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보다 30% 더 주기, 주민세금 퍼주기로 다른 예산 삭감해야, 최저임금 무력화우려

   
▲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6.4 지방선거가 한 달도 남지 않았다. 본격적인 선거레이스가 시작되면 후보들의 공약대결도 치열해진다. 하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공약에 별 관심이 없다. 이미 후보대결 관전포인트를 잃었다. 너도나도 주민들 세금으로 생색내는 사업만 공약으로 내세우니 말이다. 차별성이 없다보니 후보들은 서로 상대방 깎아내리기에 더 혈안이다. 결국 유권자는 ‘후보자 누구’를 찍는 게 아니라 ‘어느 정당의 후보자’에게 투표한다.

후보자의 당락이 점점 정당의 운명과 함께 가는 분위기다. 이런 경향에선 야당 후보자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퍼주기 공약’을 정당차원에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무수한 야당후보자들이 ‘무상급식’ 공약 덕을 봤다. “애들한테 밥 한 끼 못 먹이냐”라는 감성적 주장이 유권자를 흔들었다. 다시 4년이 지난 지금 야당은 ‘생활임금’이라는 공약 신무기를 들고 나왔다. “인간다운 삶이 되도록 임금을 줘야하지 않냐”는 무상시리즈에 버금갈 감성 공약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4월 중순, 지방선거 민생공약 1호로 ‘생활임금제’를 채택했다. 생소한 용어지만 현재 일부 지자체에서 생활임금 개념을 도입해 시행중이다. 서울 노원-성북구는 지난해부터 구청장 행정명령으로 구청 시설관리공단 소속 근로자를 대상으로 적용중이다. 경기 부천시는 올해 4월부터 조례를 근거로 시 소속, 출연출자기관 소속 근로자에게 생활임금 기준으로 급여를 책정했다. 행정명령은 지속성이 없기 때문에 노원-성북구도 생활임금을 향후 조례로 제정할 듯하다.

   
▲ 한달도 남지 않은 6.4지방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구청장 후보들이 잇따라 생활임금 공약을 내걸고 주민들의 표를 구하고 있다. 법정 최저임금보다 30% 더 주는 생활임금은 결국 주민들의 세금으로 생색을 내는데다, 다른 예산에서 전용해야 한다는 점에서 풍선효과에 불과하다. 생활임금이 확산되면, 일자리가 줄어들고, 기업들의 인건비도 심각하게 늘어나게 된다. 최저임금이 무력화되는 문제점도 발생한다. 안철수 새정치연 공동대표가 공약을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생활임금 도입을 주장하는 쪽은 최저임금만으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주거-교육-문화-의료비 등을 감안해 적정소득을 보장해주자는 것이다. 실제로 노원-성북구의 생활임금은 최저임금보다 30%가량 높다. 2014년도 최저임금은 월 108만8890원이고 생활임금은 143만2000원이다. 물론 두 임금의 차액만큼 지자체가 예산에서 부담한다.

한마디로, 생활임금은 지자체가 법정 최저임금 기준을 따르지 않고 자체 기준을 세워 자기 예산으로 소속 근로자에게 임금을 더 주는 개념이다. 지방자치, 자치권한이 강조되는 시대이니 그럴싸한 제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생활임금제, 과연 문제는 없을까.

우선 법적 문제가 존재한다. 지방자치법 제11조5항에 따르면 ‘근로기준 등 전국적으로 기준을 통일하고 조정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사무’는 국가사무로서 지자체 처리가 제한된다. 그래서 최저임금제가 법률로 도입됐다. 반면 생활임금제는 법률 근거가 없다.

또한 생활임금은 추가 인건비로서 지자체 출자출연기관, 도서관, 문화재단 소속 근로자에게 지자체가 직접 임금을 보조한다. 이는 개인 또는 단체에 지자체의 기부-보조-출연을 제한하는 지방재정법 제17조1항에 위배된다.

지난 달 경기도의회를 통과한 생활임금조례엔 위탁-용역 계약시 수탁기관의 생활임금 지급여부를 선정기준의 하나로 고려한다는 내용이 덧붙여졌다. 이 또한 지방계약법 제6조에 위배된다. 계약상대자의 계약상 이익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특약이나 조건을 정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무시한 것이다.

사실 생활임금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다. 법정 최저임금의 존재의미를 점점 퇴색시킨다는 것이다. 지자체에 생활임금이 확산되면 지자체 산하-수탁기관 등 하부기관까지 생활임금 기준이 여파를 미친다. 지금은 낯선 개념이 점차 일반화되고 결국 지자체와 직접 관련 없는 민간기업에까지 생활임금 바람이 불게 된다. 그러면 민간 시장에선 생활임금 적용기업과 최저임금 적용기업으로 나누어져,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삼는 기업은 지역여론의 뭇매를 맞게 된다. 민간 기업은 결국 민심 압력에 굴복할 수 밖에 없고 최저임금은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2012년 말 생활임금을 처음 시도한 노원-성북구와 참여연대는 생활임금을 민간부문까지 확산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해마다 최저임금 의결 때마다 극심한 진통을 겪어왔던 터다. 근로자 대표와 사용자 대표, 공익 대표 각각 9인씩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 생활안정 뿐 아니라 사용자의 경영안정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쉽사리 최저임금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생활임금 도입 속셈은 법정 최저임금의 무력화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생활임금이 지자체 또는 소속 기관에 적용된다면 물론 해당 근로자는 소득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단 지자체는 그 예산만큼 다른 사업을 줄여야 한다. 어쩌면 주민들에게 돌아가야 할 무언가가 사라질 수도 있다. 가뜩이나 지자체 살림형편도 나빠 허리띠를 바짝 죄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생활임금이 민간기업까지 적용된다고 치자. 이미 고용된 근로자에겐 물론 이득이겠으나 일자리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구직의 기회가 그만큼 사라진다. 3명을 고용할 금액으로 이제는 2명밖에 고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3명 모두를 고용한다면 그에 따른 추가 비용은 다수의 소비자들에게 전가될 것이다. 그 소비자들 중엔 물론 생활임금을 받는 근로자도 포함된다. 결국 생활임금 도입이 모든 근로자에게 이득이라고 장담하기는 힘들다. 그래서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보이지 않는 영향까지 고려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런 고민까지 했을까? 글쎄다.

지난 1월 새정치민주연합 김경협 의원은 생활임금을 지자체에 위임하는 내용을 담은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생활임금 조례가 최저임금법에 위배된다는 해석을 의식해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생활임금이란 호재를 발견해 잔뜩 들떠있다. 4년 전 무상급식만큼의 반향을 기대하는 듯하다.

하지만 무상급식을 위해 학교 노후시설 관리비, 학교 기자재 교체비 등을 삭감했다. 학부모에게 급식과 안전관리 중 어느 것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으면 당연히 후자일테다. 지금 새민련 후보들은 저마다의 공약에 생활임금을 도입하겠노라 외친다. 그렇다면 생활임금 대신 지역주민들이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지도 함께 말해야 한다. 이제 유권자는 그런 고민과 정책의 장-단점을 밝히는 솔직한 후보를 뽑자. /박주희 바른사회시민회의 사회실장,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