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년 87세…프로야구단 'OB베어스' 창단
[미디어펜=나광호 기자]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향년 87세로 별세했다.

4일 두산그룹에 따르면 박 명예회장은 1932년 고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회장의 6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경동고등학교를 졸업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자원해서 해군에 입대해 참전용사로 활약했으며, 제대 후 미국 워싱턴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후 1960년 한국산업은행에 공채로 입사,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63년 동양맥주 평사원으로 두산그룹에 발을 들인 이후 한양식품 대표·동양맥주 대표·두산산업 대표 등을 거친 뒤 1981년 두산그룹 회장에 올랐으며, '큰 어른'으로서 인화를 중심에 두고 인재를 중시한 경영방침을 실행했다.

회장직에 오른 후에는 1985년 동아출판사·백화양조·베리나인 인수 등으로 사업영역을 넓혔으며, 1990년대에는 두산창업투자·두산기술원·두산렌탈·두산정보통신 등을 잇따라 설립했다.

1974년에는 합동통신(연합뉴스 전신) 사장에 취임, 세계적인 통신사로 만들겠다는 목표 아래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또한 국제상업회의소 한국위원회 의장 및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1984년과 1987년에 각각 은탑산업훈장과 금탑산업훈장을 수훈한 바 있다.

박 명예회장은 사업영역 확대 뿐만 아니라 혁신행보도 꾸준히 걸어왔다. 창업 100주년을 한 해 앞둔 1995년엔 경영위기 타개를 위해 당시 주력이던 식음료 비중을 낮추면서 유사업종을 통폐합하는 조치를 단행, 33개에 이르던 계열사 수를 20개로 재편했다.

이어 당시 두산의 대표사업이었던 OB맥주 매각을 추진하는 등 체질 개선작업을 주도했으며, 이같은 조치에 힘입어 두산은 2000년대 한국중공업·대우종합기계·미국 밥캣 등을 인수하면서 소비재 기업을 넘어 산업재 중심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 고 박용곤 두산그룹 명예회장이 1996년 8월 두산그룹 창업 100주년 축하 리셉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두산그룹


박 명예회장의 유족으로는 아들 정원(두산그룹 회장)·지원(두산중공업 회장)·딸 혜원(두산매거진 부회장) 씨 등 2남 1녀가 있으며, 빈소는 5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진행되며, 발인과 영결식은 7일, 장지는 경기 광주시 탄벌동 선영이다.

박 명예회장은 지난 1996년 타계한 고 이응숙 여사가 암으로 투병할 당시 병실 소파에서 쪽잠을 자며 오랜 기간 간병하는 등 각별한 사랑을 쏟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족에 따르면 그는 일찍 떠나 보낸 아내를 한결 같이 그리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며 23년간 '사부곡'을 써내려 왔다.

또한 어려서부터 선친에게서 '늘 겸손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 박 명예회장은 "내가 먼저 양보하면 된다"는 말을 자주 했으며, '분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품고 산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자신의 분수를 지켜야 가정이 화목하다'는 뜻의 '수분가화'를 가훈으로 삼았고, 형제와 자녀들에게 '수분가화'라는 붓글씨가 적힌 액자를 선물하기도 했다.

한편 고인은 한국프로야구(KBO) 출범 때 가장 먼저 야구단(OB베어스)을 창단하는 등 야구사랑으로도 유명하다. OB베어스는 어린이 회원 모집과 2군 선수단을 제일 먼저 창단한 구단이다.

박 명예회장은 거동이 불편해진 뒤에도 휠체어를 타고 베어스 전지훈련장을 찾아 선수들 손을 일일이 맞잡았으며, 이전 시즌 기록을 줄줄이 외우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2008년 4월17일 77세 희수연 때는 자녀들로부터 등번호 77번이 찍힌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받아들고 그 어느 때보다 환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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