휴양지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 참석할 수 없게 됐다. 다보스 포럼 전후로 예정된 중국 출장도 차질을 빚게 될 전망이다.
최 회장의 출금이 장기화한다면 애초 예정됐던 중국을 방문, 현지 사업을 점검하고 중국 최대 국영 석유회사인 시노펙 측 인사 등과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일정도 어렵게 된다.
롯데 역시 신동빈 회장이 보통 연말연시에 일본과 미국 등으로 나가 직접 주요 투자은행이나 펀드 등과 롯데가 빌린 채권 등 금융상품의 새해 변경 조건을 협의해왔으나, 출금으로 해외 출장길이 막히면 신 회장이 직접 나서기가 어렵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고 있다.
더불어 신 회장이 지난해 6월 이후 검찰 수사를 겪고 10월에 준법위원회 설치 등 '뉴 롯데' 개혁 구상을 밝혔지만, 출금으로 발이 묶이면서 개혁 '벤처마킹' 모델인 미국·유럽 경영 현장을 둘러 볼 수 없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으로 거론된다.
이에 재계에서는 주요 기업을 특검으로 조사하는 것은 경제 회복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데, 기업들의 잘못은 엄중히 꾸짖어야겠지만 경영활동이라도 보장해주는 혜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최순실 게이트가 재계 특검으로 양상이 바뀌면서 기업들의 정상정적인 경영활동에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며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구속 기각 계기로 특검의 재계를 향한 무리한 수사가 신중한 태도로 전환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보호무역 확산 등 대외 불확실성이 높아져 CEO들의 해외 비즈니스가 중요한 시기인데 주요 기업 총수들이 특검 수사에 발이 묶여 대외 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글로벌 경영에 차질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특검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