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와중에 꼭 이래야만 했었나. 통일부가 결국 800만 달러 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21일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는 지원이 시급하다며 늦어도 연내에는 집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통일부는 구체적 시기는 못 박지 않았다. 6차 북핵 실험 11일만이다.
북한은 민간단체의 대북 인도적 지원 21건을 모두 거절하며 무시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해서라도 대북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북한의 철저한 무시 이면에는 오직 미국과 물꼬를 트겠다는 전술전략이 존재한다. 북한의 안중에 남한은 없다. '남한 패싱'은 오래된 기정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북한은 6차 핵실험 포함 11일에 한번 꼴로 미사일 도발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9일(현지 시각)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 완전 파괴'까지 언급했다. 북한은 '개 짖는 소리'라고 맞받았다. 미국은 외교·경제 봉쇄는 물론 군사 대응카드까지 포함한 초강력 제재를 통해 북핵 폐기를 이끌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도발에 전통 우방들도 대북 무역을 줄이거나 단절하겠다고 선언하며 대북 제재에 동참하는 나라가 늘고 있다. 멕시코, 페루, 쿠웨이트에 이어 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스페인도 북한 대사를 추방했다. 지난 3월 김정남 암살 사건 후 북한 대사를 추방한 말레이시아까지 합치면 모두 5개국에서 북한 대사가 쫓겨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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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부가 결국 800만 달러 규모의 대북 인도적 지원을 하기로 결정했다. 21일 남북교류협력추진위원회는 지원이 시급하다면 늦어도 연내에는 집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사진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7 대북지원 국제회의'에서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평화를 위하여'를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대북 교역액 3위인 필리핀은 지난 8일 북한과의 교역 중단을 선언했다. 캄보디아는 비판 성명을 냈고 베트남은 현지 북한인 중 최고위급 인사인 북한 단천은행 대표를 추방했다. 말레이시아 총리는 북한과의 외교 관계를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은 북한에 대한 독자적 제재 조치 일환으로 대북 송금 한도를 크게 낮추겠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도 20일(현지시간) "중국이 북·중 밀수단속 강화 조치 등을 포함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를 철저하고 전면적으로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대북 제재의 가장 큰 '구멍'인 중국 역시 국제 사회의 여론을 따갑게 의식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북핵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높아지는데도 당자자인 한국만 분위기 파악 못한 채 오락가락 행보다. 국제사회와 공조는커녕 엇박자를 내고 있다. 한국 정부의 대북지원에 대해 제재로 가는 길목에 동맹의 분열을 조장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국내외서 터져 나오고 있다.
북한의 예상을 뛰어 넘는 핵·미사일 개발에 세계가 한반도의 현 위기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사실상 핵 국가가 돼 버린 북한의 위협과 젊은 독재자 김정은은 예측불허다. 김정은의 '남한 패싱'은 우리 정부 스스로가 빌미를 제공한 감도 적지 않다. 제재와 대화라는 이상론만 외치다 국론분열이라는 가장 아픈 곳을 찔렸다. 김정은이 가장 원하는 모습을 내 보인 것이다.
국민은 불안하다. 사드 배치를 놓고 갈팡질팡하다 군사기밀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와 송영무 국방장관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삐걱 거린다. 청와대는 국가 안보 수장인 국방부 장관을 질책했다. 군의 사기가 땅에 떨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국민은 절망한다. 북한의 잇단 핵·미사일 도발에 아랑곳없이 대안도 없고 대답도 없는 대화만을 외치고 있다. 김정은의 도발과 도전에 전쟁은 안되며 평화적 해결만을 노래한다. 대화할 때가 아니라면서도 국제사회가 속속 제재에 나서는데 대북지원을 결정했다. 평화를 원하지 않고 전쟁을 원하는 나라는 없다. 자신들만이 평화론자라는 착각은 자가당착이다.
국민은 바란다. 안보에 대한 정부의 제각각 목소리가 하나가 되기를. 대답없는 대화보다는 국제사회와 함께 평화를 찾기를. 대북관계에 대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이지 않기를. 자기 모순에 빠져 스스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지 않기를.
국민은 생각한다. 제재에 나선 동맹국들에게 지원이라는 뒤통수치는 일로 동맹국들이 등 돌릴까 걱정스럽다. 전략적 모호성이이라는 애매한 태도로 의심을 사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국민조차 헷갈리는 선명하지 못한 정책을 국제사회는 어떻게 받아들일까 자문한다. 자칫 한반도 주변 강대국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코리아 패싱'을 당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하다.
[미디어펜=편집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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