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조우현 기자]국민의 노후자금을 담당하는 국민연금관리공단(이하 국민연금)이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기로 결정했다. ‘제한적 상황’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경영에 참여하는 수준까지 주주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여 ‘연금 사회주의’로 변질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1일 국민연금에 따르면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지난 달 30일 제6차 기금운영회의를 개최해 ‘국민연금기금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 도입방안’을 심의·의결하고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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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연금관리공단 로고./사진=국민연금관리공단 제공 |
스튜어드십 코드는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 지침을 뜻한다. 주인 대신 집안일을 처리하는 집사(스튜어드·steward)처럼 최선을 다해 가입자의 자산을 관리한다는 취지지만, 국민연금이 투자기업에 대한 의사결정에 개입하겠다는 것이어서 논란이 돼왔다.
때문에 갈등이 첨예했던 ‘경영 참여 주주권 행사’의 경우, 도입초기에는 경영참여에 해당하지 않은 주주권부터 우선 도입하기로 했다. 또 기금자산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있는 기업에 대해서는 기금운용위원회가 의결을 거쳐 제한적으로 허용한다.
문제는 ‘기금자산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할 우려’가 주는 모호함이다.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과 기금운용위는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기금자산 가치 훼손을 빌미’로 기업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여지를 열어둔 것”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국내 기업은 276개다. 삼성전자(9.2%), SK하이닉스(9.9%), 현대차(8.1%), 네이버(10.6%), LG화학(9.3%), 신한지주(9.6%) 등에서 국민연금은 1대 또는 2대 주주다.
국민연금, ‘국민 노후자금 관리 대리인’일뿐…기업 간섭은 ‘월권’
당초 국민연금의 기업 주식 보유는 ‘국민연금 운용’을 위한 것으로 기업의 경영권 행사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국민들의 ‘노후자금 관리 대리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국민의 돈을 빌미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권한 남용’이라는 묵시적 약속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은 한진그룹 오너 일가 사태를 빌미로 ‘주주권 훼손’을 운운, 자신들의 ‘기업 경영 개입’을 정당화 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사회적 논란이 큰 이슈가 발생했을 때 임원 해임을 주장하거나 자신들이 원하는 이사 선임을 요구하겠다는 주장이다.
국민연금은 이 같은 반대 여론을 의식해 “주주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기업에 한해서만 예외적으로 경영 참여 주주권을 발동할 것”고 했지만, 국민연금의 투자 대상인 기업들이 경영상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국민연금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국민연금이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게 되면 기업 경영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며 “경영 참여보다 수익률을 높이는데 골몰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국민 노후자금 빌미로 기업 쥐락펴락? ‘자유 시장경제 파괴’ 우려
앞서 전문가들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정부가 기업 경영에 간섭하는 ‘관치주의’와 ‘연금 사회주의’로 이어 수 있다는 의견을 개진해 왔다. 국민들의 노후자금을 이용해 기업 운영에 간섭하는 것은 ‘자유 시장경제’를 파괴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재계에서도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은 국민연금과 기금운용위가 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핑계로 기업을 장악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태다.
권혁철 전 자유경제원 자유기업센터 소장은 “실질적으로 ‘기업의 국유화’ 대문이 열린 것”이라며 “연기금 사회주의가 현실이 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선택할 자유를 되찾는 것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며 “국민연금 납부 불복종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경총은 “정부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며 “정부·정치권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의 독립적 의사결정체계 구축을 통해 독립성과 안정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금운용본부 임원 4명 여전히 공석…내부 조직부터 바로 잡아야
국민연금이 기업에 대한 주주권 행사를 확실시한 가운데, 기금 운영을 담당하는 기금운용본부의 ‘불확실성’이 도마 위에 올랐다. 해당 조직은 지난 달 초 주요임원 9명 중 4명이 공석인 점이 논란이 된바 있다.
문제는 해당 논란이 제기 된지 한 달 여 지났지만 여전히 조직 구성이 ‘미완’인 채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기금운용본부는 기금운용본부장, 주식운용실, 해외증권실, 해외대체실 임원이 ‘직무대행체제’ 또는 ‘겸임’으로 운영되고 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책임자도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기업 경영 개입에 신경 쓸 것이 아니라 기금운용을 담당하는 조직의 ‘허점’부터 해결하라는 지적이다.
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같은 중요한 결정을 국민연금 내부가 아닌 외부 위원회에 맡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현재 국민연금은 중요한 의사결정을 외부 위원회에 맡기고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며 “중요한 의사결정은 일관성, 전문성, 독립성을 갖고 내부에서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미디어펜=조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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