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도, 정치도 만능아냐...이상적 시장개입은 원천적 허구

경제학 용어 중 ‘시장실패 (market failure)’만큼 많은 국민에게 알려져 있는 단어는 없을 것 같다. 환경오염, 금융위기 등 각종 사회· 경제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시장이 불완전해 발생한 현상이며 시장만능주의가 만들어낸 폐단이라는 이야기는 이제는 일상적 대화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또한 시장의 문제 해결을 위해 선제적으로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논리로 이어져 경제민주화와 같은 조치가 당연시되고 시장이 개혁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러한 논의를 살펴보면 시장의 불완전성이 인위적인 조정으로 보완될 수 있다는 설계주의적 사고가 배경으로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외부효과를 고려하지 않은 경제활동으로 인한 외부불경제 및 무임승차 문제, 불완전 경쟁으로 인한 독과점 문제, 역선택과 도덕적 해이로 인한 시장붕괴 문제 등으로 대표되는 시장실패가 사전적 설계를 통해 예방되고 교정될 수 있다는 사고이다. 또한 ‘보이는 손’으로 회자되는 시장개입장치의 완벽한 고안이 가능하다는 가정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보이는 손을 완벽하게 고안해 시장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고 교정할 수 있을까? 거의 대다수가 의문 없이 받아들이는 시장개입장치의 정책화가 시도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 실상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시장실패의 정치화(politicization)로 불리는 ‘보이는 손’의 정책화 과정은 시장실패를 해결하고 교정하려는 개입장치의 원 취지를 훼손시키고 시장실패의 폐단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현상으로 귀결된다. 시장실패의 정치적 교정은 애시 당초 불가능한 목표이며 이는 이상적 시장개입이 가능한 것으로 간주해 오해되는 착시현상이다.

시장실패의 정책(정치)적 교정이 예상외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시장실패의 대표적 사례인 환경오염 문제의 정치화 과정이 잘 보여준다. 한 공장의 생산이 옆 마을의 공기를 오염시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적의 오염물 배출세, 즉 가장 효율적으로 오염배출을 제한시키는 교정세가 제안되더라도 (물론 가장 이상적인 교정세를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과반 수 이상의 동의를 얻지를 못한다면 그 제안은 파기된다. 정치시장의 특성상 이상적인 교정세는 무시되고 과반의 동의조건을 충족하고 보장하는 중위투표자의 선호안, 즉 아주 높거나 낮은 교정세를 지지하는 투표자의 중간에 위치한 중위투표자의 효용만을 고려한 교정세가 정치화 과정을 통해 도입된다.

중위투표자의 효용을 극대화시키는 교정세가 이상적으로 설계된 교정세와 일치할 확률이 희박하다는 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다. 각종 이익 단체들의 정치적 입김과 정치인의 사익추구 동기까지 고려한다면 그 확률은 더욱 낮아지며 교정세와 같은 시장개입의 논리가 얼마나 허구적인지 금세 드러난다. 시장실패의 해결을 위해 도입된다는 각종 시장개입장치들은 원래의 목적과는 달리 시장거래라는 투명한 절차로는 불가능하지만 정치적 거래로는 가능한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를 추구하는 장치로 변질되어 도입된다.

모든 시장개입장치들은 정치실패(political failure)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약점에 노출되어 있다. 정치실패는 불완전 정보나 잘못된 동기부여 등의 이유로 발생하는 정부실패와는 달리 시장실패를 바로잡기 위한 이상적 시장개입안이 마련되더라도 정치화 과정에서 왜곡되는 현상을 설명한다. 이상적 시장개입이 원천적으로 허구이고 시장실패의 정치화가 또 다른 폐단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며 우선적으로 걱정해야 할 사회적 문제이다.

시장이 만능이 아닌 것과 같이 정치 또한 만능이 아니다. 시장실패와 이상적 시장개입의 비교는 이젠 최대한 자제되어야하며 시장실패를 바로잡기 위한 시장개입의 논의에 앞서 정치실패에 대한 우려가 항상 먼저 제기되어야 한다. 시장실패의 정치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정치실패 현상은 누가 그리고 무엇이 선제적 구조조정과 개혁의 대상인지 명시화하고 있다. /윤상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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