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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석 언론인 |
한일관계 빙하기를 우려하는 사설을 미디어펜이 내보낸 게 10여일 전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외교안보 드라이브가 북핵 해결과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가져오는 건 물론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좋지 않으며 양국 경제협력에도 주름살을 가져온다는 요지였다. 그럼에도 이후 상황은 더욱 더 안 좋은 쪽으로만 흘러가니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문 대통령은 지난 주 "위안부 합의는 진실과 정의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대통령으로서 사과한다는 발언까지 했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정대협 관계자들과의 오찬에서 한 말인데, 대통령이 나서서 이렇게 선을 그으면 실무책임자들 사이의 협상-조정 작업에 여지가 없어진다.
아니나 다를까? 주한 일본대사관도 "위안부 합의를 변경 시도할 때는 한일관계는 관리가 불가능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연말에 이어 양국간 긴장의 수위가 높아져 회복 불능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의 10일 신년 기자회견에 관심이 쏠리는데, 새 정부의 의지를 보여줄만큼 했으니 이젠 회군(回軍)할 것을 권유하려 한다.
빙하기 한일관계 이젠 회복 불능?
이유는 자명하다. 적폐청산 외교가 거대한 자해극으로 치닫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일본은 국력이 우리 몇 배 이상인 나라이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아니던가? 더욱이 북의 도발을 막을 미군 자산 대부분이 일본에 배치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친중 반일 노선은 명백한 바보짓이다.
이른바 피해자 중심주의 외교라는 명분도 설득력이 없다. 위안부 할머니들 몇십 명과 좌파 시민단체의 의견만 따르다가는 5000만 명 국민의 안위가 걱정이다. 그럼 문 대통령이 무얼 해야 할까? 평창 올림픽 전후해 문 대통령의 일본 방문 얘기도 나오는데, 차제에 역대 대통령들의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접근법을 복기(復碁)해볼 것을 권한다.
미디어펜은 그날 사설에서 한일관계의 모범은 김대중-오부치 합의라고 일깨웠는데, 그게 맞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방일해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미래 지향적인 합의안을 도출했다. 위안부 문제로 더 이상 양국관계가 경색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며 다방면의 한일교류를 강화에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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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청와대에서 진행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오찬 간담회를 앞두고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 중인 김복동 할머니를 찾아 병문안하고 있다./사진=청와대 제공 |
한류가 일본에서 성공했던 것도 그 맥락이었는데, 실은 위안부 회담 타결 직후 박근혜 대통령이 발표한 대국민 메시지도 김대중 대통령의 접근법과 닮은꼴이었음을 잊으면 안 된다. "일본의 잘못된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는 한일관계 개선과 대승적 견지에서 이번 (위안부) 합의에 대해 피해자 분들과 국민 여러분들께서도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런 충정에서 나온 위안부 합의가 왜 적폐 외교인지 나는 동의할 수 없다. 실은 5공의 대일 외교도 전향적이었다. 지난해 출간된 <전두환 회고록>을 보면 신군부 등장 이후 한미 밀월시대를 열었던 것에 대한 전 전 대통령의 자부심이 크고, 대일관계도 순조로웠다.
한국 국가원수의 일본 공식방문도 전두환 대통령이 처음이었음을 기억해두자. 회고록에는 "방문 자체가 가해자(일본)에 대한 용서의 뜻을 함축하고 있으며", 그것은 "과거를 청산하는 화해의식"(2권 371쪽)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지금의 '눈먼 반일 정서'와는 사뭇 다른 여유와 균형 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 자성할 뿐, 남 탓하지 않겠다"
노태우 정부까지만 해도 지금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일테면 1990년 노 대통령도 일본을 방문했고, 그곳 의회 연설에서 일본은 물론 한국을 감동시켰다. 연설 안에 한일간 신뢰가 녹아있고, 요즘의 사회 분위기 속에선 감히 꿈도 못 꿀 제안이 있다.
"실은 오늘의 우리는 이 나라를 지키지 못한 스스로를 자성할 뿐, 지난 일을 되새겨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려 하지 않습니다. 다음 세기에 동경을 출발한 일본의 젊은이들이 현해탄의 해저터널을 가로질러 서울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려 북경과 모스코바로, 파리와 런던으로 대륙을 잇고 세계를 하나로 만드는 우정 어린 동반여행을 하는 시대를 우리가 만들어 갑시다."
그게 맞는 접근법이다. 그게 한일관계의 표본이 돼야 한다. 1980년대까지는 그래도 반일보다는 극일이 한국인의 명제였다. 그건 박정희 대통령이 물려준 유산임을 잊으면 안 된다. 즉 건국 대통령 이승만이 용미(用美)로 대한민국을 일으켜 세웠다면, 부국 대통령 박정희는 용일(用日)로 성공했다. 그런 배경에서 반세기 전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뤄졌다.
그걸 새삼 증언해줬던 게 2015년 김종필의 중앙일보 연재물 '소이부답(笑而不答)'의 이 대목이다. "필요하면 원수와도 손을 잡는 것은 그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다. 반일보다 어려운 게 용일이란 얘기는 나와 박 대통령이 종종 나눴던 대화 주제다."(중앙일보 5월11일)
'반일보다 어려운 용일'이란 화두는 지금 우리에게 거듭 울림이 큰 명제다. 지금 우리가 한참이나 차원이 낮은 반일 히스테리 아래 못난 짓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지를 더듬어봐야 할 때다. 대중의 박수를 받기 위해 좌파 민족주의에 몸을 담그는 건 아닌가를 검토해봐야 한다. 이젠 문재인 정부가 유턴을 해야 할 때다. /조우석 언론인
[조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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