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문화 세계화 전략의 하청기지화, '차이나우드' 재현 우려

   
▲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이 2012년 2월 부주석으로 자리할 당시 할리우드 경영진들과 전격 회동했다. 당시 아이오와주 옛 추억의 농촌 집을 거쳐 워싱턴을 돌며 차기 주석으로서 소프트 파워를 과시한 시부주석 바짓가랑이를 미국 영화산업 리더들은 붙잡고 늘어졌다. 중국이라는 노다지 시장을 이끌 미래에서 온 그대, 시부주석이 할리우드를 외면하지 말아달라는 애걸복걸이었다. 후일담을 보면 할리우드 면담 자리에서 바로 시부주석이 베이징 광전총국에 전화를 걸어 미국 영화 중국 현지 수익률 인상을 결정지었다고 한다.

<아바타>와 같은 해외영화 제작사가 가져가는 수익률을 그 이전까지 최대 17.5%였던 것에서 25%로 확대시킨 조치였다. 할리우드 수뇌부들은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핵심 사안을 그야말로 미래에서 온 그대, 시부주석이 단칼에 해결 짓는 것을 보고 엄청 놀랐을 터이다.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그 때 시부주석 방문 직후에는 백악관이 중국 정부가 미국영화 수입한도를 기존의 연 20편에서 34편으로 증량한다고 발표했다.

단 추가로 증량된 14편에 대해서는 3D 영화, IMAX, 혹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기술적인 특징”이 있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어서 할리우드가 환호할 틈도 주지 않고 연달아 차이나머니가 대대적으로 LA 해안으로 상륙하기 시작한다. 미국 대표적인 극장사업체 AMC 인수 건이다. 미국 AMC는 350개 극장과 5,050개 스크린을 보유한 업계 2위 업체다.

미국의 경우 영화 티켓 매출이 연간 102억 달러(2011년) 수준으로 중국시장 5배 규모인 점을 감안하면 AMC는 그야말로 미국 영화산업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격이다. 그럼에도 AMC의 기존 주주인 JP 모건, 아폴로, 베인 케피털 투자 등은 자금문제로 결국 매각을 결정했다. AMC를 26억 달러로 매입한 왕 장린 완다 그룹회장은 다음 목표는 유럽이라며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호언장담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차이나와 할리우드 합성어인 차이나우드가 아예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를 매입할 수도 있다는 관측까지 나왔다. AMC를 인수한 완다 그룹이 자회사 완다 시네마 라인 코퍼레이션을 갖고 있고 다이렌시 소재 모그룹인 부동산 그룹을 통해 백화점, 호텔 사업을 해온 큰 업체이지만 실질적 자금 출처는 중국 국부 펀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 시진핑 중국국가 주석을 마중하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삼성 제공

이랬던 2012년 할리우드의 봄은 문화사적으로도 중대한 전환기로 남게 되었다. 중국이 당장 미국과 문화로 겨루고 나아가 장차 세계를 중국 문화산업으로 석권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미 장쩌민 전 주석은 문화산업에 있어서 사회적 가치 우위를 견지하면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통일적으로 실현시킬 것을 강조한 바 있다. 그러면서 그는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가 대립되는 경우 경제적 가치가 반드시 사회적 가치에 복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영화라는 미디어가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의 통일원칙을 견지하는데 결정적인 소임을 다하도록 중국이 차이나우드라는 전략을 짜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미래를 가져온 그대, 시진핑 주석도 한 때 세계사에서 밀려났던 중화민족을 경제에 이어 사회문화적 가치 발현으로 드높이겠다는 시각을 확고하게 견지한 듯하다. 중국산 경제로 세계를 리드하게 된 다음 국면부터는 중국의 앞서고 풍부한 문화로써 떨어졌던 자존심을 회복하고 수천 년 이어오던 중국 문화의 우수성을 다시 떨치겠다는 국가전략이다.

