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항공대란 재현될 것"...수시파업땐 운송·수출지연 등 불가피
[미디어펜=최주영 기자]대한항공 총수일가의 갑질 논란 사태를 계기로 항공산업의 필수공익사업 지정 해제 논란이 다시 일고 있다. 지난 2006년 정부가 양대항공사 조종사 파업으로 수출 피해가 발생하자 항공업을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해 단체행동권을 제한한 것을 다시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는 것.

재계에서는 국가경제에 파급효과가 크고 업무 대체가 어려운 점 등을 들어 항공사 필수공익사업 지정 해제를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대한항공 직원연대가 지난 4일 오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집회를 열고 조양호 일가 퇴진과 갑질 근절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연합뉴스


20일 업계에 따르면 대한항공 직원연대와 운수노조 관계자들은 ‘민간항공사에 대한 필수공익사업 지정 해제’를 조만간 정부에 공식 건의하기로 했다. 대한항공 직원연대는 현재까지 총 3차례의 집회를 통해 △직원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 마련 △항공사 필수공익사업장 지정 철회 등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오너일가의 갑질 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도 현실적으로 국가에 의해 단체행동권이 크게 제약하고 있어 위헌성이 심각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10여년간 쟁의권이 사실상 제한돼 사용자를 감시·견제하는 기능을 위축시켜 재벌경영의 폐해 확산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항공사들은 이를 썩 반기지 않는 분위기다. 2006년 12월 필수공익사업에 항공운수사업이 추가되면서 현재 유지되고 있는 최소 운항률(국제선 80%, 제주노선 70%, 내륙노선 50%) 기준이 바뀌거나 폐지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항공사 몫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다.

무엇보다도 항공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쟁의행위 같은 단체행동권이 인정될 경우 불시에 발생할 수 있는 항공편 결항 등 ‘업무 마비’다. 

일각에서는 2000년대 중반에 발생했던 ‘항공 대란’이 다시 재현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조종사의 장기 파업으로 여객 및 화물운송이 마비돼 수천억 규모의 큰 차질을 빚은 바 있다.

여객 운송과 마찬가지로 항공기로 실어나르는 수출화물이 대부분 반도체 등 IT제품이라는 점에서 수출전선에도 막대한 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항공화물 수출액은 1750억달러로 총수출의 30%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항공업계 한 관계자는 “여객운송 뿐만 아니라 정시성을 요하는 화물의 경우 파업으로 제때 운송못하면 클레임 등에 따른 추가 비용손실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대외 신인도 하락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항공업 특성상 각국과 전산시스템이 공유돼 있어 쟁의 발생에 따른 여객운송 및 화물수송 지연은 국가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또다른 업계 관계자는 “프랑스가 월드컵 당시 에어프랑스 노조 파업으로 국가신뢰도 하락은 물론,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쳤던 것을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주요 선진국들은 항공운송사업의 안정적 운영 강화를 위한 법적장치를 이미 마련했다. 

대한상의 등 경제계에 따르면 미국은 공익사업에 대해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행사하면 60일간 파업이 금지되며 독일의 경우도 항공사업 등 긴급분야에서 파업권을 행사할 경우 최소한도의 지속적 생존에 대한 배려급부를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탈리아는 2000년 항공운송사업을 포함, 필수서비스에 대해 최소한의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됐다. 

국제노동기구(ILO)에서도 항공관제 서비스는 공익사업장이 제공해야 하는 ‘필수서비스’로 규정돼 있다. 다만 공중의 기본적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유지돼야 하는 ‘최소한의 서비스’는 노동조합과 사용자 및 정부가 협의해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항공업이 이미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된 상황에서 파업기간중 공익보호를 위해 필요한 최소서비스를 규정하는 부분이나 '직권중재 폐지 여부'와 관련한 정부, 노사간 합의도 요구된다는 점에서 폐지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노동계는 항공업의 필수공익사업장 지정에 난색을 보이고 있지만 국적 항공사의 점유율이 높은 우리나라와 외국상황은 다르다”며 “필수공익사업장 지정 폐지에 신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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