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펜=김소정 기자]2차 북미정상회담 합의가 무산됐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을 신뢰한다”고 했고, 북한도 “생산적 대화를 계속할 것”이라면서 수위 조절을 이어가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1일 3.1절 100주년 기념사에서 남북경협의 고삐를 죄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신한반도체제’를 선언하고 “한반도에서 ‘평화경제’의 시대를 열어나가겠다.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의 재개 방안도 미국과 협의하겠다”며 “미국, 북한과 긴밀히 소통하고 협력해 양국간 대화의 완전한 타결을 반드시 성사시켜낼 것”이라고 밝혔다. 

북미 간 핵담판이 결렬됐지만 문 대통령은 “장시간 대화를 나누고 상호이해와 신뢰를 높인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며 “더 놓은 합의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 간 비핵화 협상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하노이선언이 무산된 것도 어려운 협상 과정에서 넘어야 할 고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전날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도 2차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논평을 내고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제재를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북미 간 논의 단계가 한층 높아졌다”고 말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비록 하노이회담이 결렬됐지만 대북제재 해제가 논의 테이블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협상에 진전이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은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추가 대북제재도 없을 것”이라고 말한 점에서 최소한 현상유지는 된 것이라고 보고, 또다시 중재 역할에 나서서 북미대화를 이끌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 제2차 북미정상회담 이튿날인 2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왼쪽)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에서 회담 도중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다./VTV


하지만 북미 간 협상 결렬 과정을 살펴볼 때 미국은 회담 이전부터 공언했던 것을 의제로 삼았지만 북한은 그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위원장이 조급함을 드러내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방 허를 찔렸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미 정치권으로부터 “나쁜 합의보다는 낫다”는 평가를 받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강경태도로 돌아설 가능성도 커졌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알고 있다'고 밝혀 '북한이 놀랐다'는 영변핵시설 이외의 핵물질 생산시설은 스티브 비건 미 국무부 대북대표가 언급했던 영변핵시설 플러스 알파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번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영변핵시설 플러스 알파 대 종전선언 및 금강산관광 재개 용인 등이 의제로 오를 것이라는 관측도 많았다.

그런데 북한은 회담에서 영변핵시설 폐기를 내세워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일부 해제를 요구했다. 리용호 외무상이 하노이에서 전날 새벽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밝힌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채택된 5건의 제재 결의는 실제 북한경제를 봉쇄하기 시작한 내용들로 북한의 주요 외화벌이 대상인 석탄과 의류제품 수출을 금지하고 유류 반입을 규제한 항목이다. 

이전의 안보리 제재는 주로 대량살상무기(WMD)에 맞춰져 있어서 효력이 없었던 것에 비해 비로소 대북제재 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고,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까지 이끌어낸 안보리 결의안들을 해제해달라는 북한의 요구를 미국이 그냥 들어줄 리가 없다. '비핵화 로드맵'도 손에 쥐지 못한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핵시설 폐기 약속 하나만으로 중요한 ‘협상 카드’를 버릴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중에 평양 인근 남포시에 있는 ‘강선’ 핵시설을 언급하며 영변 외 모든 핵물질 시설과 무기 프로그램 폐기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강선 핵시설은 영변의 2배에 달하는 우라늄 농축시설인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의 기자회견에 배석한 폼페이오 장관도 “영변 핵시설 외에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있다”며 “미사일, 핵탄두와 무기 체계가 빠져서 합의를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도 무수히 반복해 언급한 '영변핵시설 폐기'는 미국의 협상 대상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에는 강선 외에도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미 정보 당국이 세번째 비밀 시설을 탐지해냈다”고 했고, 아사히신문은 북한이 최대 10곳에 이르는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청와대가 중요하게 언급하고 언론도 수없이 써온 종전선언이 북한에게는 선결 과제가 아닌 것도 이번에 확인됐다. 북한은 제제의 일부 해제만을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은 안보리 제재의 일부만 해제되어도 그 위험성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북한과의 협상에서 핵포기의 진정성을 의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재 해제가 절실한 북한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벼랑끝전술을 쓸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이번 하노이회담에서 확인된 것은 앞으로도 트럼프 대통령이 일부 대북제재 해제 조치도 심각하게 고심할 것이고, 또 북한의 영변핵시설 폐기는 미국이 비핵화 협상을 이어갈 매력 있는 조건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북미 간 포괄적인 합의와 단계적 실천의 '입구 찾기'도 어긋났고, 톱다운 식 통 큰 합의의 한계도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또다시 북미 간 중재 역할에 나설 경우 전략을 대폭 수정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