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공정위 순환출자 가이드라인 번복 후 그룹 내 물산 지분 검토
전문가들 "순환출자 고리 해소, 상식 아냐…정부 왈가왈부 말아야"
[미디어펜=조우현 기자]삼성이 그룹 내에 남아있는 7개의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이것이 현실화 될 경우 ‘순환출자는 나쁘다’는 인식이 공고해질 수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화재 등 삼성물산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세 개의 계열사가 물산 지분 매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매각 대상 지분은 6.1%로, 3월 30일 종가 기준 시가 1조6300억원 규모다.

삼성의 이 같은 움직임은 지난 2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번복한 이후 다른 계열사가 가지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도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 관계자는 “공정위가 8월 26일까지 해소하라고 한 삼성SDI의 물산 지분 해소 외에 확실히 결정된 바는 없다”며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 해당 사안을 계속 검토하고 있지만 시기와 방법 등은 미정”이라고 설명했다.

당초 공정위는 삼성SDI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확보한 삼성물산 주식 904만주를 순환출자 ‘강화(지분증가)’로 판단, 삼성SDI가 추가로 확보하게 된 삼성물산 지분 2.6%를 처분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삼성SDI는 지난 2016년 삼성물산 지분 2.6%인 500만주를 처분했다. 

   
▲ 삼성 로고./사진=연합뉴스


하지만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돌연 입장을 번복, ‘강화’가 아닌 ‘형성’으로 판단을 바꿨다. 삼성SDI가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 지분 2.11%를 오는 8월 26일까지 매각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만약 삼성 SDI가 유예기간 내에 삼성물산 주식을 매각하지 않으면 과징금을 내거나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

공정위의 판단 번복에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순환출자와 관련한 공정위의 잣대가 과거와 달라졌다”며 “삼성은 지난 정부에서 내린 지침대로 이행을 했는데, 한번 결정한 것을 또 바꾸는 것은 신의원칙에 어긋난다”고 비판한 바 있다. 정부가 일관된 행정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 해소’ 움직임이 순환출자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상식일 뿐, 절대 ‘선’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학과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순환출자는 불투명한 지배구조고, 지주회사는 선진화된 구조냐”고 반문한뒤 “회사 경쟁력 향상을 위해 노력해도 앞날이 불확실한 회사들이 지배구조 변경에 열정을 쓰고 있다”며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이 교수는 “지배구조 중 최악의 구조는 ‘주인이 없는 구조’”라며 “그것이 지금 우리나라 ‘국민기업’과 공기업들이 부진한 이유이기도 하고, 정권의 트로피가 되는 부패의 악순환의 이유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현진권 전 자유경제원 원장은 “순환출자는 나쁜 것이 아니”라며 “기업이 순환출자를 통해 파이를 키우고, 이윤을 창출해 일자리를 늘리고, 세금을 많이 내게 되면 경제에 이익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적은 지분으로 경영권을 장악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가장 큰 장점”이라며 “이것을 나쁘게 보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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