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준비기간 부족 실효성 의문
"기업 애로·속내 말하기 어려울 것"
[미디어펜=조한진 기자]재계가 문재인 정부의 ‘일방통행’식 의사 결정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가 오는 27~28일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과의 간담회를 개최한다고 발표하면서 재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통령 주재 간담회에 총수 혹은 최고위 경영진이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헤이 아담스 호텔에서 열린 우리 참여 경제인과의 차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4일 재계와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오는 27~28일 양일에 걸쳐 15대 그룹(농협제외 오뚜기 포함)과 만찬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청와대는 효율성을 위해 7~8개 그룹사씩 두 그룹으로 나눠 간담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과거와 같이 많은 인원이 참석할 경우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통해 경제현안에 대한 실질적이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겠다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번 간담회 참석 대상 기업은 삼성·현대차·SK·LG·롯데·포스코·GS·한화·현대중공업·신세계·KT·두산·한진·CJ·오뚜기다.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함께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 등이 참석한다.

그러나 해당 기업들은 사실상 멘붕 상태다. 대통령과의 간담회를 1주일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기 때문이다. 청와대 발표 전까지 공식 채널을 통해 통보 받는 사항이 없다며 준비에 난감해 하는 모습이다.

우선 글로벌 시장을 무대로 경영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총수나 최고 수뇌부들의 일정 조율이 당면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청와대의 사실상 깜짝 발표에 경영 스케줄 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번 간담회 대상에 포함된 한 기업 관계자는 “대통령이 부르는데 안 간다고 할 기업이 어디 있겠냐. 정부가 여유를 더 주고 일정을 잡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시차가 비슷한 아시아권 거래선들과의 일정은 그나마 빠른 대쳐가 가능하지만 북미나 유럽 쪽 일정으로 고민이 큰 기업들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들과의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겠다고 했지만 실효성에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간담회 참석 기업들은 3~4일 간의 준비 기간만을 갖고 대통령을 만나야 하기 때문이다.

   
▲ 지난 17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의회관에서 열린 공정거래위원장 초청 CEO조찬간담에서 CEO들이 김상조 위원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사진=대한상의 제공

이번 간담회에서 문 대통령은 △더불어 잘 사는 경제 △사람 중심 경제 등 정부의 경제 철학을 강조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일자리창출 △대중소기업의 상생 등도 거론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계 역시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겠다는 입장을 내놓을 것으로 관측된다. 앞서 공정거래위원장, 일자리위원회 등과의 간담회에도 재계는 일자리 확대, 상생 등을 약속했다.

최근 재계는 새 정부가 추진하는 △재벌개혁과 규제 △법인세‧소득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등을 경영 부담 요소로 꼽고 있다. 이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대통령과의 간담회에서 이에 대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는 앞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면서 ‘재벌 총수 일가 전횡 방지 및 소유‧지배구조 개선’을 명시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 역시 “한국경제에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기업들도)서둘러 주시기를 기대하겠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면에 나서 시범케이스가 될 필요는 없다는 분위기가 기업들 사이에 팽배하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상황이 좋지 않다. 사실상 정부가 경고장을 날린 상황에서 누가 총대를 메겠냐”라며 “이번 간담회에서도 기업의 목소리를 강하게 어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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