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증후 지명땐 당청이 끝까지 밀어야, 그래야 박근혜대통령에 몸바칠 사람나와

   
▲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세월호 참사’에 이어 문창극 총리후보의 지명과 사퇴는 또 하나의 참사였다.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중립적인 입장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기여했어야 할 공영방송 KBS가 오히려 앞장서서 조작된 사실로 진실을 왜곡함으로써 인격 파괴적 공격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KBS는 문창극 후보자가 교회에서 행한 70분짜리 연설을 2분 분량으로 편집해 전체적인 맥락과 관계없이 따온 몇 개의 말을 들어 그를 '친일 반민족주의자’로 규정했다. 그것으로 문 호보자의 운명은 사실상 봉인되었다. 이후 KBS의 보도와 다른 내용이 많이 드러났지만 결국 그는 제대로 법적으로 보장된 인사청문회까지 가보지 못하고, 따라서 국가전복을 기도한 혐의를 받았던 소크라테스에게조차 주어졌던 '자신을 위한 변호’의 기회마저 얻지 못한 채 사퇴에 내몰렸다.

이 방송참사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물론 최초의 왜곡보도를 낸 KBS에 있다. 하지만 이후 사퇴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보면 박근혜대통령의 청와대와 새누리당, 그 가운데서도 청와대의 책임 또한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주요 인사를 위해서는 먼저 폭 넓은 물색과 철저한 검증을 통해 적임자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지명을 전후해 당-청 협의를 통해 여당의 확고한 협조를 확보해야 한다. 청문회를 처리하는 것은 결국은 국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일단 적임자를 지명한 이후에는 검증 절차가 철저했다는 전제 하에서 야당의 반대가 있더라도 끝까지 후보자를 밀고 나가야 한다. 새민련 등 야당의 입장에서는 누구를 내세워도 일단 반대부터 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창극 총리후보자가 사퇴하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당-청협의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KBS의 보도가 문창극 후보자에 대한 논란을 불러 일으키자마자 새누리당의 일부 초선, 그것도 비례대표 의원들이 문 후보자의 적격성을 공개적으로 문제 삼고 나왔기 때문이다. 당-청협의가 있었고 여당의 당론이 정리된 상태였다면 이 같은 적전 분열 상황은 결코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문 후보자가 논란에 휩싸이자 청와대가 한 발을 뒤로 뺐다는 점이다. 박근혜대통령이 중앙아시아를 순방 중이어서 국회에 보낼 임명동의안 요청서를 결재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지만, 이것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것이다.

논란이 이니까 대응에 고민하고 있다고 누구나 여겼고 실제도 그러했을 것이다. 이렇게 고민하는 동안 후보자는 고립무원으로 비판적인 언론과 여론 그리고 이에 편승한 정치권의 무자비한 공격에 노출되어 있었다. 임명권자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안 이상 공격을 늦출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문 후보자로서는 인준이 되든 안 되든 인사청문회에 가서 스스로를 변호할 기회를 원했다. 일부 장관 후보자들은 모르겠지만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경우 적어도 드러난 바로는 논란이 된 역사관 외에 큰 흠결이 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강연 전체를 보면 역사관에 문제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내건 국가개조에 걸맞은 인물로 보였다. 그렇다면 청와대 또한 임명동의요청서를 국회에 보냈어야 옳았다. 후보자가 사퇴를 한다고 해서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보다 정치적 데미지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우려스러운 바는 이번 인사참사의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 인사의 약점이 확연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누구든지, 흠결이 있든 없든, 논란의 중심에만 놓이게 되면 박 대통령은 해당 인사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다는 것이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이미 공천한 후보자 3명이 논란에 휩싸이자 2명은 공천을 철회하고 1명은 공천을 반납하게 한 이래 다른 여러 예를 거쳐 이제는 문창극 후보자의 사퇴로 거의 정형화되었다.

이렇게 약점이 백일하에 드러난 이상 정부의 권위에 흠집을 내는 데 안달하는 세력은 누구를 후보로 내세워도 시비 거리를 찾으려 들 것이다. 다른 한편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되면 필기단창으로 외롭게 적들을 상대해야 된다는 걸 알게 된 이상, 그 어느 누가 선뜻 이 정부를 위해 몸을 던져 싸우려 들겠는가? 현재 상태라면 이 정부는 머지않아 고립무원의 지경에 놓일 공산이 크다.

앞서 지적한 대로 이번 인사참사의 일차적인 책임은 KBS에 있다. 하지만 공영언론이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공염불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그 정치위원회의 규정을 보면, “민주노총과 제 민주단체 및 진보정치세력과 연대하여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도 당분간은 적어도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공정한 보도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달라져야 할 것은 청와대이다. 철저하게 검증된 후보를 지명하고 지명한 이상 여당과의 긴밀한 협력 속에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렇게 그들의 수법이 통하지 않게 되면 이미 공정성을 상실한 언론도 야당도 후보자에 대한 공격에 쉽사리 나서지 못할 것이다. 또한 임명권자와 정부를 위해 목숨은 아니라도 몸 바칠 사람들도 나오게 될 것이다. 이영조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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