이런 중국문화 세계화라는 그랜드 디자인은 이번 시주석 방한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청와대에서 중국 신문출판광전총국과 ‘대한민국 정부와 중화인민공화국 정부 간의 영화공동제작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었다. 협정은 공동제작영화로의 승인 절차, 조건, 기술협력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특히 중국과의 합작영화가 공동제작영화로 승인받는 경우 중국 내에서 자국영화로 인정된다.

우리 정부 관계자는 "이렇게 되면 중국의 외국영화 수입제한제도에 해당되지 않게 되어 한국영화의 중국시장 진출이 지금보다 더욱 증가할 것"이라며 "영화특수효과기술(VFX) 협력, 현장 스태프 교류 등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전한다. 한국 영화산업에 희소식이 날아든 셈이라고 보겠지만 이 역시 차이나우드 확장이고 팽창이라는 지적에 더 많이 귀 기울여야할 상황이다.

우선 더 긴급한 현안인 방송 드라마 부분 개방 조치가 없다는 점이 미흡하다. 이왕이면 방송과 영화를 묶어 방송영상산업 차원에서 공동제작도 논의하고 가장 다급한 한국 방송콘텐츠 중국내 편성 쿼터제 완화 등을 이끌어냈어야 했다. 히트작 <별그대> 언급은 무성했지만 정작 버젓한 TV 드라마가 중국 내에서 본방 편성이 아닌 인터넷 온라인 유통으로 떼밀리고 수익 배분에서도 불공정했다는 점은 비껴갔다.

우리 영상산업의 더 큰 축인 게임도 마찬가지다. 불법 복제가 난무하고 무차별적인 차이나머니 한국 게임업체 인수가 현실화되고 있는 미묘한 이슈들에 대해서 팽팽한 외교전이 펼쳐졌다고 하는 뉴스는 만나질 못했다.

   
▲ 구본무 LG 회장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직접 제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LG 제공

알려진 대로 시진핑 주석은 할리우드 키즈다.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이고 중국 전통 사극인 <와호장룡>이나 <황후화>류는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그 자신 폐허가 될 뻔한 영화세트장을 성공적인 관광 상품으로 개발한 문화산업 전문가다. 세계 영화계도 차이나우드 총 설계사가 시주석이라고 보는 분위기다.

이런 큰 그림에 비하면 우리 한국 문화산업, 미디어콘텐츠 산업은 너무 속수무책이다. 이번 중국 주석 방한에서도 우리 드라마, 게임, 영화비즈니스를 대변할 CEO들 활약상은 전무하다. 하기야 KBS는 사장 자체가 없는 와중이고. 그러나 보니 급기야 카카오톡, 라인과 같은 한국 스마트 미디어 신예들이 중국에서 갑자기 의문의 먹통 조치를 당했다는 뉴스까지 날아들었다.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중국이 원하는 문화교류는 한중 영화공동제작쯤으로 우아하게 건네는 손짓이 다가 아니다. 와서 도로 닦고 수로 공사하는 저부가가치형 중동 공사판쯤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이미 드라마도 게임도 한국의 취약한 창작 콘텐츠 영혼들이 중국으로 다수 넘어가고 있는 중이다. 문화의 본 뜻, 문물교화라는 개념은 본래 크고 앞선 문화의 힘이 주변 열등 국가를 교화한다는 무서운 뜻임을 새삼스럽게 차이나머니, 차이나우드를 보고 확인하게 된다.

아프지만 현실을 잘 조감해서 봐야 한다. 이래가지고는 한국은 문화하는 민족이 못 된다. 한류라는 두 글자에 자주 호들갑을 떨지만 시주석 방한 때 한류 주역들은 불려 나오지 못했다. 드라마 제작사 사장, 영화사 대표, 디지털 콘텐츠 리더들이 직접 다뤄야할 그 흔한 투자 유치나 쿼터 완화, 저작권 단속, 서비스 개방과 같은 쟁점들도 테이블에 오르지 못했다. 이래 가지고는 정말 문화하는 민족, 중국의 차이나머니 차이나우드가 노상 말로만 문화하는 입한류(입으로만 한류를 말하는) 한국을 하청 업체쯤으로 확실하게 끌어내릴지도 모른다.  /심상민 성신여대 교수, 미디어펜 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