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문상진 기자] 김과장은 요즘 남궁민이 부럽단다. 그럴만도 하다. 회사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온갖 궂은일은 도맡다시피 해도 칭찬보다는 구박이 일상이다. 주머니 속에는 언제나 사표가 든 구겨진 봉투가 있다. 김과장은 하루에도 열두번 사표를 던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고 한다.

생각뿐이다. 막상 사표를 던지지 못하는 김과장의 마음은 그래서 더 아프다. 남궁민이 더 부러워지는 이유다. 회사 사장의 아들 싸대기를 올려붙이고 어서 잘라 달라고 큰 소리 뻥뻥 친다. 꿈에서라도 한번쯤 그래봤으면 하는 게 김과장의 바람이다. 현실에서는 언감생심이니.

KBS-2TV 수목드라마 '김과장'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사임당에 출연하고 있는 천하의 한류스타 이영애와 송승헌도 찌질한 김과장 남궁민에게 KO패 당했다. 반전이다. 아니 이유 있는 반전이다. 남궁민은, 온갖 속앓이에 혹시나 하며 한탕을 꿈꾸는 이 시대 김과장들의 대리만족이자 카타르시스다.

남궁민은 웃고 있어도 웃는 게 아닌 웃픈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 김과장을 위로한다. 현실과 드라마 사이의 간극이 때로는 쓴 소주잔을 기울이게 만들기도 하지만 뭐 어쩌랴. 쓰디 쓴 소주에 그나마 안주감이 되어주는 남궁민이 있으니 그 또한 위안이다.

   
▲ KBS-2TV 수목드라마 '김과장' 시청률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사임당에 출연하고 있는 천하의 한류스타 이영애와 송승헌도 찌질한 김과장 남궁민에게 KO패 당했다./사진=KBS-2TV '김과장' 캡처

드라마속 TQ그룹 경리부 같은 천덕꾸러기 부서는 어디든 있을 수 있다. 더구나 여태껏 온갖 설움과 구박 속에 묵묵히 일은 해 왔지만 오합지졸이다. 그 흔한 빽도 없고 줄도 없다. 경리부장 김원해는 기러기 아빠다. 큰 소리 한번 못치고 살아 온 그지만 알고 보면 브레인이다. 여지없는 이웃집 아저씨 같은 김원해다. 정은 많지만 가진 것 없는 중년의 자화상, 그가 바로 김원해다.

꼴통 김과장 남궁민의 등장으로 사이다 어벤져스팀이 꾸려진다. 남궁민과 알콩달콩 로맨스를 예고하는 똑순이 남상미도 예사롭지 않다. 그룹 대표이사 이일화의 심복이다. '뜰' 생각만 하던 남궁민은 남상미와의 인연으로 눌러 앉는다. 피 안 흘리는 구조조정의 대가로 이일화에게 1억원 착수금(?)을 받은 남궁민. 역시 드라마다. 성공보수금은 2억이란다.   
 
뭐 드라마는 안봐도 비디오일 게다. 남궁민의 통쾌한 한판승에 남상미와의 로맨스. 그야말로 임도 보고 뽕도 따고 도랑 치고 가재 잡는 격이다. 직장인의 이상향이다. 유토피아이니 현실과 동일시했다간 낭패다.

김과장의 인기 요인이 여기까지라면 좀 섭섭하다. 절묘한 타이밍은 '신의 한수'다. 근엄함에 대해 어퍼컷이라도 맘껏 날리고 싶은 현실상황이 일조했다. 툭하면 터지는 갑질에 대한 분노도 시청자들을 김과장 앞으로 끌어다 앉혔다. 항거하지 못했던 불의에 대한 함구를 대신 터트려 주는 짜릿함도 있다. 

연기자들의 연기력도 빼 놓을 수 없다. 능글맞음의 내공이 묻어나는 낭궁민, 똑 닮은 듯한 생활연기를 소화해 내는 김원해, 똑순이 연기 남상미까지. 가슴속에 꿈틀대는 모든 이들의 목마름에 시원한 사이다로 다가선 까닭이다. 조연들의 탄탄함까지 더해 갑과 을, 기울어진 세상에 대해 공감 100%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남궁민이 연기하는 김과장이, 김과장이 꿈꾸는 진짜 김과장의 세상은 올까? 그 흔한 주제로, 내로라하는 스타 없이도 인기를 끄는 이유는 아마도 바람이기에 그럴 것이다. 드라마가 현실이 되고 바람이 바람대로 이루어지는 세상이 있을까? 아님 김과장처럼 만들어 갈 수 있기나 한 것일까. 어쨌든 그랬음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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