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효율적인 정부' '선별적 집중복지' 역행 공약 쏟아내
洪 "알아서 공약 짜라, 난 나대로 한다"…철학 공유·소통 부재
[미디어펜=한기호 기자]자유한국당이 지난 14일 공개한 제19대 대통령 선거 10대 공약에서 심각한 흠결이 드러났다. 보수 우파 대표 홍준표 후보의 공약이라고 보기 어려운 수준의 정책과 형용 모순이 곳곳에서 포착됐다.

불과 하루 전인 13일 SBS·한국기자협회 공동 주최 대선후보자 TV토론회에서 홍준표 후보가 "저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공개 반대한 '중소기업부 신설'이 포함된 게 대표적이다. 공약에서 한국당이 스스로 '작고 효율적인 정부 실현'을 천명한 것과도 배치된다. 

이와 함께 4차 산업혁명 육성을 목적으로 '정보과학기술부'(미래창조과학부 개명)를, 여성가족청년부를 신설하고 국가보훈처를 장관급으로 격상한다고 밝혔다. 소방방재청, 노인복지청, 수도권교통광역청 등을 신설하고 해양경창철도 부활시킨다는 계획이다.

한국당 공약에서는 대통령 직속 기구도 늘리겠다고 밝혔다. 홍 후보가 직접 공약한 '서민·청년구난위원회' 외에도 미래전략위·청년고용촉진위를 새로 만들고, 청와대 인구정책수석비서관직을 만든다는 구상이 포함됐다.

이처럼 청와대와 중앙정부 산하 부처를 증설·승격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 반면 통폐합에 관한 내용은 찾기 어려웠다. 행정·재정개혁을 통해 국가부채를 줄이고 지방자치단체 및 민간단체로 국가사무를 이양한다는 기조가 무색하다는 지적이다.

홍 후보가 지금껏 '보편적 복지'를 "공산주의 배급제"라고 일축하며 취약계층 중심 '선별적 복지'를 내세워온 것과 달리, 10대 공약에는 인구절벽 해소를 위해 "출산·보육·교육은 국가가 책임진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오히려 만 0~5세 무상보육(누리과정) 양육수당을 현행 일률 지원에서 소득 5분위별 차등 지원으로 전환한다는 홍 후보의 경선 당시 공약은 빠졌다. 둘째 자녀 출산 시 1000만원을 지급하고, 셋째부터는 자녀 교육비까지 국가가 지급하며, 양육수당을 2배로 늘리고 소득 하위20%(1분위) 지원액은 거듭 2배로 인상한다는 등 보편적 복지 일색이다.

   
▲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통령후보./사진=홍준표 캠프 제공


청년층을 대상으로는 올해만 해도 3300억원대 중앙정부 예산이 편성된 '취업성공패키지'를 더욱 확대, 목돈 마련을 지원한다는 공약과 '청년 전담부처 신설' 등을 제안했다. 그러나 뚜렷한 재원 마련 방안은 적시되지 않았다.

기업활동에 관해서는 정부 재정지출 확대와 저금리 유지를 약속해 행정·재정개혁 기조와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규제를 '해서는 안 될 것만 규정하고 나머지를 모두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대폭 전환하고 '1개 신설 시 2개 철폐' 원칙을 세운다는 건 방향성이 맞아 보인다.

그러나 일명 '골목상권' 보호를 명목으로 대기업 진출 업종 제한 및 대규모 점포 출점규제 강화, 전통시장 보호 강화와 상인 융자확대 등 정부개입 위주의 정책을 풀어놔 상충된다는 해석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표적 보편적 복지정책인 만65세 이상 노인 기초연금을 현행 2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높인다는 안도 들어갔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골자로 한 개혁법안 대신 원·하청 성과공유제도 등을 명시했다.

일련의 공약이 포퓰리즘을 배격하고 우파 후보로서의 선명성을 꾀하려는 홍 후보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전에 공약개발 회의를 가졌다고 하나, 홍 후보와 실무진 간 소통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는 당이 홍 후보의 보수우파적 정책 철학을 따라가지 못한 채 공약을 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14일 한국당 관계자에 따르면 홍 후보는 '당신들이 알아서 10대 공약을 짜라, 나는 나대로 얘기하겠다'는 태도를 취했다는 후문이다. 다른 관계자는 "홍 후보가 (대선후보로) 되기 전에 미리 준비해둔 공약이 좀 많았다"며 "그만큼 당이 문제"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기업활동 규제완화·공세적 국방정책·강성노조 타파·서민자녀 4단계 교육지원·생계형 신용불량자 구제·노인복지 강화 등 홍 후보의 '입'을 통해 나온, 그리고 앞으로 나올 기조에만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당은 내부에서 '재벌들 때문에 서민이 힘들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로 이념·정체성 면에서 홍 후보와 공감대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승리 가능성이 애초 전무하다고 보고 비협조로 일관하는 국회의원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나마 4·12 재보궐선거에서 공천지역 과반 당선이라는 예상 밖 성적표를 받아든 뒤 내부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는 후문이다. 홍 후보와 이념·정체성 면에서 공감대를 이룰 수 있는 인력이 캠프에 더 많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반면 홍 후보도 상향식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 경선 과정에서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장부상 계정일 뿐이라고 김진태 의원이 지적했지만, 그는 여전히 '10대 대기업 사내유보금 수백조원이 전부 현금성 자산'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홍 후보 곁에 '쓴소리'를 하는 인사가 전무하다는 방증으로 이대로라면 홍 후보의 '마이웨이 대선'이 더욱 고착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디어펜=한기호 기자]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