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상회 현대토건 럭키치약 선경직물 등 중소중견기업, 대기업 성장

좌승희 박사의 박정희대통령과 한국의 경제발전 심층분석(5)-개발연대, 정치의 경제화로 인센티브차별화 정책 시행 

대한민국 산업화와 제조업강국 신화를 창출한 박정희 경제발전의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어떤 정책과 이데올로기가 60년대이후 한국의 고도성장을 가져왔는가? 박정희의 성공원리는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아프리카의 경제개발과 성공에 중요한 벤치마킹이 되고 있다. 빈곤과 가난에 허덕이는 개도국을 번영으로 이끌 수 있는 정책적 철학과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  박정희연구의 최고권위자인 좌승희 미디어펜회장 겸 KDI 국제정책대학원 초빙교수가 박정희의 통치철학과 경제발전 성공원리를 시리즈로 연재한다. [편집자주]

   
▲ 좌승희 미디어펜 회장
개발연대의 몇 가지 난제에 대한 재해석
이제 새로운 경제발전관으로 개발연대에 대한 잘못되었거나 미흡한 해석을 바로 잡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정치와 경제: 어떻게 유신 등 권위주의정치 하에서 경제발전이 가능했나?
오늘날 민주정치는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표퓰리즘정치로 변질되고 있다. 선후진국을 불문하고 사회민주주의가 보편화되고 있음에 주목해야한다. 이는 민주주의 성격상 불가피한 측면이다. 표에 의해 경제정책이 결정되는 의회 우위의 정책결정체제는 불가피하게 평등주의 경제정책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경제적 수월성을 추구하는 경제발전정책의 설 땅은 그만큼 좁아지게 된다. 결국 경제적 불평등을 용인할 수 있는 자유시장 민주주의는 경제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으나 경제적 평등을 추구하는 평등민주주의 혹은 포퓰리즘 민주주의는 발전에 장애가 된다.


박정희의 권위적 정치가 경제발전과 양립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포퓰리즘 민주정치를 사전에 차단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한국정치상황이 개발연대를 덮었다면 경제적 차별화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을까 상상해 보라. 그래서 개발연대는 정치를 경제화, 즉 정치의 경제에 대한 영향을 차단함으로써 민주정치의 부작용을 최소화하여 인센티브를 차별화하는 경제정책을 실행할 수 있었던 반면 그후 지난 30여년간은 역으로 경제가 정치화됨으로써 경제정책은 실종되고 모든 정부의 지원정책이 1/n로 나누는 평등주의 사회정책으로 변질되게 된 것이다.

정치학계나 정치계가 민주주의라는 잣대로 박정희의 쿠데타나 유신을 부정적 시각에서 볼 수는 있겠지만 반면에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을 가능성도 같이 보는 균형된 시각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민주주의는 하느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치(官治) 와 부자유(不自由) 속의 발전은 어떻게 해석할가?
박정희시대의 성공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아킬레스건이다. 관치와 부자유속에서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발전이 반드시 경제적 자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정부의 경제적 차별화전략이 가미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수용한다면, 경제발전은 자유 그 자체보다도 경쟁을 통해 경제적 차등과 불평등을 초래하는 시장의 차별화압력이 더 직접적인 동인이 된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자유는 경제적 불평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경제발전의 원동력은 자유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차별과 차등의 압력이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소위 경제적 자유를 허용해 놓고도 결과의 차등과 차이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는 사회주의와 다르지 않게 된다는 점을 명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래서 박정희의 관치, 부자유 속에서의 성공은 관치가 경제적 평등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신상필벌”을 내걸고 경제적 차등과 차별을 허용하는 차별화를 추구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를 일컬어 “관치 차별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재벌은 친대기업정책이 아니라 친중소기업육성정책의 성공결과이다
친 박정희든 반 박정희든 박정희정책을 재벌중심의 경제정책이었다고 하는데 이의를 달지 않고 있으나 이는 경제실상을 잘 모른 해석이다. 박정희 정책은 중소기업육성정책을 성공적으로 하여 경쟁력 있는 대기업의 출현을 유도하였다고 봐야 옳다.

1940-50년대 중소중견 기업들을 20년 만에 세계적인 대기업들로 육성한 중소기업육성정책의 성공이 박정희 패러다임의 진수임을 이해 할 수 있어야 한다. 1940~50년대, 삼성상회, 현대자동차공업사와 현대토건사, 럭키치약, 선경직물, 두산상회, 한진상사, 60년대 대우오퍼상 등의 중소중견기업들이 오늘날 각각, 삼성그룹, 현대자동차와 중공업과 현대건설 등 범 현대그룹, LG그룹, SK그룹, 두산그룹, 한진그룹, 대우그룹(해체) 등의 대기업들로 성장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장성과를 통해 능력이 인정된 성장하는 중소기업을 조세, 금융, 외환 정책 등을 통해 우대하고 이들에게 실패하는 중소기업을 인수하도록 허용함으로써, 빠른 속도로 중소기업의 대기업으로의 성장을 유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30년은 획일적 지원정책으로 인해 오히려 못하는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더 대접받음으로써 성장유인이 사라져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천국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중화학 공업화 전략은 실패한 정책인가?
박정희의 중화학공업 육성정책도 자유시장 경제론자들에겐 아킬레스건이다. 성공하기 어렵다고 배운 정책이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미 1980년대에 한국정부와 세계은행은 공식적으로 박정희 중화학공업화정책은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경제는 그 실패했다는 중화학공업이 이끌어 가고 있으니 이 역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일부 자유시장론자들은 애써 이 성공을 무시하거나 혹은 폄하하기에 바쁘고, 인정한다는 좌파는 그 성공의 원인을 모른다.
 

우리의 새로운 경제발전관으로 보면 산업정책은 경제적 차별화정책으로 접근해야 성공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실패하는 기업들 보다 성공하는 기업들에게 더 많은 자원이용 기회를 열어주는 경제적 차별화원리에 따른 관치 산업정책은 그 성공가능성이 높다. 개발연대 중화학공업화 전략은 수출을 통해 투자자금을 확보한, 다시 말해 기업경영능력과 성공경험이 있는 기업들만이 참여할 수 있었고 이것이 실패가능성을 최소화했으며, 나아가 성공을 가져온 것이다.  /좌승희 미디어펜회장, KDI 정책대학원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