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부여로 '하면 된다'는 문화적 DNA 확산시켜 개발연대 성공 이끌어

 좌승희 박사의 박정희대통령과 한국의 경제발전 심층분석(4)-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차별화정책이  한강의 기적 창출 

대한민국 산업화와 제조업강국 신화를 창출한 박정희 경제발전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어떤 정책과 이데올로기가 60년대이후 한국의 고도성장을 가져왔는가? 박정희의 성공원리는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아프리카의 경제개발과 성공에 중요한 벤치마킹이 되고 있다. 빈곤과 가난에 허덕이는 개도국을 번영으로 이끌 수 있는 정책적 철학과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박정희연구의 최고권위자인 좌승희 미디어펜회장 겸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가 박정희의 통치철학과 경제발전 성공원리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 좌승희 미디어펜회장 겸 KDI초빙교수
개발연대 성공의 원인: 신상필벌의 경제차별화정책
한국의 개발연대에는 신상필벌의 원칙에 따라 자조하여 흥하는 자를 우대함으로써 모두가 따라 배워 흥하는 자가 되어 온 나라에 흥하는 자가 넘쳐났던 역동적인 발전의 과정이었다. 물론 이에 따라 우수 기업과 지역에의 부와 경제력의 집중 및 부문간·지역 간 불균형을 만들어 내기도 한 것이다.

개발연대 성공을 가져온 정책들은 모두 자조하여 남보다 더 좋은 성과를 내는 경제주체들에게 더 많은 보상과 기회를 제공하는 신상필벌의 정책들이었다. 예를 들면 1) 수출 우수 기업만 지원한 수출 육성정책, 2) 수출성과 우수 기업만 지원한 중소기업육성정책, 3) 능력 있는 기업만 참여시킨 중화학공업 육성정책, 4) 성공하는 마을만 지원한 새마을 운동, 5) 잘하는 공장만 지원한 새마을 공장육성정책, 6) 성과 있는 원호대상자를 더 우대하는 정책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여기서 5.16 쿠데타 초기, 탈세와 부도덕의 화신이라고 구속했던 십수명의 중견기업주들을,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경제를 아는 이들을 버릴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 하에 부정부패와 구악일소라는 혁명공약을 어기면서까지, 경제발전에 참여·기여하여 벌어서 갚는다는 조건으로 석방하여 자본유치와 개발계획에 참여시킨 박정희의 실사구시적 이념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동기부여가 바로 당시의 모든 기업인들을 ‘산업보국’이라는 이념으로 뭉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경제발전은 현실이지 이상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한마디로 박정희 경제정책의 성공요인은 “스스로 돕는 자를 우대하는 인센티브가 차별화된 지원제도”를 구축함으로써 스스로 돕는 자를 양산하고, 이를 통해 흥하는 문화유전자인 “하면 된다”는 유전자를 퍼뜨림으로써 더욱 더 많은 흥하는 이웃들을 양산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하면 된다는 자조정신으로 남보다 더 노력하여 성공하는 국민들을 앞장세움으로써 게으르고 희망이 없다던 한국국민들을 모두 자조하는 국민들로 바꾸어 놓았다.
 

이를 통해 개발연대는 세계사에서 그 유래가 없는 최초의 초고속 성장과 가장 양호한 동반성장을 실현하였다. 수출 육성정책의 수혜자들인 수출기업들이 수출 수익을 국내에 재투자하도록 끝없이 유도, 독려함으로써 국내 중소기업, 서비스업의 수요를 창출하고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내수와 외수의 동반성장을 이끌었다.

       <그림> 지난 60년 한국경제 발전사: 잠재성장률 추세

   
 

80년대 후반이후의 경제역동성하락요인: 경제평등주의 정책

<그림>에 의하면 개발연대 연평균 8-9% 성장으로 30년간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경제는 1980년대 후반이후부터 잠재성장률이 지속 하락하여 오늘날 2-3%대로 추락하고 있다. 이런 성장 잠재력 둔화원인은 무엇일까? 1980년대 들어서면서 박정희 정책패러다임을 청산하는 작업이 진행되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바로 박정희 정책이 경제불균형을 초래했기 때문에 보다 평등하고 균형된 경제를 지향한다고 각종의 규제와 지원정책들을 양산하기 시작했다. 이런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한마디로 부른다면 경제평등주의라 할 수 있다. 그 진수가 바로 1987년 민주헌법에 등장한 경제민주화이다.
 

지난 30여 년의 경제성장의 둔화와 경쟁력 저하의 원인은 경제 민주화한다고 흥하는 국민들을 폄하하는 경제사회제도를 만들어 내어 국민들의 자조와 발전정신을 약화시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 남 탓하고 대기업, 부자, 수도권 탓하는 국민들이 양산 되고 이제 내 실패는 사회 탓이며 정부가 책임지라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더더욱 커지면서 정치는 지속적으로 표퓰리즘 민주정치로 전락해 왔다. 개발연대 자조정신으로 충만했던 국민들이 이제 남 탓, 정부 탓하는 국민들로 바뀐 것이다.
 

80년대 중․후반 이후 한국은 개발연대성공의 동력이었던 우수한 경제주체에게로의 경제적 자원의 집중과 집적을 유도해온 시장과 정부의 기능을 해체하고 경제적 평등과 실효성 없는 균형발전 등을 추구 해 왔는데 그 구체적 사례는 다음과 같다.

1) 대기업이 되면 무조건 규제하고 중소기업이면 성과에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지원하여 모두 작은 중소기업으로 주저앉게 만드는 기업정책, 2) 가난한 농민만을 우대하여 농민을 가난한 농민으로 주저앉게 만드는 농업지원정책, 3) 노조를 약자라고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키워온 경영민주화 정책, 4) 수도권을 역차별하는 수도권 규제와 획일적 지방육성정책으로 전국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해온 국토균형발전정책, 5) 획일적 지원정책으로 우수한 연구자와 학교를 역차별하여 연구수월성을 훼손해온 대학지원정책과 과학기술지원정책,

6) 우수학생역차별로 실력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하고 공교육 부실과 사교육의 발호를 조장함으로써 가난의 대물림을 고착시켜온 교육 평준화정책 등을 들 수 있다. 우수학생역차별하는 평등주의교육으로 공교육이 무너져 사교육시장이 발호하게 되면 가난한 학생은 더 이상 좋은 교육기회를 가질 수 없어 개천에서 용나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날 수 없게 된다.

1980년대 후반이후 한국의 경제정책 패러다임은 경제 수월성을 희생하면서 평등을, 즉 하향평준화를 지향해왔으며 이러한 정책패러다임이 바로 오늘날 경제의 역동성저하와 각종 양극화의 근본원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이후에는 경제발전정책이라 하지만 실제는 많은 경우 성과에 관계없이 획일적으로 지원하는 사회보조정책으로 전락함으로써 경제발전효과가 사라지고 사실상의 경제적 차별화를 통한 동기부여정책으로서의 경제정책은 실종되게 되었다. 경제역동성의 하락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한편 수출제조 대기업들이 각종 국내규제 때문에 수출수익을 국내투자로 환원하지 않음으로써 수출과 내수간의 연계가 사라져 각종의 양극화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오늘날 국내 대기업 투자규제정책은 투자할 능력이 있는 기업들의 국내투자를 막아 해외투자에 나서게 조장함으로써 일자리를 해외에 수출하는 양극화조장 정책으로 전락하였다. /좌승희 미디어펜회장, KDI정책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