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행 위원장, “김 사장 못 믿겠다” 결론

취재수첩


10일 2시에 시작된 방문진 이사회에 참석하는 김재철 MBC 사장은 다소 여유로운 표정이었고, 여기 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면서 움직이는 모양새였다. 방문진 입구에 마련된 대기실에 모여있는 영등포 경찰, MBC 노조 관계자들과도 인사를 주고받을 정도로 온화한 분위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방문진 이사회에 참석한 김재철 MBC 사장은 정확히 5분만에 안건을 설명하고, 곧장 나왔다고 방문진 관계자가 확언했다. 어떠한 정황이었는지 구체적인 촬영영상을 못 봐 알 수는 없지만, 노조측의 전날 경고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 것으로 보였다. 노조측은 10일까지 윤혁 및 황희만 이사건을 결정내라고 통보했다.


역설적인 것은, 9일 11시에 열렸던 MBC 청문회 요청 토론회에서 이근행 노조 위원장은 침통한 표정을 일관했고, 모든 고통을 혼자 짊어진 듯한 고뇌하는 모습이었다. 그러한 표정이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닌 것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좌측부터 이근행 MBC 노조 위원장, 김재철 MBC 사장,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
▲좌측부터 이근행 MBC 노조 위원장, 김재철 MBC 사장,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




정확히 말해서, MBC 청문회 요청 토론회는 이근행 위원장을 옹호하는 세력들이 대다수였고, 이근행 위원장이 침통한 표정을 지었던 것은 김재철 MBC 사장을 옹호하는 선택을 내린 것에 대한 책임때문이었다. 그때 그는 “김재철 사장 퇴진은 진행형이고, 곧 속개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고, 이틀만에 출근저지 투쟁이 속개된다는 발표가 났다.


김재철 사장은 10일까지 윤혁 이사 및 황희만 이사에 대한 결정을 결론내라는 MBC 노조의 요청의 긴박함을 그다지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모든 것들이 자연스럽게 물흐르듯 흘러가니까 김 사장은 그러했던 것일까 누군가 김 사장의 묵직한 짐을 대신 짊어졌던 것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대신 짊어진 인물이 이근행 위원장인지, 김우룡 이사장인지는 난 모른다. 단지 이근행 위원장은 총파업을 피하기 위해, 자신의 역할에는 매우 무리수였던 선택을 내렸고, 그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세력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받았던 것은 사실이다. 이제 결정권은 김재철 사장에게 다시 넘어갔고, 김우룡 이사장과 김재철 사장의 살아남기 싸움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MBC 노조는 방문진 이사회 이후, 특보12호를 통해 “김 사장은 출근길이 봉쇄당하자 회사 앞마당에 천막까지 치며, MBC 사원들을 향해 방문진과 정권에 맞서 MBC 독립성을 지키겠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돌을 매달아 한강에 버려라. 남자의 말은 문서보다 강하다고 발했지만, 김 사장은 변명만 일관했다”고 비판했다.


또 이근행 위원장은 “사장으로 인정해주면 당장이라도 두 이사를 인사조치하겠다던 김사장이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한 채 방문진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고 있다”며 “김사장이 자신의 입으로 굳게 약속한 내용을 100% 실천하지 못하면 취임식은 커녕 사옥에 한 발도 들여놓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사실상 임시 휴전을 끝내고 다시 선전포고를 하는 것이다. 또 11일 11시 총파업 미사일 발사 여부를 놓고 긴급 논의를 한다고 한다.


나는 믿을 신(信)을 참 좋아한다. 믿음 즉, 신뢰성은 ‘사람+말’로 합쳐진 글자다. 과거 중국인들은 믿음의 기준을 그 사람의 말로 판단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말을 잘하고 못하고가 아니라, 그 사람이 말을 하고, 그 말대로 했느냐를 봤던 것이다. 말과 행위의 일체를 통해 믿을 만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했던 것이다. 말은 잘하는데, 말대로 안한 사람은 말에 능숙한 사기꾼인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을 사기꾼이라고 부르는 일반인들이 많다. 또 변호사도 합법적 사기꾼이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믿는다는 것은 그 사람이 입밖으로 꺼내놓은 말을 실천했느냐로 결정되는 것이다. 현재까지 결산을 해볼 때, 김재철 사장은 이근행 위원장에게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것 같다. 또 MBC 노조의 입장에서 김재철 사장은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 것 같다.




이쪽에서 신용불량이면, 저쪽에선 신용등급이 무한정 올라가는 지 어떤 지는 모르겠지만, 공인으로서 공개적으로 약속한 것을 이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말만 늘어놓는 사람이 혹 아닐까 믿을 신(信)에 결코 가까운 사람은 아닐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